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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May 07. 2023

미리 알았더라면...미리 알았더라도 별 수 없었겠지

D-969


퇴직을 준비하는 방법 중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관련 도서를 읽는 일이다. 얼마 전  <퇴직하기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이동신 저)라는 책을 읽었다. 부제는 '은퇴 후 어떻게 경제적 자유를 얻을 것인가'이다. 예비 퇴직자들이 퇴직 후 일어난 일을 미리 알고 있는 게 정말 도움이 될까?


오타니의 만다라 차트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만다라 차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끝난 WBC(World Baseball Classic)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선수는 ‘오타니 쇼헤이’였다. 일본팀이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TV를 보던 중 낯선 장면을 보았다. 어! 오타니가 운동장에서 쓰레기를 줍네. 세계적인 야구 스타가 쓰레기를 왜 주워? 궁금증은 곧 풀렸다.


오타니는 청소년 시절에 ‘만다라 차트’를 작성하였다. 만다라 차트는 9개의 칸을 만들고 중심에 핵심 목표를 적는다. 나머지 여덟 칸에는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적고 실천한다. 오타니는 운을 가져오는 방법으로 쓰레기 줍기, 인사하기, 책 읽기, 물건을 소중히 하기,라는 항목을 만들었다. 오타니는 다른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행운’이라 여기고 주웠다.


청년 오타니는 미래의 월드스타 오타니가 되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었다. <퇴직하기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의 저자 이동신은 ‘만다라 차트’로 자신의 핵심역량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퇴직 후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무턱대고 결정하지 말고 내게 어떤 비전이 있는지, 나의 행동과 습관은 어떤 것이 있는지, 나를 브랜딩 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 있는지 전략적으로 접근하라는 것이다. 퇴직 전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퇴직자에게 중요한 4대 영역 '일, 재무, 건강, 사회적 관계'  


  이동신 작가는 퇴직자들의 생애 설계를 위한 영역 중 일과 재무, 건강, 사회적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퇴직 후 다시 일하기 위해서는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창업과 1인 기업을 경험해 보라고 충고한다. 얼마 전에 읽고 독후감을 적었던 <온라인 모객 기술>의 강기호 작가나 <부동산 투자가 보인다>의 앤디 작가의 사례가 딱 들어맞다. 두 사람은 회사에 있을 때 자신의 사업 모델로 수익을 내고 그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재무 분야는 저자가 20여 년 정도 대기업의 보험회사에 근무한 경험을 살려 가장 자세하게 소개한다. 연금, 보험, 상속, 투자, 부동산에 관한 팁을 준다. 이 분야의 핵심은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 또는 자고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이다. 자본가도 건물주도 아닌 내게는 꿈같은 일이다. 꿈같은 일이라고 도전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저런 고민이 깊어졌다.


사회적 관계 부분에서 새겨들을 말은 로버트 월딩거 박사의 인간관계에 대한 세 가지 포인트다. 즉 친밀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행복, 건강, 장수를 누린다는 것, 양보다는 질 좋은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 좋은 관계는 육체뿐 아니라 두뇌, 즉 기억력 강화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틈틈이 내가 가진 사회적 관계를 점검해 봐야겠다.

     

마지막으로 건강에 대한 논의다. 건강하지 않다면 모든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헛일이 된다. 저자는 이것을 독일의 J.F. 리비히가 주장하는 최소량의 법칙(Law of minimum)으로 설명한다.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여러 요인 중 최소량으로 존재하는 것이 성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다른 요인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다. 건강관리에 관한 방법은 실천적인 방법은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황혼이혼, 창업실패, 성인 자녀 부양, 중대 질병, 금융사기'에 대한 리스크 관리

     

  퇴직하기 전에 준비할 것이 많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소위 ‘리스크’를 잘 관리하는 것이다. 미래에셋 은퇴연구소는 60대가 빠질 수 있는 위험 요소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황혼이혼, 창업 실패, 성인 자녀 부양, 중대 질병, 금융사기, 이렇게 다섯 가지다.


이혼할 일이 있으면 졸혼으로 해결하면 좋겠다. 자녀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서는 자녀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지원하면서, 나 자신의 재무적 체력을 기르는 일이 중요하다. 중대 질병 예방을 위해서는 내게 필요한 만다라 차트를 만들어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금융사기는 언제 훅 들어올지 모르니 최신 금융사기 기법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미리 알았더라도 별로 소용없으리라, 중요한 것은 실천


  예비 퇴직자로서는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하여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본다. 곧 일상의 삶으로 돌아간다. 닥치면 어떻게든 잘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왜 사람들은 미리 준비하고 실천하지 않을까?


제대로 알지 못하고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충격을 덜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임계장 이야기>(조정진)이라는 책을 읽고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임계장이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 ‘고.다.자.’라는 표현도 있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는 말이다.     


  <임계장 이야기>는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정년퇴직한 저자가 임시 계약직으로 근무한 일터의 경험을 적은 글이다. 퇴직 후에도 자녀 한 명은 아직 품에 있었고 부부의 생계는 계속되어야 했다.     


저자(조정진)가 2016년 6월부터 2018년 8월까지 근무한 직장은 네 곳이다. 버스터미널 배차요원, 아파트 경비원, 건물 경비원, 버스터미널 보안요원으로 근무했다. 저자에게 ‘배차, 경비, 보안’은 허울 좋은 치장에 불과했다. 이 단어에는 청소, 심부름, 수리, 주차 안내, 쓰레기 분리, 택배, 조경 관리에 더하여 사람대접받기를 포기해야 하는 일까지 포함되었다.     


‘사람대접받기를 포기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아파트 경비만 10년 넘게 한 선배가 저자에게 해준 충고를 들어봐야 한다. 저자는 입주민의 ‘갑질’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였다.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생략)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저자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고통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더라도 서러워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이때까지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기록했다. 선배의 충고도 어처구니없지만 이 말을 듣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고 각오를 다졌다는 말에 나는 기가 찼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일도 안 되는 것이지만, 그런 일을 당하고 받아들이겠다고 체념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저자는 네 곳의 일터에서 각각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잘렸다. 이유라고 할 수 없는 이유로, 괘씸하다고, 아프다고 잘렸다. ‘너 아니라도 일할 사람은 널렸’기 때문에 잘렸다. ‘임계장’은 고용주가 자르고 싶으면 언제든 전화 한 통으로 자를 수 있는 노동자였다.     


  <임계장 이야기>를 읽는 순간, 내게 닥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0이라는 나이에 '노인장' 소리 듣는 늙은이로 살아갈지, 내 일과 내 사무실이 있는 시니어로서 살아갈지 선택하고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요즘 퇴직 선배를 만나면서 남아있는 직장생활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가슴에 새기고 있다. 요즘 와닿는 선배의 충고 중 하나는 '누구에게든 친절하라'는 것이다. 친절한 직장인이 퇴직 후에도 관계를 이어나가고 새로운 기회도 찾아온다는 것이다.


얼마 전 나를 찾아와서 기업 대출을 상담한 민원인에게 최고의 친절을 베풀었다. 상담을 해주고 아는 사람에게 전화부탁도 했다. 그분들은 고마워하면서 사무실을 떠났다.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듣고 정성을 다해 업무를 알아봐 주니 마음이 흐뭇했다. 타인에 대하여 베푼 친절이 두 배가 되어 내가 대접받은 기분이이었다. 


  미리 알았으니 뾰족한 수를 내어 볼 테다.


https://youtu.be/AGfY55q8T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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