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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May 16. 2023

성인 자녀 부양

이번 어버이날에는 전복솥밥

딸이 스마트폰의 지도를 검색하며 부산을 떤다.


아빠, 우리 집 근처 대형 마트 중 가까운 곳이 어디야?

문현동 이마트도 있고 남천동에 메가마트도 있는데 비슷비슷할 거야? 문현동이 좀 더 가까우려나.

어느 매장이 더 커?

품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비슷할 거야. 내가 차로 데려다줄까?

아니야, 버스 타고 가면 돼


나는 나중에야 딸이 무엇을 사려는지 알게 되었다. 전복과 달래를 사러 간다고 했다. 어버이날에 전복솥밥을 해주겠단다. 제법 묵직한 솥밥용 솥도 주문해서 사두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일요일 저녁에 딸이 해주는 음식을 먹기로 했다.


어버이를 기념하는 날이면 딸은 부엌을 차지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 오후, 비 오는 날에는 딸딸이지, 하며 딸은 우산을 챙겨나갔다. 집순이가 밖에 나가는 것도 신기한 일인데 거기다 혼자 버스 타고 간다고 하니 대견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꽤 지난 후 내게 전화가 왔다.


아빠 뭐 해?

거실에서 TV 보고 있지.

여기서 택시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

짐이 많은가 보네. 내가 차 가지고 갈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어.

오키!


장바구니를 든 딸을 마트 입구에서 태우고 돌아오면서 물었다. '각하오택시' 앱 깔고 쓰지 않나? 요즘 젊은이들은  다쓰던데. 응 당연히 쓰지, 근데 '아빠 택시'있는데 뭐 하러 돈 써.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습관은 칭찬할 만하다.


전복 손질하느라 끙끙대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다가 나도 거들었다. 칫솔질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전복이 뽀얗게 반짝였다. 전복 손질은 내장이 터지지 않게 껍데기와 몸체를 분리하는 게 관건이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서로에게 주의를 주면서 소란을 피웠다. 무사히 재료준비를 마쳤다.


그다음부터는 딸 혼자서 부지런을 떨었다. 밥이나 제대로 될까? 의심이 들었지만 믿고 기다렸다. 생쌀이라도 맛있게 먹여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나는 완벽하게 차려진 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복 내장의 색깔이 쌀에 그대로 녹아서 밥알은 녹두색깔을 띠었다. 밥에 간이 되었지만 짜지 않았다. 밥 위에 올린 조각난 전복은 쫄깃함에 더하여 씹는 동안 바다향이 사라지지 않았다. 


전복솥밥


접시가 하나 더 있었다. 버터를 발라 구운 전복에 볶은 마늘로 시즈닝을 해서 담았다. 버터는 전복의 향을 더 진하게 우려내었다. 처음에는 버터맛이 후각을 자극하지만 남는 것은 씹을수록 우려 나는 전복맛이다. 매운 마늘이 달달한 마늘로 변해서 주인공인 전복의 맛을 빛나게 한다.


버터 바른 전복 & 구운 마늘


딸은 달래를 주재료로 써서 양념장을 만들려고 했는데 제철이 아니라서 부추를 썰어 넣었다고 했다. 간장, 다진 마늘, 참기름, 설탕이 조금 들어갔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양념장 자체가 요리라고 할 만하다. 어느 음식이든 찍어먹고 뿌려먹어도 어울리겠다.


밥이 제법 양이 많았지만 스님의 발우 그릇처럼 설거지가 필요 없을 만큼 깨끗하게 밥솥을 비웠다. 나는 딸에게 주장했다. 왜 어버이날이냐고? 어머니의 날, 아버지의 날이 따로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딸은 어버이날과 자기 부모의 생일에 먹을 것을 만들어 준다. 볶음면, 쿠키, 빵, 스파게티, 종류도 다양하다. 딸은 부모에게 용돈과 선물을 줄 형편이 되지 못해서 음식을 만들어 준다... 


퇴직자의 리스크, '성인 자녀 부양'


 <퇴직하기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의 저자 이동신은 퇴직자의 리스크 중 하나를 '성인 자녀 부양'을 들고 있다. 나머지는 황혼 이혼, 창업 실패, 중대 질병, 금융 사기다. 


딸은 대학교 일 년을 다녀보고 자퇴를 선언했다. 학교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했다. 돈이 아깝다고 했다. 처음에는 공무원 시험 공부를 했지만 그것도 얼마가지 않아 못하겠다고 책을 덮었다. 집순이가 되었다. 


딸이 집에서 맹탕 노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게임 캐릭터 그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딸의 올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캐릭터를 돈을 주고 사고파는 플랫폼에 자신의 작품을 올리는 것이다. 3회 이상 게시하는 것이 목표다. 


어제는 포토숍과 비슷한 프로그램을 하나 구독해야 한다면서 나의 신용카드를 요구했다. 얼마 전까지 어도비 포토숍을 사용하는 구독료를 내가 지원해주고 있었는데 이번에 프로그램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공부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언제든지, 금액 상관없이 내게 청구하라고 말해줬다.


딸이 공부하는데 필요한 돈은 아깝지 않다. 더군다나 딸은 대학 등록금 3년을 아끼지 않았는가? 아들 학자금 대여가 뭉텅뭉텅 내 월급에서 떨어져 가고 있다. 나의 퇴직일까지.


딸은 자신이 받은 용돈으로 인터넷에서 투자를 하고 있다. 온라인 투자 연계 금융상품에 투자한 대가로 이자를 받게 되면 주말에 음료수를 한 번씩 사곤 한다. 옷 가게에 가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가격표부터 보는 아이다. 


나는 믿음이 있다. 뭘 해도 자기 밥법이를 할 것이라는. 딸과 함께 사는 것은 내게 리스크가 아니라 기회이고 기쁨이다. 


  딸, 돈을 벌더라도 내 생일에는 음식을 해주면 안 될까?


D-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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