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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May 22. 2023

50을 넘기면 한 올 한 올이 소중해

남자의 자존심

사건의 발단은 나의 몸 냄새였다. 정확하게는 땀 냄새다. 금요일 퇴근 후 내 방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거실로 나오자마자 아내가 한 마디 했다.


저 방에는 늘 이상한 냄새가 나, 오늘은 하루 종일 창문을 열어 놓고 환기시켰는데도 안 없어지네.

아들이 땀을 많이 흘렸잖아? 그게 방에 밴 거지. 

아들 집 나가고 당신이 방 쓴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건 핑계야. 당신이 문제야.


폰을 만지작거리던 딸의 싸늘한 눈길이 나를 향해 꽂힌다.


아빠, 집에 와서 샤워해? 안 해?

퇴근 후 수영장에 다녀온 날은 안 하지.

수영 한 날 빼고, 바로 퇴근 한 날은?

음... 다음 날 아침에 샤워할 건데 뭐 하러?


말이 끝나자마자 아내와 딸의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바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집에 와서 샤워를 안 하는 게 말이 되느냐, 집에 있는 사람의 건강은 안중에 없는 것이냐, 자기들이 감기와 비염이 끊이지 않는 원흉을 이제야 알았다느니, 어쩌고저쩌고...


나도 맞받아쳤다. 옷을 갈아입고 손, 발, 얼굴을 깨끗이 씻는다. 땀을 흘린 여름날에는 나도 샤워를 한다. 약간의 바이러스는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말까지 하려다, 집 나가라는 소리가 나올까 봐 그만뒀다.


나의 패배로 결론이 났다. 50을 훌쩍 넘긴 나이에 생활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지만 무조건 샤워를 하기로 했다. 딸이 다시 물었다.


아침에 샤워하는 이유가 뭐야?

자고 나면 머리를 감아야 해서 샤워부스에 들어가는 거야.

머리가 떡지는구나, 아빤 지성 피부를 가져서 더 그런 거야. 내가 쓰는 샴푸를 써 봐


딸은 '구운달 샴푸'를 거실 욕실에 갖다 놓으면서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우선 물을 썩어 거품을 낸 다음 두피를 구석구석 마사지하고 씻어내라고 했다. 매일 쓰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면서 이삼일에 한 번씩 사용하라고 권했다. 비싼 샴푸라는 것을 강조했다. 엄마가 사주지 않아서 자기 용돈을 모아 구입했단다.


아내의 잔소리보다 딸의 잔소리가 더 싫다. '알았다, 알았다'를 연발하다가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을 딸이 했다. 아빠, 머리 빠지는 거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야. 샤워 후 가끔 수챗구멍에 쌓인 머리카락을 보면 마음이 아려오는 나이다. 탈모를 예방할 수 있다니, 이런 고마운 샴푸가... 무조건 써야지.


나의 시선이 머무는 머리와 손, 목주름


내 나이의 남자를 만나면 나는 세 가지를 본다. 머리와 손, 목주름이다. 머리숱에 따라 헤어스타일이 달라지기 때문에  단번에 머리숱의 풍성함과 빈곤함을 눈치챌 수 있다. 은근히 나와 비교하면 자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부러움을 가지기도 한다. 머리숱이 뭐라고.


시골에 가면 아버지의 머리숱을 세심하게 살펴본다. 내 머리의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정수리부터 이마까지 서글프지만 단정하게 자리를 잡았다. 시골에는 바람이 왜 많이 불까? 나는  퇴직해도 시골에 살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 유전자의 특징은 검버섯이 유난히 많다는 것이다. 내 손에도 그렇다. 나는 한 번씩 손을 숨기고 싶다. 내 나이의 남자를 만나면 커피 잔을 든 손을 물끄러미 볼 때가 있다. 의외로 나이가 많지만 손이 고운 남자들이 많다. 세상에 부러울 게 많고 많지만, 난 왜 타인이 깨끗한 손이 부러울까?


마지막은 목주름이다. 나는 이 분야에서는 조금 자신이 있다. '아직까지는 자신이 있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올해가 지나면 나도 선명한 주름이 자리 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목주름의 유무에 따라 실제 나이보다 많이 들어 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나는 특별히 관리를 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좋은 편이다.


일 년 전 미용관계자가 내게 해준 충고가 도움이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 50살을 넘겼으면 꼭 실천해 보시길 권한다. (이미 실천하고 있는 분이 많을지도) 세수를 하고 얼굴에 로션을 바를 때, 목에도 충분히 바르고 목 부분을 쭉쭉 펴 주는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다. 펴져라, 펴져라, 주문까지 해주면 목도 시원해지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줄어드는 것과 늘어나는 것


  줄어드는 머리숱과 늘어나는 검버섯을 보면서 관리를 해야지 마음만 먹지 행동은 옮기지 못했다. 줄어들고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늦출 수는 있을 것이다. 머리 감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삼 년 전쯤, 연산로터리 피부과에 들러 얼굴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점과 검버섯을 제거하는 견적을 뽑아본 적이 있었다. 주말 식탁에서 말을 꺼내니 딸이 내게 한 마디 했다.


뭐 할라꼬?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하고 나는 깔끔하게 접었다. 이번 가을에 한 번 더 견적을 뽑아봐야겠다. 


딸, 젊어 보이는 게 죄는 아니잖아?


D-954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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