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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May 25. 2023

60년대생이 밀려온다, 집으로...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

답글을 달 수가 없어


유툽에서 평균 조회수 100회를 넘기기 힘든 나의 동영상이 3천 회를 앞두고 있다. 댓글도 하나 달렸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답글을 달기 위해 내용을 확인했다. 나는 문장 하나를 발견했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답글을 적을 수 없었다.


"제목이 숨이 턱 막히네여"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이해한다는 말을 차마 쓸 수가 없었다. 문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감을 읽었기 때문이다.


  동영상을 만든 계기는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퇴직한 남편을 둔 아내였다. 사모님 소리 듣던 저자는 남편 퇴직 이후 어떤 감정상태를 겪었으며 어떻게 새로운 삶을 준비하게 되었는지 소개하였다. 


퇴직을 이야기하는 여러 도서 중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글은 많지만 가족의 이야기는 드물었다. 나의 집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ppt 자료를 만들고 녹음을 했다. 동영상 편집프로그램으로 영상 자료를 시나리오에 맞춰 배치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작업하는 것은 썸네일이다. 관심을 끌만한 제목을 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얼마 전에 보았던 'KBS시사직격' 프로그램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제목을 떠올렸다. '860만 은퇴쓰나미, 60년대생이 온다'


다큐에서는 60년대생을 '마처세대' 라고 불렀다.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들로부터 봉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말이다. 국가의 경제성장을 이끌고 정치적 격동기를 겪는 동안 그들은 퇴직 이후를 준비하지 못했다. PD는 가장 많은 연령분포대를 가진 60년대생의 은퇴를 조명했다.


KBS시사직격 썸네일


은퇴자들이 왜 '집으로'?


나는 동영상 제목을 '60년대생이 몰려온다. 집으로'라고 지었다. 은퇴자들이 노동시장으로 몰려간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나는 왜 '집으로'간다고 제목을 만들었나? 퇴직자가 머무는 곳은 일차적으로는 집이다. 집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면서 재취업 시장으로 다시 진출하게 된다. 그것마저 실패한 사람도 있다. 


청년과 장년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이제는 쓸쓸히 집으로 돌아오는 가장, 그를 맞이하는 배우자의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 제목부터 숨이 턱 막힌다는 댓글을 보고 내게도 그 마음이 전달되었다.


숨이 막히기 전에 미리 대화하고 의논해야 한다. 퇴직, 은퇴, 노년, 자녀 독립, 가정 내 경제상황 진단을 미리 해야한다. 설계하지 않고 집을 지을 수 없다. 퇴직 이후 삶도 마찬가지다. 


은퇴한 남편을 맞이한 사모님은 어떻게 난관을 이겨냈을까? 책을 소개한다.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


"퇴직은 마치 여름에 불어오는 태풍과 같다."

"나도 숨 좀 쉬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돈 안 들이고 부부가 떨어져 지낼 수 있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


25년간 전업주부로 지내던 사모님이 배우자의 퇴직 이후 집안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퇴직한 남편은 다시 취직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옛 직장 동료와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식사하며 술도 한 잔씩하고 다녔습니다. 저자는 급기야 종일 집에 같이 있는 것도 숨 막혀 배우자를 어디 멀리 보내고 싶었습니다. 스님의 식사와 절 행사를 준비하는 공양주 보살 자리도 알아보았습니다. 저자의 한숨은 깊어지고 통장 잔액은 바닥을 보였습니다.


퇴직한 배우자를 바꿀 수 없으니 자신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아파트에서 빌라로 주거지를 옮기고 살림 규모를 줄였습니다. 병을 예방하는 자연 치유법과 건강한 마음을 주제로 공부하고 강사로 밥벌이를 시작했습니다. 저자가 감정조절과 동의보감 강사로 활동을 시작하자 배우자도 정신을 차렸습니다. 저자의 남편은 낮에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택배 분류일을 합니다.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는 박경옥 작가가 ‘배우자의 퇴직’이라는 태풍을 맞이한 후 평안을 찾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불안과 두려움, 분노가 가득했던 삶이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그 험난한 과정을 글을 읽는 것으로는 저는 짐작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평안함에 이른 두 분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 표지

  이 책을 산 이유는 하나입니다. 서점과 유튜브에는 퇴직자의 스토리는 넘쳐나지만, 가족의 이야기, 특히 배우자 관점에서 퇴직 가정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퇴직을 앞둔 저의 생각과 비슷한 내용이 있어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왕십리 6차선 대로변 괜찮은 빌딩에 사무실을 낼까?"

"자격증이 있으면 언제 소용이 있겠지."


저도 퇴직 후 오피스텔을 하나 빌려서 매일 출퇴근을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작가의 배우자보다 더한 사람입니다. 어느 날 저는 배우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퇴직하면 지난 시간도 돌이켜보고 새로운 삶을 계획도 할 겸, 3개월 정도 조용한 절에서 템플스테이를 할까 해"

"차를 한 대 빌려서 해안가와 휴전선을 따라 국토를 한 바퀴 돌아볼까? 5개월 정도 캠핑카 빌리는데 얼마나 할까? “


배우자가 한마디 했습니다. 

”퇴직하면 집에 있어도 절간 같을 건데 굳이 절에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


그 말을 듣고 난 후 저는 퇴직 전에 절을 찾기로 했습니다. 매년 사찰 한 곳을 찾아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미루지 않기로 했습니다. 퇴직 전에 대여섯 개의 사찰을 다녀보고 그래도 가야 한다면 가 본 사찰 중에 가장 좋은 곳을 고르겠습니다.


며칠 전, 동료가 퇴직하면 수영을 배우겠다, 고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내일부터 수영장에 등록해서 강습받으라고 권했습니다. 퇴직하기 전에 영법 기본은 익혀둬야 합니다. 퇴직 후 자신감이 바닥인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즐길 수 있겠습니까? 지금 시간이 없다고 미룬 것은 시간이 많아진다고 저절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책 읽고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내용 중에 밑줄 친 부분이 있습니다. 저자는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정착자와 퇴직 후 일자리를 찾아 옮겨 다니는 유목민의 차이는 뭘까, 하고 질문을 던집니다. 저자는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졌을까>라는 책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유목민이 정착자가 되어 항상 변하지 않는 풍경을 경험하면 감각을 발휘하는 힘을 서서히 잃는다. 정착하면 인간은 뛰어난 탐색 능력을 발휘할 만한 기회가 없다."(코쿠분 고이치로)


저는 곧 유목민이 됩니다. 일자리와 건강, 일, 돈, 여유를 찾기 위한 모든 감각을 단련(鍛鍊)시키겠습니다. 영화배우 황정민은 영화 <길복순>에서 천 일의 연습을 단(鍛), 만 일의 연습을 련(鍊)이라고 하면서 승부에는 우연이 없다고 합니다. 퇴직, 오히려 좋아.


  요즘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단어는 ‘퇴직 계단’입니다. 얼마 전 ‘추락하는 퇴직자에게 필요한 건 안전하게 내려갈 계단’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퇴직 선배 몇 명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퇴직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안전하게 내려갈 계단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만든 계단에 여러 명이 함께 내려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그 계단이 다시 좋은 시절로 인도해 줄지.


D-951


*표지사진: 채널명 '책임전가'의 유튜브 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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