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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May 17. 2023

나의 첫 번째 북토크, 서명은 힘들어!

엄마가 보고 싶은 날엔 코티분 뚜껑을 열었다

'나 책 나왔어요.' 공저이긴 하지만 책이 나왔다. 잘 아는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다짜고짜 책 나왔다고 광고하기에는 멋쩍었다. 공저 작가들 중 대구, 울산, 청도에 계신 분들만이라도 모아서 북토크를 한 번 해 보자고 마음먹고 기획서를 만들었다. 지난 주 토요일(5.13.), <엄마가 보고 싶은 날엔 코티분 뚜껑을 열었다>의 두 번째 북토크가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첫 번째 북토크는 4.15.(토)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그날은 도서 실물영접을 처음 하는 날이어서 더욱 설렜다.  생애 첫 도서를 손에 쥐고 북토크 저자로 처음으로 청중 앞에 앉게 된 것이다. KTX를 타고 서울로 가면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날은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린 날이기도 해서 비 이야기로 시작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벼 모종을 심을 시기에 내린 비는 농부에게 제일 반가울 것이고, 나의 아버지는 시골에서 지금도 농사를 짓고 계신다. 지금 내린 빗방울과 아버지의 땀방울이 모여 내가 먹는 밥이 되었다. 이 책은 그 밥 냄새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메모를 했다.


힙지로의 조그만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출판사 '어셈블'은 축하분위기로 웅성웅성했다. 청중의 대부분은 작가들의 지인이었고 몇 명은 텀블벅 후원자였다. 나를 축하해 주는 지인도 세 명이나 부산에서 왔다. 그들은 북토크를 기회로 서울 여행일정도 만들었다고 하지만 천리길을 달려왔으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두 시간 넘게 진행된 북토크가 순식간에 지났다. 사회를 맡으신 출판사 대표님의 능숙한 진행과 일곱 명 작가님의 진솔한 이야기에 청중은 웃고 울었다. 나의 지인 중 한 명은 실내가 건조해서 인공 눈물을 꺼내었는 데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했다. 


웃고 울었던 북토크


  첫 번째 북토크에서 나의 가장 큰 시련은 토크가 끝나고 나서부터였다. 참석자들이 서명을 해달라고 줄을 섰는데 나는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랐다. 아뿔싸, 내가 이걸 준비 못했구나! 질문 시간에 나의 '일천 권 독서와 독서 방법론'에 관심을 보였던 독자는 머뭇거리는 내게 한 마디 하셨다.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당황스러우시죠? 


행복과 행운, 어쩌고저쩌고... 정확하게 어떤 문장을 썼는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참석한 분 중에 이 글을 읽는 분이 계시지는 않겠지만 내게 서명을 받으신 분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첫 북토크에 참석한 초보 작가를 부디 너그럽게 용서하시길...


작가님, 서명과 문구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나의 스마트 폰에 기록된 메모장부터 살폈다. 가슴 속에 새겨두고 싶은 문장을 나는 메모해두고 있다.


"지금 시작해도 늦은 건 아동복 모델밖에 없다. / 신이여 바라옵건대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소서(라인홀드 니버) /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정치적으로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대안을 논리적으로 보완하고 지켜야 한다. / 나를 쓰러뜨리지 못한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니체)....(그 외 다수)


두 번째로 마음에 드는 시를 옮겨 둔 카드를 꺼냈다. '쥐꼬리에 대한 경배(성선경), 네 시간(이정록), 한계선(박노해), 하지감자 사랑(조소영), 소금인형(류시화), 별똥별(이문재), 푸른 밤(나희덕), 선운사에서(최영미), 썩은 사과의 사람(최정란) 등등, 주옥같은 시들이 나의 필체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덕분에 시간을 내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볼 기회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영화와 드라마 명대사를 훑었다. 공을 들인 만큼 좋은 문장을 찾지 못했다. 명대사는 영화나 드라마가 설정한 상황에 맞는 말이기 때문에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서명 문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고심 끝에 다섯 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각각 두 세개의 문장을 만들었다.  


썩은 사과상자 속에서도 가장 좋은 사과부터 먼저 골라먹는 습관을 가지라는 이야기(최정란 시인), 

스물 네 시간 중 네 시간은 자신만을 위한 네 시간을 보내라는 이야기(이정록 시인), 

기회를 놓치는 것이 기회일 수 있다는 이야기(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에서 인용),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이야기(찰리 채플린의 자서전), 

바쁜 일상이지만 해가 지면 연장을 거두고 휴식하라는 이야기(<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인용)


  5.13.(토) 부산에서 개최된 북토크에서는 여러 권 내 본 작가처럼 나는 일필휘지*로 서명했다. 누군가 말해줬다. 작가님 글씨체도 이뻐요.


*일필휘지: 붓을 한번 휘둘러 줄기차게 써 내려감


<엄마가 보고 싶은 날엔 코티분 뚜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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