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 말고 요리
헉, 내일 생일이라고! 아빠, 뭐 먹고 싶어?
감바스 해줘!
딸의 질문에 갑자기 생각났다. 마늘향이 짙게 밴 올리브유에서 새우를 건져 먹고 싶었다. 딸은 유튜버로 '백종원 감바스'를 검색했다. 딸이 음식을 만들 때면 가장 먼저 찾아보고 따라 하는 요리사가 백 선생이다. 아무리 어려운 음식이라도 간편하게 뚝딱 만들 수 있게 쉬운 단어로 설명해 주시는 분이다.
딸은 재료를 알려주는 화면에서 일단정지!, 빠르게 메모했다. 집에 있는 재료와 시장에서 사야 할 것을 구별했다. 느릿느릿, 늘 여유를 즐기던 딸인데 이때는 사뭇 다르다. 시장은 언제 가지?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겠다. 혼잣말을 하고 있는 딸을 지켜보던 아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생일날 먹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주말에 먹자.
안 돼, 생일날 먹어야지.
단호박이다. 주말은 어차피 맛있는 배달음식 시켜 먹는 날인데, 평일 저녁에 잘 먹고 놀면 더 좋지 않나? 나의 속마음을 읽어 준 딸이 은근히 고맙다.
생일 저녁, 나는 서둘러 퇴근했다. 내가 집에 들어온 걸 확인하고서야, 딸은 '이제 시작한다.'라고 외치고는 인덕션에 불을 켰다. 가만 보니, 새우, 마늘, 버섯, 방울토마토, 브로콜리는 이미 손질해 둔 상태였다. 딸은 미리 반쪽으로 썰어 둔 방울토마토를 먹어보란다. 거의 설탕 수준이다. 나는 씻으러 가고 딸은 불을 조절하면서 차례대로 재료를 넣어가며 익히기 시작했다.
먹음직스러운 감바스가 프라이팬에 담겨 식탁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감바스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겉이 딱딱한 바케트 빵이다. 딸은 '파리 바케트'에 바케트가 없어서 식빵으로 대신했다, 고 한다. 무알콜 샴페인까지 준비했다. 삼박자를 갖췄다.
새우는 더 탱글탱글해졌고, 브로콜리는 올리브유를 만나 단맛이 났다. 버섯과 마늘은 자신의 향을 잃지 않았다. 새우 한 개, 버섯 한 송이를 따로 먹기도 하고, 두세 가지를 섞어 입안에 떠 넣기도 했다. 골라먹는 재미와 별난 맛이 더해갔다.
재방송하는 '스우파(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시즌 2'를 보면서 감탄과 안타까움을 나누었다. 탈락 배틀에서 '딥앤댑' 팀은 뛰어난 기량을 보였지만, 개인 배틀에서 '울플러' 팀을 감당할 수 없었다. '딥앤댑' 팀의 '미나명'과 '원밀리언' 팀의 '리아킴'의 화해가 하이라이트였다. 댄스경연대회를 드라마로 만들었다.
후식으로 케이크를 먹고 나서 모든 생일파티가 끝났다. 딸은 음식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나는 '고맙다.'라고 했고, 딸은 플레이팅을 이쁘게 하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딸은 내 생일과 아내 생일, 어버이날, 이렇게 일 년에 세 번, 시장에 다녀오고 부엌을 독 차지한다. 딸은 선물을 준비할 수 있는 재정적인 여유가 없어서 요리로 대신하고 있다. 마음이 고맙다. 나중에 돈을 벌게 되어도 용돈 말고 요리를 해 주면 좋겠다.
이번 주말에는 딸이 좋아하는 마라탕을 배달시켜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