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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Jun 06. 2023

직장 없어도 여행 다닐 수 있을까?

늘 푼수 없는 가족이다. 코로나19가 한풀 꺾이고 처음 가는 여행지가 3년 전 갔던 여수라니! 그때는 여름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를 쓰기는 했지만 여행은 가능했던 시기였다. 그때 우리 가족은 여수에 앵커 호텔을 정해놓고 7일 동안 고흥, 강진, 보성 지역을 돌면서 맛난 음식과 풍경을 즐겼다.


기억나는 것은 통통한 하모(갯장어)를 끓는 물에 살짝 익혀 먹은 '하모 유비끼'와 배가 부르도록 발라먹고 비벼먹은 간장게장 맛이다. 그 맛을 잊지 못해 이번에는 여수에서 '먹부림'을 하자고 딸이 제안하였다. 핵심이 되는 식당과 메뉴를 미리 봐 두었다. 육회 사시미, 하모 유비끼, 간장 게장, 생선 조림, 이렇게 네 가지다. 


먹부림의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두 곳은 매우 만족하게 먹부림하였다. 간장 게장은 음식을 포장하여 부산에 와서 먹었다. 집에서 먹어보니 식당에서 먹는 그 맛이 아니었다. 생선 조림 식당은 아예 가지 않았다. 조림 음식을 먹을 날씨가 아니었다. 햇빛이 쨍쨍. 네 개의 메뉴 중 두 곳은 예쁜 사진도 찍어 멋 부리고 맛있게 먹었으니, 반타작은 했다. 계획 대비 성공한 여행이다.


육회 사시미


하모 유비끼


여행 첫날 육회 사시미를 먹기 전에, 소맥을 채워 아내가 한 마디 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직장에 열심히 다니고 있는 아빠를 위해 건배! 성인이 된 딸도 맞장구를 치며 잔을 부딪혔다. 나는 언뜻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퇴직하면 여행도 못 다니고 이렇게 비싸고 맛있는 음식도 못 먹게 되는 건가?


아니야, 아니야, 아빠 직장 다니지 않아도 멋진 곳에 여행 다니고 맛있는 음식은 비용 따지지 않고 마음껏 먹을 거야! 같이 다니자! 호기롭게 선언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젓가락질에 바빴다. 


육회는 많이 먹어봤지만 사각형으로 잘려 나온 사시미는 처음이다. 한우 앞다리 살이라고 주인이 설명해주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맛에 끌렸다. 딸과 나는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한참 동안 토론을 이어갔다. 결론이 났다.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가 사슴 앞다리를 뜯을 때의 그 맛!


여행이 내게 준 것


2004년,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아들과 둘이 영국에 다녀왔다. 카디프에 머물고 있던 직장선배가 초청했다. 선배 가족과 함께 런던 일원을 여행했다. 아들과의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2005년 1월에는 업무 때문에 중국에 출장을 다녀왔다. 기관을 방문하는 중간에 맛있는 중국 음식도 먹고 유명한 관광지를 지나기도 했다.  


두 번의 해외여행을 하는 동안, 나의 머릿속에 '빤짝' 불이 들어왔다. '여행'은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최고의 성장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낯선 곳에 자신을 버려두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가장 잘 돌보고, 돌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식구들과 같이 해외여행을 다녀야겠다! 2015년 여름부터 우리 가족의 해외여행이 시작되었다. 북경, 파리, 씨엠립(앙코르와트), 로마, 베니스, 방콕, 빈, 하노이, 스위스, 프라하, 다낭을 다녀왔다. 


가족 배낭여행의 원칙이 있었다. 첫 번째, 한 도시에만 머무른다. 두 번의 예외가 있었다. 로마를 가면서 베니스를 같이 다녀왔고, 스위스에 갈 때 취리히, 루체른, 인터라켄을 함께 다녀왔다. 알프스 여행은 13일을 사용했다. 한 도시만 머무는 이유는 보통 일주일 정도 되는 여행 기간에 여러 도시를 돌아봐야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도시만 집중적으로 돌아다니면 나중에는 어느 정도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다. 


같은 상점에서 간식거리를 사고 같은 커피숍에서 차를 마신다. 훗날 아들과 딸이 파리와 로마, 방콕을 여행왔을 때, 가족과 함께 갔던 그 음식점, 같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며 엄마, 아빠를 추억해 주면 좋겠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일요일 오후 5시 열리는 미사의 오르간 연주를 들으면서, 베네치아의 좁다란 골목을 돌아다니며 가면(마스크) 구경을 하면서, 트레비 분수 앞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가족 배낭여행을 한 번쯤 떠올리겠지.


파리 뤽상부르 공원의 어린이 놀이터에서 


로마 판테옹 광장에서


두 번째 원칙은 동남아 한 번, 유럽 한 번, 이렇게 동남와와 유럽 도시를 번갈아 가는 것이다. 비용 때문이다. 유럽은 동남아 여행 경비의 두 배를 사용한다. 파리 여행의 경우, 호텔이 비싸서 한국인 민박집을 이용했다.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선 채로 샤워를 했던 민박집이 떠오른다. 민박집주인이 아침마다 빵을 준비해 줘서 그 빵으로 거리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동남아는 달랐다. 수영장이 딸린 호텔에 묵었다. 씨엠립에 갔을 때는 크리스마스였지만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여행 경비가 만만치는 않았다.  아이들 학원 보내는 경비를 아꼈다. 때로는 빚을 내서 여행을 갔다. 지금 생각해 봐도 잘한 일이다. 아들과 딸은 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처음 등교하는 날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집으로 들어온다. 아빠, 이번 방학에 해외에 다녀온 아이는 나밖에 없더라! 경비 마련하느라 너희들 학원 안 보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비행기를 놓쳐서 24시간을 공항 내에 머물렀던 일, 환승시간을 맞추기 위해 공항 내에서 달리고 헤맨 일, 로마에서 소녀 소매치기단에게 완벽하게 당한 일, 파리 지하철에서 잘못 내려 이산가족이 될 뻔한 일, 딸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게 많다고 하지만 어딘가에는 저장되었다가 어느 날 불쑥 솟아나서 그녀를 몰랑몰랑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의 중년을 돌이켜 보면 가장 후회되는 일은 밥벌이를 핑계로 직장에 시간을 다 내주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없었다. 가장 잘한 일은 일 년에 한 번 아이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지금은 아들과 딸 모두 성인이 되어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마음을 맞추기도 어렵다. 예전처럼 네 명 모두 여행을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더 소중하다.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꼭 실천해 보시라고 권한다. 학원에서 배우는 것보다 낫다.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을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여행하면서 부딪혔던 사건과 사고, 가족 간 대화가 쌓였다. 그런 시간들 때문에 아들이 나의 문자를 씹어도 섭섭하지 않다. 딸이 내게 말을 붙이지 않아도 내일은 다르겠지, 하면서 조용히 잠자리에 든다.


일 년에 도시 한 곳 도장 깨기


50대에 들어서면서 '퇴직 후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지는 이미 갔던 곳 도시 중에 고르거나 아니면 전혀 새로운 곳일 수도 있다. 나를 잡아매는 직장이 없어지면 한 달 정도 외국 도시에서 살아 볼 생각이다. 일 년에 하나의 도시, 5개 도시를 먼저 살아 볼 작정이다. 신나고 체력이 따라 준다면 10개 도시까지 도전하겠다. 


열심히 돈을 모아야겠다. 돈을 벌기 위해 퇴직 후에 강연을 할 수 있는 준비도 차근차근하고 있다. 주식은 글렀다고 판단되지만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임계장'이라도 좋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다. 퇴직 전부터 본격적으로 방문할 도시에 대하여 알아보면 저렴한 비용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외국 생활에는 외국어가 필수다. '듀오**'라는 앱으로 매일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스페인어를 함께 공부하고 있다. 스페인어는 발음 자체가 매력적이라 배워보고 싶었는데, <종이의 집>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더 좋아졌다. 스페인어는 영어, 중국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외국어라고 하니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 매일 빠지지 않고 외국어를 공부하면 연말에 가족으로부터 포상도 받는다. '매일 영어와 스페인어 하기'는 2023년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여수 여행은 '퇴직 후 해외여행'에 대하여 다시 한번 전의를 다지는 시간이 되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퇴직은 '단절'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경력의 단절, 인간관계의 단절, 취미 생활의 단절, 마이너스 통장의 단절. 이러한 단절의 밑바닥에는 '돈'이 있다. 돈이 있으면 경력도 살릴 수 있도 취미도 할 수 있고 사람도 편하게 만날 수 있다. 


끊지 말고 이어라! 삶은, 여행은 계속된다. 


여행기, 사진, 비행 티켓, 현지 지도, 여행경비 정산서, 입장권을 모아 둔 여행 파일


*표지: 알프스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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