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우 Jun 28. 2023

건강절벽

오늘부터 나이를 두 살 더 빼준다고 하니 힘을 내야겠다

"왼쪽이 심합니다. 오른쪽은 경미하기는 하지만 수술하게 되면 함께 하세요"


토요일 오전부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른쪽 눈의 가장자리가 뻘겋게 물들고 눈을 깜박일 때마다 통증이 있었다. 어젯밤에 누군가 내 눈을 한 대 세게 치고 간 것 같았다. 주말 동안 인공눈물을 틈틈이 넣어주고 집에 남아있는 소염제 알약을 먹었다. 다행스럽게도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월요일 오후 직장 근처에 있는 안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다래끼'라고 했다.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깨끗하지 않은 손으로 눈을 비비는 경우, 눈에 염증이 생긴다. 의사 선생님이 덧붙여 말하길, 손수건으로 눈을 닦지 말라고 했다. 평소에 내가 자주 하는 행동이라서 '아차' 싶었다. 눈가에 분비물이 붙어있는 느낌이 있으면 뒷 주머니에서 손수건으로 닦아내곤 했다. 생각해 보면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닦는 손수건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 없이 산다. 


'다래끼'가 다가 아니었다. 동료가 추천한 안과 원장님은 친절하였다. 의사 선생님이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보더니 뜻밖의 말을 건넸다. '백내장입니다.'  내게도 말로만 듣던 백내장이 찾아온 것이다. 녹내장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한다.  


백내장은 카메라의 렌즈에 해당하는 수정체가 혼탁해져서 사물이 흐려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면서 서서히 시력이 떨어지는 질병이다. 주로 50세 이후 눈에 노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나는데, 수술 말고는 치료법이 없다. 원래 있던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 수정체로 갈아 넣는 방법을 택해야만 한다.


우습게도 나는 헨델이 떠올랐다. 헨델은 말년에 눈병으로 고생했다. 수술이 잘못되어서 염증이 생기고 결국 실명했다. 헨델의 눈을 수술한 '존 테일러'라는 의사는 바흐의 눈도 망친 악명 높은 의사였지만, 헨델도 그의 손을 피할 수 없었다. 헨델은 시력을 완전히 잃고 나서도 작곡을 하고 오르간 연주도 했다. 헨델이 병을 앓고도 음악활동을 한 것을 보고 눈 병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실명 전후를 비교하면 삶의 질은 하늘과 땅 차이다.


백내장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병이다. 흔히 '노안'이라고 불리는 질병과 함께 내게 찾아왔다. 의사와 약사의 도움 없이도 즐겨왔던 삶은 이제 저물었다.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 어둠의 유령이 나를 절벽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 이름은 '건강절벽'이다.


퇴직을 앞두고 맞이한 건강절벽


  사실 나의 건강을 위협하는 유령을 이번에 처음 만난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때부터 앓아온 간질환은 내게 간경화와 그에 따른 합병증까지 선물하였다. 다행히 간암까지 가진 않았다. 약물 치료를 계속하고 정기적으로 변화의 정도와 세기를 검사하고 있다. 


허리통증도 나를 괴롭히는 유령 중 하나다. 최근에 부쩍 심해졌다가 이제야 조금 해방되었다. 수술 안 하고 지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선천성 소아마비가 있어 걷기도 불편하다. 요즘은 손수건으로 깔창을 대신해서 사용하면서 조금 낫다. 이 부분은 별도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서 그냥 살아가고 있다. 치아 상태도 좋지 않다. 몇 년 전 대대적으로 잇몸 손질을 한번 하고 난 이후, 치과에도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다. 이것들 말고도 찾아보면 더 있지만 나머지는 좀 숨겨두자. 자랑이 아니다. 


이제는 새로운 유령들이 호시탐탐 나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중 첫 번째로 찾아온 것이 백내장이다. 다음에는 뭐가 또 찾아올지 궁금하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미리 노크를 해 준다는 것이다. 예고 없이 찾아온다면 얼마나 황망할지...


절벽을 어떻게 내려갈 건데?


뾰족한 방법은 없다, 운동하고 검진하는 것 밖에. 나의 운동은 두 가지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신이 깨기 전에 몸부터 먼저 푼다. 나의 아침 몸동작은 스트레칭, 요가, 코어 근력운동과 비슷하다. 딱히 호칭을 붙이기에 애매하다. 지금은 10분에서 15분가량 매트 위에서 몸을 놀리고있다. 시간을 좀 더 늘려야겠다. 


두 번째는 수영이다. 수영을 빼고 나의 건강을 이야기할 수 없다. 혈액검사 결과 중 정상범위에 나타나는 수치는 수영 덕분이다. 수영은 나의 생명의 은인이지만 수영때문에 죽을 뻔한 경험도 있다. 나의 수영실력을 자만하고 태풍이 오던 날, 해운대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가까스로 백사장에 도착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지만 잘 살고 있다. 수영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기 때문에 티스토리에 별도 카테고리를 두고 글을 쓰고 있다. 


노인이 되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검진이다. 나라에서 챙겨주는 정기 건강검진과는 별도로 챙겨야 한다. 나는 퇴직 후 병원과 멀리 떨어진 시골에 가서 사는 것은 싫다. 건물 내 의사가 상주하는 요양원도 싫다. 독립적인 도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혼자 밥 챙겨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건강을 가져야 한다.


병원에 자주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병원에 다녀오면 건강에 대한 다짐을 새롭게 한다. 삶이 무료하거나 고달플 때, 새벽시장에 가는 것과 비슷하다. 남들 다 자고 있을 때 생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자판에서 살아보겠다고 팔딱이는 물고기를 보면, 저절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더 많아지는 시기다. 상황을 잘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나이란 그런 것이다. 오늘(2023.6.28.)부터 나이를 두 살이나 빼준다고 하니 힘을 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득 절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