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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Sep 12. 2023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허리

나이가 아무리 나를 먹어도

"허리가 굽고 조금 뒤틀려있습니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옆에서 본 척추 사진은 굽어 있었고 뒤에서 본 사진은 S자 모양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디스크 돌출이나 협착 같은 이상 증세는 없다고 말했다.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으로 발걸음을 제대로 뗄 수 없는 이유는 모두 근육문제였다.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물리치료도 좀 받으시죠?

선생님, 제발 주사도 좀 놔주세요.


나는 의자에서 일어설 때마다 몰아치는 통증과 걸음걸음마다 몽둥이로 내리치는 듯한 아픔 때문에 극단적인 처방을 부탁했다. '주사가 직방!'이라는 동료직원의 말을 떠올리고 주사를 부탁했다. 


주사실로 이동해서 대기하는 동안 괜히 주사를 놓아 달라고 했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허리 수술까지 했던 동료의 말에 의하면 '살면서 맞은 주사 중 허리 아플 때 맞은 주사가 제일 강도가 셌다.'라고 했다. 뼛속까지 전해오는 주삿바늘의 느낌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든다고 했다. 


간호사는 엎드려 누운 나의 허리에 시원한 솜으로 여기저기 소독했다. 나는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태연한 척했다. 내가 이렇게 겁이 많았나? 주사가 아무리 아픈들 지금 통증보다 더 하겠나? 그래도 찔끔 놀라거나, '악'소리라도 낸다면 얼마나 창피할까? 별생각을 다하며 저승사자가 주사실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의사가 들어와서 허리를 짚어 보더니 한 마디 했다. 좀 따끔할 겁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 줘서 고마웠다. 미리 소독해 둔 곳에 바늘 같은 것을 찌르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 끝났다고 했다. 엥?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나오면서 간호사에게 물었다. 


왜 안 아프죠? 

이 주사는 경증환자에게 처방하는 겁니다. 아픈 건 따로 있습니다. 


나는 허리에 손을 댄 채 어기적 어기적 걸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PT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작살난 허리


허리 통증이 유발된 사연은 이랬다. 야심 차게 헬스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트레이너는  그날의 마지막 운동으로 허리운동을 시켰다. '백 익스텐션'이라는 기구를 사용했다. 몸을 비스듬하게 고정시킨 후 팔짱을 끼고 상체를 숙였다가 허리힘으로 들어 올리는 운동이었다. 


나는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허리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트레이너는 허리가 아플 수도 있지만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시킨 대로 20개씩 3세트를 했다. 그날은 잘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침대에 일어나는 순간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다. 예리한 칼날이 잠시도 쉬지 않고 허리를 쑤셔댔다. 입에서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것조차 끙끙거렸다. 병가를 내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있어 참고 출근하기로 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파스 한 장 붙이는 일 밖에 없었다.


사무실 근처 정형외과를 수소문했다. 동료들에게 추천받은 병원 중 하나를 선택해서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병원문을 들어섰다. 거북이처럼 걸었다. 의사 면담 전에 엑스레이부터 찍었다. 천만다행으로 고통의 원인은 근육문제였다.


허리의 중요성


허리를 아파 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에게 허리 숙여 감사함을 표시하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불편 없이 바지를 입고 양말을 신을 수 있는 자신이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른다.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도 사흘 정도 허리 통증은 계속되었다. 통증은 있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아파도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나중에 알았다. 고통의 원인이 뼈 자체에 있지 않고 척추와 엉덩이를 감싼 근육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나의 뇌가 그 사실을 계속 주입시켰다.


네 허리가 아픈 건 근육이 약해서야. 운동을 계속해! 그럼 좋아질 거야.


엑스레이 한 장이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 그동안 허리 때문에 고생했던 날들이 가끔 있었지만 진작에 그 원인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조금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나의 신체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허리가 중요하다. 허리가 꺾이지 않아야 바른 자세가 나온다. 허리가 꺾이지 않아야 가슴을 펼 수 있고 당당해질 수 있다. 퇴직 후에도 허리는 여전히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답을 가지고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 


나이가 아무리 나를 먹어도 내 허리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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