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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Jul 14. 2023

퇴직 전, 마지막 승진

내 생애 최고의 축하를 받았다.

퇴직 전, 마지막 승진을 했다.


나는 9급 행정직으로 입사했다. 서기보에서 시작하여 서기, 주사보, 주사, 사무관을 거쳐 이번에 서기관까지 승진했으니 할 만큼 했다. 예전에는 9급으로 들어와서 2, 3급까지 승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요즘은 승진이 적체되어서 최고위직까지 승진하기는 어렵다. 사무관까지 승진해도 잘한 것이다. 퇴직을 900여 일 앞두고 서기관까지 달았으니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일반 직장이었으면 임금피크제에 들어가거나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퇴직을 할 나이다. 수협 다니던 친구 한 명은 몇 년 전 직장에서 벗어나서 골프 치러 다닌다. 언제 사장실로 호출당할지, 불안해하고 있는 임원 친구도 있다. 


  나는 지난주 수요일부터 새로운 자리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축하를 많이 받았다. 축하전화를 시작으로 문자와 깨톡, 꽃바구니, 화분, 요즘 보기 힘든 축전까지. 오래전에 퇴직하셨던 분도 어떻게 아셨는지 축하를 해주었다. 나는 축하를 보내준 분에게 답을 하느라 바빴다. 전화를 드리거나 감사 문자를 보냈다. 


함께 근무했던 동료와 후배의 방문도 이어졌다. 맛있는 떡과 샌드위치, 컵 과일을 준비해서 사무실에 찾아왔다. 몇 개 팀은 우리 부서 직원들의 먹을 것까지 챙겨 왔다.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 준 직원들이 고맙다. 독서클럽 회원들은 좋은 글 많이 써라며 무선 키보드와 마우스를 선물했다. 


축하를 받는 동안 두 가지 마음이 일어났다. 하나는 '이렇게 많이 축하를 받아도 되나'하는 미안함과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축하를 해 주었나'하는 물음이다.


이렇게 많은 축하와 축복, 다 받아두자.


나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어떤 이는 젊어졌다고 했다. 오랜만에 본 사람은 '옛날 그대로다.'라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타인이 나의 얼굴을 보고 '세월을 비껴간 것 같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침을 경계하는 말이다. 축하는 좀 다른 것 같다. 축하는 많이 받아도 지나침이 없다. 축하한다,는 말 속에는 아무런 독이 없다. 많이 먹어도 탈이 없다. 


그래도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약간의 불안함이 자리했다. 이렇게 축하를 많이 받아도 되나? 이러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건 아닌가? 이런 불안은 자존감이 약한 사람의 특징이다.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이다. 현재의 행복을 이어나갈 자신감이 없는 것이다. 행복 후에 닥칠지도 모를 불운이 걱정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번 승진이 직장 생활 중 마지막 승진이다.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 조직에 나의 육체와 정신을 갈아 넣었다.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하기도 했다. 업무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 날도 많았다. 승진심사에서 탈락된 날은 억울한 마음에 끙끙 앓기도 하였다. 이번에도 승진 발표 나기 전 일주일 동안, 아침잠을 설쳤다.


이번 승진은 그렇게 보낸 시간에 대한 마지막 결실이다. 서기관 승진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내게 보내주는 축하를 마음 편히 받아야겠다. 이번에 받은 축복의 에너지로 남은 직장생활을 잘 버틸 수 있겠다.


나는 얼마나 많은 축하를 해 주었나?


축하를 받고 나니 내가 축하에 많이 인색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읽은 <사랑 수업>(윤홍균 저)이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건 사랑받는 느낌이지만, 두 번째로 좋은 건 사랑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건 축복받는 일이지만 두 번째로 좋은 건 축복하는 일일 것이다. 나의 조그만 축복이 그 사람에게 닿아 쌓이고 쌓이면 엄청난 홍수도 굳건하게 막을 수 있는 둑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서로의 둑이 되고 울이 되는 관계를 가진 사회라면 살 만할 것이다.


  지난 수요일(7.11), 5급 이하 승진자 발표가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쳐 축하전화를 하지 못한 직원에게 축하를 해야겠다.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직원도 찾아내어 전화를 해야겠다. 며칠 늦었지만 어떠랴, 내 마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조금 지연된 축하라도 기쁘지 않겠는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D-901일

(며칠 전, 천일 남았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이제 900일 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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