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석에 앉아있는 사람 앞에 서지 말 것, 사람을 빤히 쳐다보지 말 것
퇴직 선배가 우리 집에 산다. 아내는 4년 전쯤 먼저 직장을 떠났다. 백수가 과로사할 확률이 높다는 말은 아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늘 바쁘신 분이다.
토요일 저녁에 부산에서 개최되는 가을 축제를 한번 정리하더니, 일요일 함께 나가잔다. 한동안 함께 놀러 간 적이 없었는데, 먼저 가자고 하니 마다할 수가 없다. 축제도 구경하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일요일 오전, 아내는 백팩을 챙겼다. 가방에는 물, 휴대폰, 작은 우산, 비상용 식량, 장바구니가 자리를 차지한다. 외출을 위한 물품들이다. 외출을 위한 마지막 순서는 신발신기다. 등산화를 신고 끼릭끼릭 단추를 조이면 준비는 끝이다. 아내는 '영화의 전당'에 갈 때도 등산화다. 언제 걷게 될지 모르니 준비한다. 퇴직자의 자세다.
목적지는 자갈치 축제가 펼쳐지는 남포동 어시장이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탔다. 일요일 오전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나는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 앞에 손잡이를 잡고 섰다. 재수가 좋아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다음 역에 내리면 편하게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내는 출입문이 있는 공간으로 나를 조용히 끌어당겼다. 그렇게 서 있으면 앉아 있는 사람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넓은 문 주변 공간에 서라고 충고했다.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자갈치역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아내가 다시 눈치를 준다. 에스컬레이터 계단에서 한 칸 뒤로 물러나라고 옷깃을 잡아당긴다. 앞사람 뒤에 바짝 붙어서 올라가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불편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바꿔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누군가 내 등 뒤에 바짝 붙어 꼼지락 거리면 위험을 느낀다. 요즘은 그 불안감이 더해진 시대다. 혼잡한 상황이 아니면 한 칸 정도는 간격을 두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게 에티켓이란다.
그것 말고도 아내는 내게 주의를 주는 것들이 있다. 사람을 빤히 쳐다보지 말 것. 무료한 노인이 벤치나 길거리에서 지나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이런 행위는 시선을 받는 사람으로서는 상당히 불쾌할 수 있다는 것이 아내의 주장이다. 아내는 그 눈빛이 싫다고 했다. 자신은 그냥 멍하니 지나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눈길을 의식하는 사람은 불편하다.
퇴직 선배의 말을 무시할 수 없어 그러겠다고 말했다. 어찌 이것뿐이랴? 나이 들면, 게다가 무료해지고 체력이 떨어지면 지금은 안 하는 행동, 태도가 늘어날 것이다. 지적질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다행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