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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Nov 10. 2023

제2의 인생 같은 것은 없다

회사를 이용하라

대기업을 퇴사한 A 씨의 말을 들어보자.


임원승진에 실패하고 퇴직을 했어요. 섭섭함 반, 시원함 반이었죠. 부산으로 내려왔어요. 몇 달이 지나서 선배가 자기 일을 좀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간곡하게 부탁하니 안 들어줄 수가 없었어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서울로 출퇴근하면서 일 년 정도 도왔죠. 다시 쉬고 있으려니 이번에는 부산시에서 급하게 찾았어요. 대기업을 유치했는데 셋업 하는 기간만 좀 도와달라고 했어요. 어쩌다 보니 정규직원이 되어서 일하고 있어요. 물론, 대기업 다닐 때보다는 여유롭고 마음도 편해요. 


얼마 전, 퇴직자를 대상으로 그룹 인터뷰를 했을 때 나온 A 씨의 이야기를 간추려 보았다. A 씨는 직장 다닐 때 만났던 사람과의 인연, 그때의 업무 연장선에서 퇴직 이후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퇴직자와 함께 퇴직 예정자 그룹 인터뷰도 진행했었다. 퇴직 예정자들에게 퇴직의 의미는 긍정적이었다. 퇴직 후에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자 했다. 노후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직장생활에서 겪었던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생각에 들떠 있었다.


퇴직 예정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직장의 고달픔을 쏟아냈다. 얼마나 많은 억지 모임과 가짜 노동에 시달렸는가? 밥벌이를 위해서 견딘 모욕은 또 얼마였나? 퇴직 후에는 순전히 자기 자신에 집중하고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퇴직 후 관계와 일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는다 


A 씨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내가 새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완전히 새로운 관계는 없다. 나는 아직도 퇴직자들로부터 고지서를 통보받는다. 퇴직 선배들이 부고장이나 청첩장을 문자와 카톡으로 알려온다.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소식 전하기는 일도 아니다. 나는 친분의 정도에 따라 부조를 하고 있지만 경조사 통보를 받는 일은 부담스럽다. 


황당한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어떤 분이 내가 깜빡 잊고 부조를 안 한 거 아니냐면서 확인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친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성의를 표시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난 후 내게 따로 연락이 왔다. 아마 그분은 직장에 있었을 때 내게 부조를 하고 기록을 해 놓았으리라. 원인이야 어떻든 간에 나는 급하게 그분의 자녀 결혼 축하금을 보냈다. 


내가 만난 퇴직자 중에는 직장 다닐 때 맺었던 관계로 재취업하는 경우도 있었다. B 씨는 업무 때문에 어느 회사 대표를 알게 되었는데 관계가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그 대표는 B 씨가 퇴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간부로 채용했다. 나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B 씨는 '업무 중 외부인을 만나게 되면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라'라고 조언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다고 하면서.


일도 마찬가지다. 퇴직 선배들을 만나보니,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어느 날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직장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거나 유사한 일을 하고 있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사무직 일을 하다가 노동 현장에서 일을 할 수는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전혀 다른 일을 시작했을 때의 어려움은 퇴직 선배 C 씨로부터 들었다. C 씨는 공인 중개사 자격증을 땄다. C 씨는 눈도 침침하고 기력도 예전 같지 않은 상태에서 힘겹게 공부하고 마침내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자격을 땄으니 일을 해야 한다. 먼저 실전을 익힐 요량으로 공인중개업무를 배울 만한 선배 중개사무소를 알아봤다고 한다. 웬걸!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나이 많은 신참 중개사를 누가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쳐 주겠는가? 팔팔 날아다니는 청년을 보조로 쓰는 게 당연하다. C 씨는 합동 사무소에서 업무를 익히면서 다른 사업도 하고 있다.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회사를 이용하라


지금 직장에 있을 때 충분히 회사를 활용해야 한다. 업무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인맥을 넓혀야 한다.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교육프로그램은 가능하면 받아보기를 권한다. 어떤 교육이든 하나라도 배우는 게 있다. 업무 처리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체계화시켜라. 기록해 두라. 이 모든 게 재산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일로 만난 사이라고 하더라도 주파수가 같다면 친분을 쌓아두는 게 좋다.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분에게 배울 게 있는지 신경 써서 살펴보라. 직장 동료 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퇴직 후에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고 하지만, 그것도 하기 나름이다. 힘든 일을 함께 헤쳐나간 팀원이나 직장 내 동호인 모임은 퇴직 후에도 충분이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 


  퇴직 후 새로운 인생은 없다. 새로운 마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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