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생일, 나는 새로운 다짐을 했다
딸 생일이 다가왔다.
뭐 필요한 거 없어? 돈 생각하지 말고 아빠에게 말해
오키, 고민해 볼게!
딸의 생일이 다가올수록 택배가 늘어났다. 클렌징 폼, 시리얼 그릇, 머그컵, 무드등, 케이크가 배달되었다. 비타민이 대세였다. 딸은 자기가 받은 것 중에 눈에 좋다는 비타민 한 통을 내게 건네주었다. 비타민은 사무실 책상 위, 눈에 띄는 곳에 두고 챙겨 먹는 게 국룰이란다.
비타민 젤리 몇 종류는 식탁에 두고 가족끼리 먹기로 했다. 평소에 비타민을 사지 않는 우리 가족은 딸의 생일 기준으로 한 해의 비타민을 공급받는다.
<받은 선물사진 캡처>
올해 생일 선물 중 눈에 띄는 것은 한우 팩이었다. 한 끼 구워 먹기 좋게 소고기가 깔끔하게 포장되었다. 딸 덕분에 주말 식탁이 풍성해졌다. 지난해에는 직접 만든 케이크가 배달되어서 우리를 놀라게 만들었다.
생일 하루 전, 딸에게 다시 물었다.
아빠에게 뭘 받을지 생각했어?
응, 아빠 그냥 돈으로 줄래?
그래, 네가 알아서 필요한 데 써는 게 좋겠다. 얼마 줄까?
오만 원!
오만 원! 그 금액을 듣는 순간 조금 놀랐다. 20대 중반 나이에 오만 원이라는 돈은 큰돈이 아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생일, 아빠에게 선물대신 오만 원을 받겠다는 딸. 나는 '오만 원'이라는 액수는 아빠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딸은 대학교를 일 년 다니고 그만두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집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다. 오만 원에는 성년이 되어서 집에만 있다는 미안함이 들어 있는 것 같다. 가족의 생계를 아빠 혼자 책임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연민도 좀 담긴 것 같다. 내가 집에서 퇴직 준비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아빠의 미래도 불안한가 보다.
딸은 돈에 민감하다. 의류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보면 가격표부터 챙겨보았다. 아들은 돈에 둔감하다. 제대 후, 명품 지갑을 사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자기 엄마로부터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었다. 대체로 사내는 철이 없다.
나는 아들을 크게 나무라지 못했다. 나 역시 그랬던 기억이 있다. 대학 다닐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제법 큰돈을 모은 적이 있었다. 나는 사귀고 있던 여자 친구에게 중고차를 한 대 사자고 제안했다. 지금은 사라진 대우자동차에서 만든 '르망'이라는 자동차를 가지고 싶었다. 여자 친구는 헤어질 결심이 서면 차를 사라고 통보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주말에 시켜 먹는 배달음식에는 늘 사이드메뉴가 서비스로 배달되었다. 딸은 음식을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두고 음식점에 리뷰를 꼭 달아준다. 어느 날은 주문한 메뉴가 하나 더 배달되었다. 주문이 잘못된 것인가, 의심하면서 가게에 전화를 했다. 손님이 너무 정성스럽게 댓글을 달아줘서 고마움을 표시한 거라고 가게 주인이 말했다. 딸에게 물어보니 리뷰를 여섯 줄 정도 적었다고 한다. 가게 주인은 딸의 문장을 고정 댓글로 만들었다.
딸의 생일 아침 다짐을 한다. 퇴직 후에도 매년 9월, 딸 생일에는 내가 쏘겠다고. 딸이 좋아하는 회초밥에 용돈 십만 원은 줄 수 있는 아빠게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