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읽는 아빠곰 Oct 19. 2015

월요일 아침

육아휴직하는 초2 아빠의 일상스케치

회사에 다닐 적에는 월요병이라는 게 있었다. 


보통의 직장인들은 월요일에 회사에 가기 싫다든가 월요일의 고된 출근길이 부담스럽다든가 하는 것일텐데 나의 경우는 일에 시동이 잘 안 걸리는 것이 월요병이었다. 

주말에 너무 잘 놀아서 그 여파가 월요일까지 간다기보다는 주간 간부회의 내용을 전달받고 주중에 할 일들을 생각해 보고 처리할 순서를 정하고 상사께 보고드릴 것을 정리하다 보면 월요일 오전은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나 자신을 변호하자면 월요병이라기보다는 한 주를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한 정리와 준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하고 싶다. 


집에서 살림하고 있는 기간에도 월요일 오전은 다른 시간과 좀 다르게 보내는 것 같다.

주말, 가족과 함께 캠핑을 가든 신나게 놀든 도서관에 가거나 영화를 보든 간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모두 재미있고 소중하다. 

하지만 식구들이 출근하고 학교에 가고 난 월요일 아침, 집안을 둘러 보면 놀기는 같이 놀았지만 뒷정리는 온전히 내 몫으로 남겨져 있다. 

밖에서 뒹군 흙투성이 빨래와 기름 묻은 설거지거리들이 쌓여 있고, 주말내 냉동실을 털어 화석이 된 것은 버리고, 화석이 되기 전의 것들로 알뜰하게 끼니를 해결했으므로 다시 냉장고를 채울 것들을 사러 마트에도 가야 한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만들다 만 장난감, 침대와 소파에 던져져 있는 책들은 마음을 더 심난하게 한다.




월요일 아침, 식구들이 집을 떠나고 나면 일단 집안을 쓰윽 둘러본다.

그리고 오늘 꼭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을 우선 추려 본다. 오늘은 빨래, 청소, 장난감과 책 정리, 책상과 싱크대 정리까지만. 나머지는 내일 하지 뭐.


빨래를 돌려 놓고 청소기를 꺼내러 가다가 '커피 한잔 마시고 해야지' 하고 식탁 의자에 걸터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 캡슐커피에 우유를 부은 차가운 라떼지만 운동 후의 맥주만큼 맛있다. 


복작거리는(그래 봐야 3명밖에 안 되는 단촐한 식구다) 주말을 지나 처음 갖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

할 일은 많지만 일단 미루어 두고 혼자 보내는 평온한 느낌.

망중한이 아니라 한중망이라고 할까. 아니, 반대인가? ㅎㅎ

어쨌든 월요일 오전 이 시간은 방해받고 싶지 않은 나만의 재충전 시간이다. 


역시 이것도 주부의 월요병이라고 하기에는 좀 과격하니까 '월요일 아침 시간을 보내는 나만의 방법' 정도로 해 두자. 

일본 자기계발서 제목이라면 '월요일 아침 1시간의 힘', '월요혁명' 이런 식이 될 테고, 버즈피드라면 '월요일 아침을 효율적으로 시작하는 7가지 방법'. 쓸데없는 것 부풀려서 위기처럼 만들기 좋아하는 한국 언론이라면 '한국인의 월요일 아침, 이대로 좋은가?', '한국 직장인 생산성 저하의 주범은 월요병' 이렇게 뽑지 않을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까지도 월요일 아침, 혼자 흘려보내는 시간의 선물인 것 같다. 




이번 주 월요일에는 더 큰 선물을 하나 받았으니, 주말내 산더미같이 쌓여 있던 설거지를 엊저녁 내가 먼저 잠든 사이 집사람이 싹 해 준 덕분에 큰 근심거리 하나를 덜었다.


이런건 진심으로 고맙다. 

그저 '고마워' 라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그러니까 살림 전담이 아닌 가족구성원(주로 남편들)이 주말에 집안일을 '도와 줄' 때는 이렇게 할 일이다. 그래야 고맙단 소리를 듣게 된다. 나는 도와준 것 같은데 고맙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면 제대로 한 게 아닌 거다.


어느 새 세탁기가 삑삑대며 나를 부른다. 가 봐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김밥 유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