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하는 초2 아빠의 일상 스케치
엄마 말고 아빠가 집에 있으면 장점이 뭐가 있을까?
무거운 짐을 들 수 있다는 점?
전구가 나가거나 문 손잡이가 고장났을 때 자체적으로 고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낮에 택배기사나 낯선 사람이 초인종을 눌렀을 때 좀 덜 위험하다는 점? (하지만 낯선사람이 초인종 누르면 무서운 건 똑같다.)
상식적으로 떠오르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큰 장점은 없어 보인다. 사실 언급한 두세 가지를 제외하면 전부다 단점이 아닐까?
그렇다면 아이 입장에서는 아빠가 집에서 본인을 봐주고 있다면 다른 보육자가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점이 있을까?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밥은 덜 정성스레 차려 주거나 맛이 없을 가능성이 높고, 아빠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는 자기 말에 귀기울여주거나 응석을 받아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다. 엄마처럼 안아 주고 책을 많이 읽어 주지도 않을 것이다.
특히 나의 경우는 아이에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고, 좀 힘들어도 정해 놓은 기준은 지키도록 하는 편이어서 아이가 느끼기에는 융통성이 없어 답답하게 느낄 것 같다.
다만 아빠가 집에 있어서 아이에게 좋을 것 같은 점은 아마도 대개의 아빠는 잘 놀 것이라는 점이다.(놀아 주는 것 말고 그냥 노는 것 말이다.)
아이 입장에서라면 우리집에는 덩치 큰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는 같이 놀기에 재미있고, 웬만한 것은 나보다 더 잘 하며 내가 잘 못 하는 것은 가르쳐 주고 내가 해 내면 진심으로 칭찬해 준다. 게다가 그 친구는 돈도 갖고 있어서 기분이 좋으면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도 사 줄 것이다. 하지만 가끔가다 흥분하거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면 버럭 소리를 지르니까 조심해야 한다. 이런 느낌이 아닐까?
아빠들이 아이와 놀 때는 게임을 하든, 바둑을 두든, 연을 날리든, 몸으로 하는 놀이를 하든 간에 아빠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몰입하여 재미있게 놀 것이다.
게다가 바깥에서 몸을 움직여 가며 하는 놀이를 아주 좋아하며 잘 할 것이다. 특히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같이 놀기에 적당하다.
우리 아이도 이제는 여러 가지 종목에서 해볼만 한 수준에 올랐다.
배드민턴은 이제 곧잘 쳐서 엄마아빠와 대적할 만하고, 야구공도 제법 방향을 맞추어 던질 줄 안다. 축구, 농구도 공 다루는 스킬이 느는 것이 하루하루 눈에 보일 정도다. 물론 아직 아빠한테는 안 되지만.
자전거는 엄마아빠보다 더 잘 타고 웬만한 언덕은 기어 바꾸지도 않고 댄싱으로 올라오기도 한다.
이제는 아이와 같이 놀면 재미있다. 좋다.
그런데 사실 요즘은 내가 나가 놀고 싶은데 아이가 학예회 연습이다, 학원 행사 준비다 하여 바빠서 같이 놀 시간이 별로 없다. 게다가 해가 짧아지고 날씨가 추워지니 나가 놀 시간이 더 없어져서 내가 조바심이 난다.
애 올 시간이 얼마 남았나, 오늘은 캐치볼을 할까 자전거를 탈까 생각하고 있다 보면 이건 꼭 주인이 얼른 돌아와서 놀아주거나 산책 가기를 기다리는 개 같기도 하다.
아이가 인정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빠가 집에 있어서 좋은 거의 유일한 이유인 바깥에서 놀기. 오늘은 바람이 좀 부니까 캐치볼과 농구를 해야겠다.
학원 차 도착할 시간이 다 됐다. 아예 공 들고 나가서 학원 차에서 내리면 붙잡아다가 놀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