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하는 초2 아빠의 일상 스케치
아이가 학원 차에서 내려 의식처럼 향하는 곳이 있다.
맞은편 아파트 단지 놀이터인데, 거기서 미끄럼틀에 있는 쇠 봉 타고 올라가기를 가르쳤더니 이제는 곧잘 기어올라가곤 한다.
어느 볕 좋은 가을날, 한 조각 남은 그늘에 끼어 앉아 아이가 놀이터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것을 보고 있다가 위험할 것 같으면 미끄럼틀 쪽으로 한 걸음 갔다가, 안전한 것 같으면 다시 그늘로 돌아오면서 아이 노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한참 놀다가 아이가 아빠를 찾으며 ‘아빠~’ 하고 부르게 된 일이 있었다.
그러자 저 쪽에 모여서 역시 아이들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엄마들 그룹에서 '쟤 아빠구나~' 하는 목소리가 놀이터를 가로질러 나에게는 명쾌하게 들리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 들으라고 한 이야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자격지심때문인지 어쨌든 내 귀에는 아주 명료하게 들렸거든.
그.래.서. 내가 집에 있으면서 오히려 입성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쓰레기 버리러 갈 때도 옷을 갖춰입고 나가는데, 그런 노력과는 상관없이 아이 키우는 엄마들 입장에서 낮에 놀이터에서 어슬렁거리는 중년 남성은 어쩔 수 없이 잠재적 클래스 A 위험요소일 수밖에 없는가보다.
그렇다고 매번 놀이터에 나와 있는 엄마들마다 먼저 말 걸고 다가서서 ‘저는 육아휴직 중이구요, 2학년 남자애 하나 키우고 있구요, 얼마 전에 이사왔어요. 그리고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다시말해서 당신과 당신 아이를 해치지 않아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상황을 둘러싼 감정이 내 편에서는 잠재적인 위험인물로 보여진 데 대한 억울함이라면, 다른 엄마들에게는 위협과 동시에 ‘쟤는 왜 이시간에 여기에 있는걸까?’ 하는 궁금함이겠다.
시간순으로 생각해 보면 나의 존재가 다른 엄마들에게 주는 작은 공포와 의구심은 서서히 증폭되면서 지속되다가 애 보는 아빠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 고맙게도 아이가 '아빠~'라고 불러주는 것 같은 – 해소가 되는 것이고, 나의 불편함은 그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을 느낀 시점부터 시작되어 한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 – 안전한 NPC라는 것 – 을 상대방들이 인식했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까지 지속되는 것 같다. 아니다. 사실은 그 후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 나도 상처받기 쉽고 또 오래 간직하는 구석이 있는 남자다.
놀이터에서의 아빠란 내 아이에게만 포커스를 맞추고 지켜보다가 우리 애가 다른 집 애랑 약간 마찰이 있다든지 하여 다른 사람의 시선과 겹치는 순간에서야 다른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이건 물론 나의 경우에 한하는 이야기라서 오로지 스마트폰만을 들여다보는 경우도,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어린이용 놀이기구를 직접 타고 노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무리일 수 있다. 어쨌든 나는 그렇다.
그러다 마주친 다른 사람의 수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느낀다든지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건 괜찮은데 이렇게 나에 대한 다른 이들의 인식을 말로 정확히 듣게 되니까 마치 누명을 벗게 된 용의자 혹은 근거없는 루머로 마음고생 하다가 야간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나는 떳떳하노라고 말할 기회를 갖게 된 한물 간 연예인의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이런 경우가 한 번, 두 번 반복되다 보니 평소 나의 신조 – 너는 네 맘대로 살아라, 나는 내 맘대로 살련다 – 는 위축되고 매사 행동과 몸가짐에 좀더 남을 의식하게 된다.
사실 이제는 머리 감지 않으면 밖에 못 나가겠다 ㅠ.ㅠ
워낙 험한 세상이라 엄마들의 반응을 십분 이해는 한다. 그러면서도 억울함은 감출 수가 없다.
결국은 집에서 애 보는 아빠들, 일찍 퇴근해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빠들이 많아질수록 이런 어색함과 오해가 사라지겠지.
나 나름대로 그런 변화의 흐름에 앞장섰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함께 느끼며 오늘도 학원 차 내리는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데리러 나간다.
물론 잘 씻고 면도도 하고 옷도 새로 꺼내 입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