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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독쌤 Jun 25. 2024

나의 독서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로 가늠하는 내 독서의 출발점

 독서모임 초창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제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어요.

독서모임
한 번 해주세요.


 한 분이 이런 요청을 하더니 이내 다른 분이,

"저도요. 정말 희한한 책이었어요. 빨려 들어서 읽긴 했는데 뭔가 놓친 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계속해서 독서모임을 요청한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바로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였지요.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온라인 독서모임을 열었는데요.

신청을 받자마자 마감이 되더니, 독서모임을 추가로 열어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오는 거예요.

결국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로 무려 4번의 독서모임을 했습니다.


사실 같은 책으로 4번이나 독서모임을 한 데는 그만한 속사정이 있었습니다.

요청도 요청이었습니다만 이 책이 가진 특징이 결정적인 이유였죠.

기본적인 독법을 익히기에 알맞고,

독자 스스로 자신의 독서능력을 판단해보기도 좋은 책이었으니까요.  


크게 3가지 레벨로 독서능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데요.


1레벨.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재미가 없었다

이제 막 독서를 시작한 초보독서가. 처음이다 보니 아직 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는 청소년 소설이 최고!


2레벨. 무척 재미있었으나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책 좀 읽은 독서가! 긴 글을 읽을 능력은 충분하지만 독법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작가의 의도를 읽는 연습을 해보세요. 혼자서 어렵다면 소설 독서모임을 추천합니다!


3레벨. 무척 재미있었고, 작가의 의도도 명확하게 이해했다

오, 긴 글을 읽을 능력이 충분할 뿐 아니라 독법도 갖추고 있는 숙련된 독서가!


만약 독서능력을 가늠해보고 싶으시다면 여기서 잠시 읽기를 멈추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물고기를 존재하지 않는다>를 통해 책을 읽는 가장 기본적이 독법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주위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은 분들의 감상평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지금껏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종횡무진 써내려간 희한한 책'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명 매체의 북리뷰에도 비슷한 평이 꽤 있었지요.


"책의 모양을 한 작은 경이"_<더 내셔널 북 리뷰>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기이한 심연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밀러의 책에 매료되고 말았다." <뉴욕타임스>


이 책이 이런 평 혹은 인상을 주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책이 갖고 있는  '크로스오버'적인 특징입니다.

과학+전기+에세이. 이 책은 과학책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당연히 과학책을 기대하고 펼치게 되는 데 실제로는 에세이입니다. 그것도 과학을 소재로 한,  전기가 포함된 에세이.


문학+에세이. 이 책은 에세이인데 탄탄한 문학적인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이 2중 크로스오버 덕택에 읽기에 따라 아주 독특한 전개, 독특한 방식으로 느껴지는 거지요.


두 번째로는 이 책이 지식도서 독법을 요구하는 책이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성인 수준의 문학작품을 오독 없이 읽으려면 플롯, 상징 등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성인 수준의 지식도서를 이해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문학작품의 독법은 상징, 플롯을 읽어내는 것이고,

지식도서의 독법은 내가 가진 배경지식을 투입하는 것인 셈입니다.


이 책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세상 대부분의 책이 두괄식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고,

(책의 핵심은 언제나 책의 도입부에 담겨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기본적인 과학 배경지식입니다.



만약 과학 배경지식이 있다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목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어류'라는 분류가 편의에 의한 것일 뿐

실체가 없다는 사실이지요.

해부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류, 즉 물고기라는 분류는 존재하지 않거든요.


폐어처럼 아가미가 없는 물고기도 있고,

참치나 상어처럼 부레가 없는 물고기도 존재하니까요.


아가미와 부레를 제외하면

수중 척추동물이라는 특징만 남는데,

포유류인 고래, 파충류인 물뱀도 수중 척추동물입니다.


결국 물고기, 어류라는 분류는 생물학적으로는 실체가 없는

분류인 셈입니다.


그러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보면 자연히 이런 생각이 들지요.


존재하지 않는 분류,
실체가 없는 분류에 대한
이야기인가?


물론 제목만으로는 그 무엇도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짐작은 해볼 수 있지요.


<어린 왕자>라는 제목을 보면

'유년, 아동기와 관련된 이야기인가?'라는 짐작을 해볼 수 있고,

<강아지똥>이라는 제목을 보면

'더럽고 비천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인가?'라는 짐작을 할 수 있는 것처럼요.


이 짐작이 맞고 틀리고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짐작을 해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맞든 틀리든 제목을 보고 한 짐잡이 책의 진의를 파악하는 기준점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독법을 기르는 독서의 첫 번째 요령이기도 합니다.


책의 제목을 보고
'무슨 이야기일까' 짐작해보기

 



독서 과정은 제목을 보고 한 짐작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검증의 핵심은 책의 첫 부분이지요.

앞서 말씀드렸듯 대부분의 책은 두괄식,

즉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핵심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왕자>의 첫 부분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렸던 어린 시절'로 시작합니다.

그말인즉슨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릴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나'가

<어린 왕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지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의 법칙)으로 시작합니다.

과학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세계관, 가치관 이야기구나!


열역학 제2법칙은 시공간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하는 법칙,

무신론자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법칙이거든요.

대부분의 책이 두괄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주제는 의심의 여지 없이 명확합니다.


이 책은 세계관,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 세계관, 가치관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 분류, 실체가 없는 분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책의 제목과 첫 부분을 통해 세운 이런 관점은 책을 이해하는 적확한 출발점, 잘 꿴 첫 단추가 되어 줍니다.


만약 책의 제목과 첫 부분에 대한 이런 이해 없이  뒷 부분을 읽는다면

이 책은 널뛰기 하듯 종횡무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신론자인 아버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문제가 있는) 유신론자이자 물고기 분류학자인 스타 조던 이야기'를 하고,

또 갑자기 '양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작가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겁니다.

그러니 '희한한 책이다'라는 감상이 많을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세계관,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다', '존재하지 않는 분류, 실체가 없는 분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관점으로 읽으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버지-스타 조던-양성애자'라는 흐름이 세계관, 가치관을 찾아가는 여정을 표현하기 위한 치밀한 전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으니까요. 다른 해석이 불가능할 정도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지요.


이것은 독법을 키우는 독서의 두 번째 요령이기도 합니다.


책의 첫 부분에서
책을 이해할 핵심 단서를 찾아라




'꼭 그렇게 읽어야 해? 책에 대한 감상은 저마다 다른 것 아니야?'

하고 반문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화 생활이어서 언제나 다른 감상, 다른 해석이 존재하지요.

 

하지만

다른 감상과 해석을 갖는 것과

작가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입니다.


달라야지 틀려서는 곤란하겠지요.


틀린 해석, 실체 없는 감상을 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독법입니다.

독법은 그저 책의 진의를 파악하는 방법일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책은 친절하고, 그 친절함을 알아채기만 하면 되니까요.


기본 요령은 간단합니다.


책의 제목을 보고 '무슨 이야기일까?' 짐작해보기.

책의 첫 부분에서 책을 이해할 핵심 단서 찾기.


우선 이 두 가지만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보세요.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책에 대한 이해도가 확 달라지는 것을,

독법이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공독서가 줌 독서모임 신청 페이지는 매월 1일 오전 10시에 오픈됩니다.


공독서가 줌 독서모임 예약 페이지 https://naver.me/5i9wXc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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