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독쌤 Sep 06. 2018

독서형 인재로 키우는 법

어린 독서가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의 저자이자 미국의 저명한 독서 교육 전문가인 짐 트렐레즈는 독서가 아이의 학습 능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처음 내 말을 들으면 믿질 않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비결치고는 너무 단순하고,

둘째, 돈이 너무 안 들며,

셋째는 아이들도 좋아하기 때문이죠.


12년간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온 독서교육 전문가의 입장에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독서 교육은 터무니없이 간단하고, 터무니없이 효과가 큽니다. 대부분이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게 이상할 정도죠.




얼마나 잘 읽을 수 있는가

교육 선진국들은 학생들의 읽기능력을 관리하는 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독서교육 전문가면 독서만 이야기할 것이지 왜 독서를 자꾸 학습과 연결시킵니까?"

독서교육 전문가 활동을 하면서 종종 받는 비난입니다. 독서와 공부를 별개의 활동으로 여기는 인식 탓이지요. 우리나라는 교육 선진국 중 독서와 학습을 별개로 생각하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핀란드가 세계 1위 교육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나치리만큼 과한(?) 독서 교육 덕분입니다. 학교가 독서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매년 국가 차원에서 독서능력진단검사를 실시해 아이들의 읽기능력을 철저히 관리합니다. 

0.5퍼센트의 인구로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30퍼센트, 아이비리그 졸업생의 30퍼센트를 배출하는 유대인 교육의 핵심도 독서와 토론입니다. 미국‘읽기 위원회’를 두고 학생들의 읽기능력 향상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또 다른 교육 강국인 일본은 핀란드의 독서 기반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모든 나라들이 독서를 공교육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유독 우리만 독서와 학습을 별개로 여깁니다. 읽기능력을 관리하는 변변한 툴 하나 없다는 것은 우리 교육 당국이 읽기능력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각자도생! 

교육 당국이 해주지 않는다면
각자 알아서
읽기능력을 관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습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학년별 적정치의 읽기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교과서를 기준으로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초등 1학년 교과서를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초등 1학년 적정 수준의 읽기능력을 갖춘 것이고, 중등 1학년 교과서를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중등 1학년 적정치의 읽기능력을 갖춘 것이니까요.


수년간 언어능력 평가를 실시해온 입장에서 보면 연령대 적정치의 읽기능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이 전체 70~80%에 이릅니다. 다시 말해 교과서를 펼쳐도 이해를 할 수 없으니 공부를 할 재간이 없는 학생들이 70~80%에 이른다는 소리입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저는 지난 1학기에 전국 초중고 300여 명을 표집해서 언어능력평가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수십 명의 중고등학생이 포함돼 있었죠. 그 중 자기 연령 적정치의 언어능력을 갖춘 학생은 10% 미만이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고등학생 전원의 언어능력이 초등학교 5,6학년 수준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극소수이긴 합니다만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300여 명의 표집 대상 중에 1등을 차지한 아이는 언어능력이 중3 최상위 수준으로 측정된 초등 5학년 여학생이었습니다. 자기 연령대 대비 4단계나 높은 언어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지요.


자기 연령 적정치보다
얼마나 더 높은

언어능력을 갖추었는가
'가르치지 않을수록 더 많이 배운다'는 핀란드 교육의 기치는 독서교육을 통해 현실화됩니다.

이것이 바로 학습능력, 즉 '공부머리'의 요체이자 교육 선진국들이 독서를 공교육의 시스템 안으로 끌고 들어오고, 읽기능력을 관리하는 이유입니다. 


고등학생이 초등 5,6학년 수준의 언어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공부를 할 재간이 없습니다.

반대로 초등 5학년생이 중등 3학년 수준의 언어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공부랄 게 없습니다.


우리의 공교육은 읽기능력을 내팽개치다시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독서교육의 이점은 더 크죠. 앞서 말씀드렸듯 전반적으로 읽기능력이 낮기 때문에 조금만 독서에 치중해도 금세 압도적인 언어능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습적 측면에서 봤을 때 '연령대 적정치보다 3~4단계 높은 언어능력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 정도 언어능력만 갖추면 학습에서 실패하려야 실패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죠.



쉽고 간단해서 어려운 독서교육


한국의 교육은 학습을 많이 시키지만, 학습능력을 길러주지는 않습니다.

서두에서 저는 독서교육이 터무니없이 쉽고 간단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이가 자기 또래 이야기책을 재미있게 읽기만 하면 '연령대 적정치보다 3~4단계 높은 언어능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는 소리를 듣던 우리 세대와 달리 요즘에는 독서 관리를 잘 받은 초등 저학년들이 많습니다. 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었고, 적절한 시기에 한글을 깨우쳐서 별 어려움 없이, 재미있게 책을 읽어냅니다. 언어능력 평가 결과도 이미 높습니다. 그대로 재미있게 읽기만 하면 뛰어난 언어능력을 갖춘 채 중학생, 고등학생이 될 게 틀림없는 어린 독서가들이죠.


그런데 이 어린 독서가들은 중학교, 고등학교가 되면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왜일까요? 부모님들이 이 아이들을 그냥 두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잘하면 더 잘했으면 하는 욕심이 고개를 드는 거죠.


아이가 초등 1학년 수준의 책을 잘 읽으면 
초등 2학년 수준의 책을 가져다 주고, 

초등 2학년 수준의 책을 잘 읽으면
초등 3학년 수준의 책을 가져다 줍니다.


이런 식으로 끝도 없이 책의 수준이 올라가다가 급기야 초등 2학년 아이가 초등 5,6학년 책을 읽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부모님들이 이런 식의 독서 지도를 하는 것이 영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들 사교육에 목을 매는 현실에서 독서교육에 치중하는 우리 아이가 뒤처지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죠. 그래서 독서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아이들을 압도하는 수준에 올라서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수준 높은 책을 읽혀
언어능력을
더 많이 끌어올리겠다
어린 독서가들은 부모님의 강요로 점점 더 어려운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 독서가의 훌륭했던 독서 습관이 망가지는 첫걸음입니다.

수준 높은 책을 읽으면 언어능력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책읽기가 힘들어집니다. 자기 또래 책을 읽을 때는 책속에 담긴 정서와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미도 있었죠. 그런데  자기 연령대 보다 높은 책을 읽게 되면서 이제는 기본적인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렵게 됩니다. 재미있고 즐거웠던 책읽기가 고역으로 변해버리는 것이지요.


이렇게 독서가 고역으로 변하면서 아이에게는 두 가지 심각한 변화가 발생합니다.


첫째, 흘리는 독서를 하게 됩니다

본인의 연령대, 본인의 언어능력을 상회하는 책을 읽으면서 아이는 더 이상 책 내용 전체를 파악할 수 없게 됩니다. 당연히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지요. 어차피 다 파악하면서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아이는 책을 기계적으로, 대충 읽게 됩니다. 독서가 아닌 독서, 속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책을 싫어하게 됩니다

책을 읽어도 어렵고 이해가 안 되니 책읽기의 재미도 느낄 수 없습니다. 재미가 없으니 책읽기를 싫어하게 되지요. 이것은 마치 부모님들께서 어려운 연구 논문을 읽는 것과 비슷합니다. 재미를 느끼실 수 있겠습니까?  결국 초등 고학년, 중학생이 되면 책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아이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어린 독서가는 많은데 초등 고학년, 청소년 독서가는 없는 핵심 이유 중 하나입니다.




독서교육에 있어서 선장은 아이입니다. 부모는 항해를 돕는 항해사일 뿐이지요.

항해사가 배를 장악하려드는 순간, 독서교육은 끝이 나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독서교육이라는 배의 선장은 아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초등 저학년 때는 초등 저학년 책을 재미있게, 
충분히 읽는 것이 최고의 독서교육입니다. 

초등 중학년 때는 초등 중학년 책을 재미있게,
충분히 읽는 것이 최고의 독서교육입니다.

그래야 초등 고학년, 청소년이 되어서도 책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니, 오빠들을 다 제치고 언어능력 평가에서 1등을 차지했던 초등 5학년 여학생이 무슨 대단한 책을 읽어서 뛰어난 언어능력을 갖춘 게 아닙니다. 초등학생용 판타지 동화를 무척 좋아하는 친구였죠.


어떤 책을 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얼마나 푹 빠져 읽는가가 중요합니다.


독서교육의 목표를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책을 좋아하는
초등 고학년, 청소년이 되는 것


책을 좋아하는 초등 고학년, 청소년이 될 수만 있다면 학습은 알아서 잘해낼 수 있습니다.


흔히 '개천에서 용나던 시대는 끝났다'고 합니다. 

'개천의 용'이 사라진 이유는 사교육의 위력이 대단해서도 아니고, 지금의 학교 공부가 사교육의 도움없이 할 수 없을만큼 어려워서도 아닙니다. 사교육에 밀리고, 부모의 욕심에 치여 어린 독서가들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어린 독서가가 자라 숙련된 독서가가 되고, 그 숙련된 독서가가 바로 '개천의 용'이 되니까요.


“뛰어난 독서가이지만 독서를 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중략) 공부에 의욕을 갖거나 목적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략) 때로는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스티브 잡스의 초등학교 성적표에 적힌 평가입니다. 초등 4학년 이전까지 형편없는 문제아였던 잡스는 그때 이미 고등 2학년의 언어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독서를 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덕분이죠.


아이가 책의 재미에 푹 빠져 있나요? 그렇다면 부모님이 하셔야 할 일은 한 가지뿐입니다.


책 읽는 내 아이를 믿고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

 

그 믿음과 기다림이 아이를 진짜 인재로 만듭니다. 


 

 


이전 09화 고등학교 교과서의 비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