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에게
이번에 표지가 없어서 난감했던 다비드 드 브르통의 [걷기예찬]은 참 오묘했다. 문학적인 표현에 감탄했고, 저자의 박식함에 놀랐기 때문이다. 몸과 사회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내용을 담은 것이지만 과연 보물지도 독서모임 회원님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기대감을 안고 독서모임 장소로 향했다.
모임 장소는 마포. 차로 이동하면 20분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3번을 갈아타고 50분이 걸리는 곳이라 주차가 힘들면 공영주차장에 대자며 출발했는데 딱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해 안정적으로 주차를 했다.
그리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훅 느껴지는 멀미감... 점점 땅과 붙어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점점 고층으로 이동하는 게 힘들어진다. 엘레베이터의 속도가 빠른 건지 유리문이 있어서 그런 건지 순간 하늘에 붕 뜬 느낌이 느껴졌다. 멀찍어 떨어져서 본 한강의 풍경. 다른 사람들은 이 자리에 앉아서 독서하다가 한강물 멍때리면 더 없이 사색하기 좋을 장소이나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층마다 다양한 컨셉인 듯했으나, 카페가 있는 8층에 미리 자리를 잡고 회원님들을 기다렸다. 가장 큰 테이블 하나를 잡고 멀미를 진정시킬 아이스커피 한 잔을 시켰다. 이곳은 소위 자릿값이 좀 있다. 한 5시간 책 읽으며 죽순이 모드를 할 거라면 비싸지 않지만 모임하기엔 비싸 보였다.
한 입 마시고 보니 아... 샷 추가할 걸하는 아쉬움이 몰려온다. 그래도 시원하게 마시며 회원님들 오기 전에 정신을 차려 본다. 잠시 집중하며 숨고르기 시전이다.
사설이나 공영 주차장에 주차하고 온 회원님들. 생각보다 많이 늦어지지는 않았지만, 근황 나누기부터 시작해 아이스브레이킹을 한다. 나는 최근 본 <왕과 사는 남자> 영화이야기로 시작해 계획한 영월 독서여행에 대해 밝혔다. 그리고 아직 안 본 회원님을 위한 스포일러도 사정없이 했다.
다양한 읽은 소감을 보면서 독서토론의 맛을 느낀다. 결이 다른 소감은 항상 흥미를 유발하고,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나는 걷기 여행을 즐기기에 다음에 쓸 여행 에세이 영감을 많이 받고 싶었는데, 오히려 현재 쓰고 있는 공저의 글감을 많이 챙겼다. 뭐든 좋다.
좋은 문장이 많아서 줄도 많이 그었던 책. 회원들과 같은 문장은 있는지, 다른 문장을 추천할 건 없는지 여러 번 뒤적여본다.
이번에 확장하는 독후활동은 <내 인생의 길 한 장면 이야기 하기>였다. 나의 기억저장 오류인지 출력 오류인지 올레20길을 21길로 공유했다. 여행기록 아니면 이런 오류 정정도 힘들겠다 싶다. 여튼 샘플을 잘 만들어서인지 이해력 좋은 회원님들도 각자의 걷던 순간을 잘 공유했다. 모두 자연과 함께 한 오랜 기억이었지만 즐거운 표정으로 나누었다. 자연과 함께 한 걷기는 자연스럽게 행복을 불러일으키고, 그 느낌을 서로가 서로에게 전달한다.
4월에 떠나는 독서여행에서 다같이 걷고 나누는 여행이 될 거 같아 벌써 설렌다.
보물지도 회원들끼리도 서로가 서로에게 성장하는 기회를 나누는 중이다. 사내강사가 외부강의를 할 수 있게 했고, 사내 강사비보다 넉넉하게 받아 그것을 또 독서모임 점심에서 쏘는 이런 선한 기운이 너무 좋았다. 덩달아 맛도 너무 좋았고, 이런 선한 기운 덕분인지 공영주차장 주차비가 0원이 나왔다고 한다.
교통이 편리한 위치는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책&밥&토론 콘셉트는 유지했다. 우리의 공저 [읽고 토론하고 밥 먹는 중년독서모임을 아시나요?]처럼!
이번 선정도서는 원래 서머싯 몸의 [면도날]이었다.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매년 받고 있는 회원 추천도서 중 하나였고, 그 책을 추천한 회원님이 갑자기 암 판정을 받게 되면서 당분간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독서모임을 즐거워하시고 열독하고 오시는 분이어서 안타까웠고,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하고 싶어 하반기의 책과 바꾸게 된 것이다. 그의 건강 회복도 기원하면서,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토요일에 너무나도 적절한 책이었다는 회원님의 한 마디에 마음도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게 좋아서 계속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