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 뒤집어 보기
매년 3월이면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젠더 주제의 북펀딩이 있으면 무조건 신청한다. 그리고 독서모임에서도 젠더 주제의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해 온 지 여러 해가 되었다.
작년에는 강릉으로 독서여행을 가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토론했다. 그날 토론하면서 같은 여성으로부터 '꼴페미'라는 단어를 듣고 발끈해서 반박도 했다. 일베 게시판에서 보던 글을 입이라는 구조로 육성으로 들은 건 처음이어서 적잖이 당황했다.
그럼에도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마음에 들어서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 보고 싶다고 하니 선정한 보람은 있었다. 이런 솔직한 표현도 상당한 자극이 된다.
이번에는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를 골랐다. 분명 쉽게 젠더 감수성을 자극 줄 거라 생각하고 선정한 건데... 어째 읽다 보니 가족 돌봄의 구조에 대해 더 눈에 들어왔다. 아빠 웅이 씨와 엄마 복희 씨를 직원으로 둔 출판사 사장은 딸, 그래서 가부장, 가모장도 아닌 가녀장 구조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가족의 돌봄을 주로 하던 가부장 제도에서 여성의 노동은 당연하고 보상받지 못했던 과거와는 달리 아빠보다 엄마의 월급이 2배 정도 많다는 이야기가 상당히 신선했다.
게다가 업무적인 경우에는 딸에게 존댓말하는 상황도 너무 재미있고, 통통 튀는 복희씨의 상황에 공감이 되어 읽는 내내 웃음을 자아냈다.
독서모임 전날에는 우체국을 들르느라 1시간 일찍 출근길에 올랐다. 시간이 여유로워 책 완독을 위해 카페에 앉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책 보며 웃다가 지나가는 행인과 눈이 마주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좀 더 책에 빠져들었다. 식당 종업원을 고모가 아닌 '이모'라고 부르는 상황과 방송국에서 가슴 속옷을 입으라고 강요하는 장면에서는 많이 불편해서 인상 쓰면서 읽다가 건너편에 앉아 있는 노년의 한 어르신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웃었다 화냈다 하는 모습이 생경했는지 지속적으로 나를 관찰하셨다.
책을 덮으며 페미니스트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우리 회원님은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해 하면서 독서토론 장소로 향했다. 각자의 읽은 소감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떠오르는 예전의 기억도 떠올리며 지금 변화해 가는 의식도 느끼는 순간이 되었다. 그러나 당일 결석 통보를 한 회원님과의 피 튀기는? 설전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단톡으로 평점 2라는 놀랍지 않은 내용을 알려주었다.
사실 평점은 상관 없다. 어떻게든 다양한 책을 읽는 게 중요하니까. 전혀 관심 없는 분야의 책도 접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게 독서토론의 매력이 아닌가. 그 분은 조목조목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적었을 건데, 아쉽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한데. 다음 달에 만나서 일장연설만 안 하시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걸 나는 좋아한다. 앞으로 계속 젠더 주제의 책을 선정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원래 다음 달에는 조병화 님의 시집을 읽고 안성에 있는 조병화 문학관을 가려고 했으나, 시집이 유통되지 않아 구하기가 힘들어 부득이 박두진 님의 시집을 읽고 박두진 문학관으로 향한다. 다시 독서모임에서 조병화 님의 시집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