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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Dec 23. 2023

글쓰기는 포옹이다.

일을 마치고 차문을 여는 순간 내 몸은 운전석에 자석처럼 달라 붙는다.

화사한 햇살에 드라이브하고 싶었던 날은 사라지고 밤이 되어있다. 

노곤한 몸은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향한다.

사늘했던 차안의 공기는 온화함 마저 느껴진다.

집을 지나치며 임형주의 "울게 하소서"를 틀어 본다.

천천히 속도를 높이고 스피커 볼륨도 키운다. 

높은 임역대를 넘나드는 선율에 내 마음속에 응어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음악이 멈추는 순간, 현실로 돌아오는게 두렵다.

차를 세워 한참을 창밖의 캄캄한 하늘을 멍하니

보다 핸드폰을 열어 "힘들다"라고 적어본다.

"힘들다"라는 동사하나 썼을 뿐인데 눈가는 촉촉해진다.

눈에 가득한 물기는 서서히 내려 차가운 나의 볼을 따라 흐르는 온기는 따스하다.

누구에게도 말할수 없었던 답답한 심정을 위로해주는 따스한 포옹이었다.


글쓰기의 진정한 힘을 그때는 몰랐다.

카를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을 읽으며 융이 4살때 기억을 떠올리면 

나도 취학전 어린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큰딸로 태어난 아이는 엄한 아버지의 훈육으로 억압속에 웅크리고 앉아 울고만 있었다.

숫자 3을 거꾸로만 쓰고 있던 아이, 젓가락질을 못 한다고 밥상머리에서 손을 맞았던 기억

수줍음이 많던 아이는 아버지가 학교에 오셨는데 반가웠지만 인사도 못하고 멀찍이 쳐다만 보고 있다.

방과후 집에 돌아온 아이는 영문도 모른채 아버지에게 혼이 난다.

학교에서 인사를 하지 않은 버르장머리 없는 딸의 교육이셨다.


길거리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미끄러질세라 종종걸음을 걷고 있는 나를 뒤돌아 보시며 하시는 말씀

"게으른 사람은 걸음도 늦게 걷는 것이다. 빨리 따라와라"

새벽이면 기상을 하시고 등산을 다녀와 마당에 물을 뿌려 청소하셨던 아버지는

늦잠자는 모습을 보면 게으르다 하셨다.


새벽 고요한 시간 혼자 글쓰기는 수줍음 많고 아버지한테 불려가면 눈물만 흘리던 나를 떠올리게 했다.

무서워서 아버지 앞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아이.

혼나는게 두렵고 버릇없는 아이가 되기 싫어 행동반경은 갈수록 작아지고

말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큰 딸이라 어디든 데리고 다니며 자랑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사랑이었고

동생들보다 공부를 잘하기를 원했던 아버지 기준의 교육방식이셨다.

글쓰기는 사랑표현에 서툴렀던 아버지를 보게 했다.

월남전에 다녀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하셨던 아버지는 사랑사런 큰 딸을 얻었다.

작고 예쁘기만 해서 어릴때는 자전거 뒷자석에 태워 다니셨다 하셨다.


글쓰기는 가엽고 귀여운 아이가 떠 올라 안쓰러운 마음은 눈물이 되어 어린아이를 안아주었다.

똑같은 나이는 아니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바라보게 하였다.

아이키우는 일도 처음이고 부모 역할도 처음인 아버지의 사랑표현은 

예의바른 아이로 자라게 하는 교육방식이었다.

게으르다는 말의 콤플렉스는 저녁형인간이었던 나를 새벽형인간으로 만들었다.


글쓰기는 나에게 따스한 포옹이다.

쪼그리고 앉아 수줍어 울고 있는 어린 나와 사랑에 서툰 아버지를 안아주는 포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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