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책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같아"
"엄마, 이 책은 집에 있는 책인거 같은데?"
이사할 때 마다 가장 많은 짐을 차지 하는데 책이다.
책을 구매하는 것을 좀 줄여보려고 하는데 안 된다.
오래 된 책을 정리 해야하는 일도 쉽지 않다.
아빠는 골동품을 수집하고 모자를 좋아하셨다.
아빠가 폐암 말기 라는 판정을 받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는 말에 엠블런스를 타고 지방에서
서울 아산 병원까지 가는 길이었다.화장실에 가시 겠다는 아빠의 말씀에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했다.
급하게 화장실을 다녀오시며 휴게소앞 노상에 진열되어 있는 모자들을 보시고
눈을 떼지 못하셨다. 그리고 하나를 쓰시더니 해맑게 웃으셨다.
아빠는 모자를 쓰시고 엠블런스에 다시 오르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기전 마지막 생신 날이었다.
새어머님과 아빠에게 선물로 옷을 사드리기 위해 매장에 갔다.
따듯해 보이는 스웨터를 고르고 계산을 하려는데 스웨터 색상과 잘 어울릴만한 모자가 눈에 띄었다.
스웨터와 모자를 함께 샀다.
"니 아빠 모자도 많은데 또 사왔어?"
새어머님의 말씀하시는 동안 아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두 분이서 모자를 나란히 쓰시고 좋아하셨던 모습이 선하다.
아빠는 그 다음해 여름에 돌아가셨다.
사랑표현이 서툴렀던 아빠는 큰 딸인 나에겐 엄하고 무섭기만 했었다.
좋아하는 물건에 애착을 가지고 수집하는 아빠를 내가 닮았다.
나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보다 어찌 보면 책을 수집하는 것을 즐기는지 모르겠다.
예전처럼 굳이 구매하지 않아도 책을 읽을 수 있는 편리한 사회적 환경이지만 대여해서 읽는 책보다
구매 해서 읽는 편이다. 하지만 충동구매는 하지 않는다. 읽고 싶은 책을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대출가능 한 책인지 알아보거나 꼭 사야할 책인지 심사숙고해서 구매한다 .
그렇게 매달 서 너권, 많게는 열 권까지도 구매하고 있다.
인터넷 결제 후 읽고 싶은 책이 집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즐긴다.
특히, 기다리던 신간이라면 첫 책을 받는 순간 첫 장을 넘기는 일은 사랑하는 사람의 집 앞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설렌다. 작가의 내면의 문 앞에서 종종거리고 서 있다 마주친 기분이다.
읽어내는 일이 구매하는 일을 따라가지 못하니 읽어야 할 책은 내 옆에 있다가 하나씩 밀려나기도 한다.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도 즐긴다. 책장 앞을 어슬렁 거리며 제목을 읽는 일은
아련한 추억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읽지 않은 책에 내 동공은 음찔하기도 한다.
이젠 조금씩 내 짐을 늘리지 않고 정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책은 구매하고 다시 읽지 않을 책들은 인터넷으로 바로 판매하고 있다.
책장에 있는 책을 한 권씩 꺼냈다.
지난 주말은 꺼내 놓은 책을 가지고 중고서점에 다녀왔다. 매장 직원은 매장에 있는 책이라 받을 수
없는 것과 폐기해야 할 책 그리고 내가 판매할 수 있는 세분류로 나누었다.
판매금액은 달랑 새 책 한 권을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빼곡히 쌓여있는 책을 정리하고나니 이제 새 책을 꽂을 틈이 생겼다.
따사로워진 봄바람으로 활기를 되찾아 슬기로운 미니멀 라이프로 조금씩 비워나가야겠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건 욕망에서 비롯된 듯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 하고 채워가려고만 했던 지난 날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비움으로 새 책을 꽂을수 있는 공간이 생기듯 이별이 아픔만이 아니었다. 관계의 비움 또한 더 좋은 관계로 이어졌다. 관계의 미련에서 오는 틈은 균열을 가지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