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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김씨 Feb 04. 2018

미래는 오래된 과거

Book인, 강의, 신영복

새해 첫 독서입니다. 근 한 달여를 책 하나와 싸웠던 것 같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저의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이제는 물러서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매번 같은 방식의 반복입니다. 싸우고 지면 다짐하고, 또 싸우고 지면 다짐하고. 이 싸움은 평생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번번이 지지만 매일의 싸움에서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에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


무척이나 긴 독서로, 책의 앞부분 이야기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빌린 책이 아니라 반납이라는 부담 없이 다시 책의 앞을 뒤적이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긴 매번 그랬던 것 같네요. 나의 해마(뇌신경)가 제대로 일을 못한다는 생각을 하며, 집에 계신 부모님 때문이라는 의문의 1패를 안겨드리는 배은망덕한 생각을 해봅니다. 


시경, 서경, 초사를 시작으로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법가, 불교, 신유학으로 책은 마무리됩니다.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책으로 만든 것이라 교수님과 대화하듯 편합니다. 다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이 너무나 깊고 방대해 몇 번을 읽은 구절도 있고, 네이버를 검색해서 살펴본 부분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시경부터 신유학까지 다룬 것이니 그 속이 쉬울 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지금 우리 삶에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찬찬히 짚어주는 선생님이 계셔서 편안히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깊지만 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동양고전을 읽게 된 계기는 교도소 규정과 관계가 깊습니다. 다른 속 깊은 사연들을 다룰 순 없어 슬픔을 덜어낸 이야기만 하자면, 세권 이상 소지할 수 없다는 교도소 규정상 한 권의 책으로 오래도록 읽을 수 있는 동양고전을 읽게 된 것이지요. 아울러 같이 계시던 노촌 이구영 선생님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고 합니다.


책에서 선생님께서 다루고자 하신 화두는 '관계론'입니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의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존재론과는 반대의 의미입니다. 개별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이지요. 무엇이 옳다고 말하기보다는 앞으로의 미래는 존재론보다 관계론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 이유를 동양고전을 통해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존재론을 바탕으로 한 현대 자본주의 질서에서 다루어야 하는 담론이라는 것이죠.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전국시대를 거쳐 진나라로 통일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회에 대한 수많은 담론들은, 어지러운 시대에 국가와 사회의 건설 방향에 대해 다루었던 최대한의 담론들이며, 지금 시대가 바라는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을 사회화하기 위함과 다르지 않고, 우리는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 꼭 다루어야 할 담론이자 주제라는 거예요. 그 중요성에 대해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현대 자본주의가 쌓아가고 있는 모순과 위기 구조는 근본 담론을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하려 합니다.


[시경의 무일 편]

주공 편에서 조카 성왕에게 경계하여 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군주의 도리는 안일에 빠지지 않고, 노동의 어려움을 알고 그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최근 비트코인 사례를 보며 저는 "노동보다 중요한 건 시대 흐름과 타이밍"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즐겁게 쓰고, 편안하게 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 방법이라는 것이 노동이 아닌 뛰어난 머리와 투자를 가지고 편하게 돈을 번다는 것이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갑자기 바보가 된 기분입니다. 그렇게 일해서 서울에 집 한 채 못 사는데, 어차피 그렇게 살아서 무얼 하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죠. 흙수저와 금수저는 다르다며 금수저이길 바라는 모습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것은 일하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대한민국 누구나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한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의식주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바른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부터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트코인을 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2년 전 나에게 인터스텔라 주인공처럼 책장 뒤에서 비트코인 사라고 책을 떨어뜨리고 책장을 흔들고 있었으니까요.


[주역의 화수미제]

주역은 괘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내용입니다. 총 64개의 괘가 있는데, 그중 64번째 마지막 괘가 바로 화수미제입니다. 풀이 내용은 많지만 핵심은 미완성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제일 마지막 괘를 미완성의 괘를 배치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상에 완성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일이라는 것이 결국 완성이라는 것은 어떤 한 시점에서의 결과일 뿐,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완성에 이르기 위해 속도와 효율성을 따지는 것도 어쩌면 어떤 한 시점을 향할 뿐, 끝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을 과정에서의 마음이라는 것이지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내 마음 가짐이자 길을 걷는 과정이지, 얼른 마무리하고 다른 길로 들어서서 또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길은 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목표와 과정을 하나로 바라보고 결과물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목표와 과정 자체를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AI와 로봇의 세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더 빠른 것은 이제 기계가 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적인 삶과 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논어의 맹지반]

애공 11년에 맹지반이 자신의 공을 낮추고 겸손과 사양의 마음을 보여준 일화입니다. 겸손해야 하고 사양하는 마음은 이 시대 분위기와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자신을 어필해야 하고,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해 때로는 자랑을 해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기서 자신을 낮추라는 이야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겸손과 사양도 진심이 아니라면 모두가 알게 될 것이며, 반대로 자신의 자랑과 어필에 진심이 있다면 좋다는 것입니다. 공과를 불문하고 아무리 교묘한 방법으로 그것을 치장하더라도 결국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됩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하지 않으면 오케스트라가 알고, 사흘을 하지 않으면 청중들 모두가 안다 - 루빈스타인

대부분의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자신에 대해 명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겸허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회는 아직 거짓말의 수명이 깁니다. 그 거짓말의 수명이 짧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겸허하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지 않도록 겸허하지 않은 거짓에 대해 바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스스로 고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짧게 3가지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와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여러 번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부족한 저의 글이 선생님의 의도를 잘못 전달되지 않을까 걱정하다가도, 강의를 책으로만 접하고 생각할 역량이 부족함을 솔직히 밝히면 이해해주실 것이라 믿으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신영복 선생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너무나 행복한 주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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