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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Jerk Oct 27. 2015

달팽이

언젠가 먼 훗날에

이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다. 좋아하는 가수는 따로 있는데 암튼. 그 중에 <달팽이>는 향수를 부르는 단어로 진열된 가사를 가지고 있었고, 떡꼬치를 먹고 싶어 마을버스를 포기하고 실개천의 제방을 걷는 찌질이 중딩이 가장 '느끼는' 노래였다. 가장 좋아하던 노래는 따로 있는데, 암튼.

그때는 하루하루를 벗어 놓은 바지를 쳐다보듯 무심히 살았다. 하루는 내가 아니라 시간이 주무르고 있었다. 시간의 지시를 받아 나는 머물고 떠났다. 나는 책보기로 한 시간에 책에 만화를 그리고, 등하교 하기로 한 시간에 길에서 노래를 불렀다. 깜박임처럼,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발현되는 나다움은 그게 전부였다.

그때의 나처럼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다른 곳에도 자유롭게 발을 내딛으며 살라고 하고 싶지만, 그 말을 따라주지 못할 것을 안다. 시간에 물린 하루를 보내기도 버겁다. 하기로 한 것을 그는 할 것이다. 하기로 한 것을 안하는 것은, 시간이 힘을 잃고 꿈이 그의 하루를 점령하기까지 오래오래 기다려야 한다.


나는 지금도 <달팽이>를 들으면 그 과거가 마치 오늘처럼 스며오른다. 그 시절을 달팽이처럼 기어서, 난 여기까지 왔다. 돌아보니 멀고, 되짚어가려니 엄두가 안난다. 그래도 그 제방 둔덕을 언젠고 다시 밟으며 <달팽이>를 꼭 한 번 불러 볼 거다. 그 실개천이 세상 끝 바다에 닿기를 빌어주게 되려나.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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