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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Jerk Sep 23. 2021

나는 평범하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나는 평범하다.

내가 거쳐야 한다고 믿는 일련의 사고 과정이 있다. 자칫 마음의 길을 잘못 들 때마다 점검하곤 하는 부분.

첫째. 평범함을 인정하는 것

둘째. 평범함을 비참하게 여기지 않는 것


평범을 내재화하는 것은 꽤 특별(!)한데, 그게 어려워서거나 남다른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걸 '내재화'라고 할 만큼 집요하게 반복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없기 때문이다. 그것만 제외하면 특별할 게 없긴 하다.


세상이 나보고 특별하다고 한다. 나도 즐기는 취미, 좋아하는 뮤지션과 아티스트, 취향, 호불호, 루틴이 물론 있다. 내 삶의 복잡한 문법이 어우러져 고유의 색을 띤다. 개성이라고 한다. 여기에 특별함을 입히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한 당신에게, 나만의 맞춤 솔루션 ㅇㅇㅇ” “세상 하나 뿐인 나만의 ㅇㅇ” 수도 없이 써온 광고/마케팅 화법이지만, 그 마케팅에 나까지 넘어갈 필요는 없지 않나. 지문이 있다고 사람이 특별해지는 건 아니다. 지문은 누구나 있다.


평범한 것은 열등한 것이 아니다.

평범함을 '상대적으로' 열등하게 만드는 특별한 사람들이 물론 있다. 하지만 평범함과 열등함을 동일시 하는 건 다른 문제. 평범함은 반드시 세상에 가장 많은 포션을 가져가게 돼 있다. 그만큼 너르게 분포한다. 보편의 중위를 묵직하게 지키는 것이다. 열등한 것과는 분명 다르다.

특별, 비범은 평범과 잘 섞이지 않는다. 어떤 기준을 중심으로 구분짓는 것이 특별함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특별함은 함부로 어울리지 않는다. 함부로 어울림은, 평범만이 선택할 수 있는 속성이다.

나도 인생에서 탁월한 성취, 월등한 평가, 남다른 소질, 비범한 아이디어가 함께할 때가 있다. 반짝이는 순간들이 이따금 있는데, 그게 사실 평범한 수준이다. 스스로 항구적인 빛을 뿜는 것이 아니라 종종 반짝이는 것, 아주 평범에 속한다. 나는 평범하다. 누구나 밥벌이 하는 재주 한두 개 쯤이야, 살면서 남다른 경험과 깨달음 쯤이야 있다. 나는 여전히 평범하다.


평범함은 나태한 것이 아니다

평범함을 내재화하는 것은 카메라 화이트 밸런스 잡기, 총기의 영점 잡기, 차량의 스티어링 휠 바로잡기와 같다. 성취에 재미가 들리면 비전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몰아부치는 일들이 생기곤 했다. 무리하는 것을 성실하다고 여긴 것 같다. 매섭게 몰아치다보면 좋은 결과물을 쌓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게 쌓은 특별한 자존감은 훗날 나를 냉정하게 바로잡는 비참한 순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무한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영원히 개량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오랜시간 공들여 밀어올린 높은 곳의 자아일수록 내려오는 일은 더욱 고통스럽다. (물론, 그 상승과 회귀의 길을 감내하는 것도 누군가 고를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다.)

반면 나는 평범하기 때문에 성실히 해야 하며, 평범하기 때문에 안주할 수 없고, 평범하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내고도 겸손해야 하고, 평범하기 때문에 처지에 만족할 수 있다. 특별한 쪽과 차이가 있다면, 남들이 감탄할 만한 웅장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 특별하다는 환상 속에 일구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평범함은 시시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삶은 지루해보일지 모른다. 물론, 특별한 삶을 사는 사람보다 완만할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경험과 도전들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작품 전시나 공연을 하고 싶든, 전세계 여행을 하고 싶든, 슈퍼카를 타고 싶든, 대기업 임원을 달고 싶든. 그것을 누려 마땅한 사람이라고 여길 때 나의 하루는 급격히 시시해진다. 시시한 하루에 대한 무한한 도전은 특별한 사람들이 돌파해야 하는 숙제인데.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즐거움을 찾는다. 늘 가던 산책길을 걷든, 애창곡을 계속 부르든, 낡은 친구와 오랜 농담을 나누든, 가십 기사에 수다를 떨든. 특별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언제든지 할 수 있지 않겠냐고? 그들은 생각만큼 그럴 수 없다. 그들에겐 너무 시시한 것들이다. '그들이 시시해 하는 걸 내가 즐겨야 돼?' 라는 생각은 거대한 덫이 된다. 특별한 사람들의 평가를 의식하는 건 누가 강요한 게 아니라 내가 자초한 일이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 나는 소중하다.

이 두 가지를 묶어내지 못하면 결국 평범함을 수용할 수 없게 된다. 특별한 것만 소중하다면, 내가 소중해지기 위해 특별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평범하면서 소중할 수 있다.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않고도, 남다른 부를 축적하지 않고도, 특별한 평판을 쌓지 않고도 나와 내 삶을 소중하게 대할 수 있다. 무능을 덮으려 평범을 되뇌이는 것 뿐이라고 여기는 누군가가 있다면, 당신의 삶은 과연 충분하고 안녕한지부터가 걱정이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의 반경을 꼼꼼히 더듬어 보면서 내 팔다리의 길이를 잘 아는 것이다. 특별한 행복이 손에 닿을 듯하다고 뻗다가 창틀 밖으로 몸이 나가지 않게하는 조심스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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