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타임
아침에 갑자기 두둑두둑 소리가 들리더니 묵직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곧 굵고 단단한 빗줄기가 지붕을 두드렸다. 그 소리가 반가워서 더 듣고 싶은 마음에 밖으로 나가 처마 밑에 앉았다. 빗방울이 땅을 적시는 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내리는 소나기가 마음 깊숙이 반가웠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빗소리에 몸을 맡기기만 해도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며칠째 이어진 폭염으로 지쳐 있었는데, 시원하게 쏟아지는 이 비가 어찌나 고맙던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많지 않았다. 잠깐 내리다가 금세 그칠 것 같아 아쉽기만 했다.
이렇게 하루 중 단 한 번이라도 마음이 쉬어가는 시간이 있다면,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숨 쉴 틈이 생길 것이다. 내가 어디에서 쉼을 얻고 어떤 순간에 회복되는지를 아는 것, 그것에서부터 시작이다. 무엇이 내게 힐링이 되는가?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운동이나 산책, 독서나 명상. 맛있는 음식을 만들거나 음미하는 시간, 커피나 차를 마시며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가끔은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보기, 아무것도 하지 않기, 낮잠 자기, 영화나 드라마 보기. 뜨개질, 그림 그리기, 무언가 만들거나 조립하기. 혹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만나 웃고 떠드는 시간까지. 쉼의 방법은 다양하다.
중요한 건 그중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일이다. 나를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돌보아 주는 작은 행동 하나를 정해,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해보자. 그러면 힘겨운 하루에도 잠깐은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여유가 없을수록 사람은 쉽게 날카로워지고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게된다. 여유가 없다는건 지금 힘들다는얘기다.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자. 무조건 밀어붙인다고 해서 일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쳐 능률이 떨어질 수도 있다. 잠깐의 쉼을 허락하는 것이야말로 지혜다.
내게는 독서가 쉼이자 채워짐이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새로운 에너지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책을 읽는다. 특히 소설을 좋아해,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꼭 찾아 읽는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루 중 ‘나를 위한 시간‘은 남는 시간에 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하면 못하게 된다. 일부러 시간을 내야만 가능하다.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루에 20~30분조차 자신을 위해 허락할 수 없다면 그것은 변명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가 독서를 시작한 시절이 바로 가장 바쁘고 시간이 없다고 느꼈던 때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연년생으로 어리고 손이 많이 가던 시절, 나는 지쳐 있었다. 너무 힘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졌고, 피곤함에 쓰러지듯 잠들기 일쑤였다. 그렇게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마음은 점점 더 무너지고 하루하루가 허무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때 ‘뭐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한 것이 독서였다. 책을 읽으면서 지쳐 있던 내 일상이 조금씩 살아났다. 할 수 없다고 믿었던 일들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채워졌고 그렇게 독서 시간은 내 삶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나의 하루를 만들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정하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화를 내면서 보낼 것인가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표현할 것인가. 잠깐의 소나기처럼 내 마음을 적셔줄 휴식 같은 시간을 쟁취하고 다시 힘을 내어본다.
나를 만드신 분을 기억하고 하루라는 선물에 감사하며 그렇게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