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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시 세우는 작은 쉼표

다시 시작

by 북짱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날.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본다. 해야 할 일도 있고, 챙겨야 할 가족도 있으니까.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설령 혼자 산다고 해도 일터나 학교가 있기 마련이다. 쉬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훌훌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냥 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루해서일까, 아니면 지쳐서일까.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그냥 그런 날이 있다.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운동도 하기 싫다. 그럴 땐 그냥 유튜브 쇼츠를 보거나, 킬링타임용 게임을 깔아본다.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가볍게 시작하지만, 이상하게 그런 게임들은 한 번 시작하면 멈추기가 어렵다. 퍼즐게임, 캔디크러쉬, 각종 대시(dash) 게임들..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 있고, 마음은 더 피곤해진다.




그러다 보니 집안일을 하면서도, 아이들과 있을 때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게 된다. 그걸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건 늘 아이들이다.

“엄마, 오늘 왜 핸드폰 계속 들고 있어?”

딸아이가 묻는다.

“어떻게 알았어?”

몰래 한다고 했는데, 내 정신이 이미 핸드폰에 가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솔직히 털어놓았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심플한 게임을 설치했는데, 의도와 다르게 너무 몰두하게 됐다고. 그러곤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 대신 게임 좀 지워줄래?”




나는 예전부터 게임에 한 번 빠지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웬만한 게임은 아예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해도 곧 지워버린다. 있으면 자꾸 하게 되고, 스스로 조절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어른도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킬링타임 게임’이라며 가볍게 생각하고 설치했는데, 결국 시간을 죽이는 게 아니라 나를 죽이고 있었다.




물론 힘들 땐 잠깐 그럴 수도 있다. 그럴 때도 있고, 이런 날도 있는 거니까. 누군가는 너무 빡빡하게 사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계속 의미 없는 것에 시간을 쓰는 건 내 소중한 하루의 시간들을 흘려보내는 일 같아 자꾸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오히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깨닫고 멈출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게, 그게 참 다행이다.




언젠가 또 재미있는 게임이 나오면 다시 정신없이 빠져들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한 번 신나게 놀고 나면, 또 지우면 되니까. ㅎㅎ




요즘은 특히 더 많은 사람들이 바쁨에 치인다. “너무 바빠”, “정신없어”라는 말이 입에 배어있다. 나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다. 남편은 정말 일이 많아서 그렇지만, 나는 어쩌면 내 마음이 복잡하고 분주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하다 보면 분주했던 일들도 조금씩 정돈된다. 쫓기듯 흘러가던 하루가 어느새 다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일이 힘에 부친다고 느껴질 때는 잠시라도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본다. 단 10분이라도 좋다. 그 짧은 시간에 생각도 마음도 정리가 된다. 그러다 보면 챙길 수 있는 시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작은 시간들에 감사하게 되고, 짜증도 줄어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시 눈만 감고 있어도 좋다. 스스로를 토닥이는 것도 방법이다.




그럴 때 남편의 “괜찮아?” 하는 한마디, “힘들지?” 하며 건네는 인정의 말이 참 큰 위로가 된다. 그 한마디에 마음이 풀리고, 다시 마음에 중심을 잡는다.




그렇게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순식간에 흐트러졌던 일상을 바로잡는다. 오늘은 어떤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집어 들까, 아니면 대청소를 할까 고민 중이다. 못했던 산책과 운동도 다시 시작해야지. 물론, 너무 욕심내지 말고 말이다.




다들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짜증과 한숨 대신,

“힘들지~”

그 따뜻한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마음으로 —

그렇게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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