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사람
아침 일찍 눈을 뜨고 부엌으로 내려가 냉장고를 열었다. 이것저것 재료를 꺼내어 먼저 양파를 다져 기름에 볶기 시작했다. 아이들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서다. 오늘의 메뉴는 스팸김치볶음밥. 김치와 스팸도 잘게 썰어 함께 볶다가 밥을 넣고 간장, 맛소금, 설탕, 버터, 참기름까지 넣어 정성스레 볶아냈다.
어떤 아이들은 김치 냄새 때문에 친구들이 싫어할까 봐 김치볶음밥을 도시락에 싸지 않는다고 들었다. 혹시나 해서 딸아이에게 물어보니, 자기 반 친구들은 다 괜찮다고 했다. 오히려 김치도 좋아하고, 한국 음식을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그래도 혹시 몰라 김치는 조금만 넣어 볶았다.
요즘은 ‘오늘은 또 도시락에 뭘 싸줄까’가 하루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LA의 초등학교 급식은 정말 형편없다. 메뉴만 보면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인스턴트식품에다 건강하지 않은 음식들뿐이다. 게다가 맛도 없어서 아이들이 거의 못 먹을 정도다. 그러니 매일같이 “엄마, 도시락 싸줘!”라고 조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엄마표 도시락을 정성껏 싸주면 다른 나라 친구들까지 한국 음식에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바꿔 먹자고까지 하니, 아무거나 대충 싸줄 수가 없다.
도시락에 넣으면 맛이 떨어지는 음식들도 있다. 돈가스나 너겟은 바로 먹을 때는 바삭하지만 도시락통에 넣는 순간 눅눅해져서 아이들이 싫어한다. 그래서 자주 해주는 메뉴는 참치 삼각김밥, 스팸볶음밥, 파스타, 소시지볶음, 양념닭볶음, 떡꼬치, 떡볶이, 불고기, 떡갈비, 삼겹살 간장구이 등이다. 따뜻한 보온밥통에 담으면 아이가 점심시간에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가끔은 맥 앤 치즈나 전날 먹다 남은 바비큐 치킨을 넣어줄 때도 있다.
그렇게 매일 정성껏 도시락을 싸주고 집밥을 해주다가 어느 날 딸아이가 그런다.
“엄마 음식이 최고야!” 자기 반 친구들도 “너네 엄마가 해주는 음식 진짜 맛있다”고 말한단다. 그리고 자기는 나중에 커서 엄마랑 커피도 마시고 쇼핑도 하고 엄마 맛있는 거 많~~ 이 사줄 거라고 했다. 그 마음이 이쁘고 사랑스러워서 한참을 미소 짓다가 문득 나도 울 엄마 생각이 났다.
나도 어렸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커서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엄마 제일 행복하게 해 줘야지.’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마음만큼 엄마께 잘하지 못한 것 같아 가슴 한켠이 아프다.
홀로 세 딸을 키우신 우리 엄마. 고생 진짜 많이 하셨는데.. 그런 엄마께 맛있는 걸 아무리 사드려도 모자란데 어릴 적 그 예쁜 마음은 다 잊여버린 지 오래인 것 같다. 나 살기 바빠서 엄마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못된 핑계만 될 뿐. 내가 엄마만큼 나이를 먹고 맛있는 거 많이 사준다던 딸내미가 자기 일에만 바빠서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속상하고 서운할 것 같다. 그렇게 입장을 바꿔 생각하니 지금의 내가 엄마한테 못하고 있는 것이 더 크게 느껴져서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늘 자신이 더 해주지 못한 것만 생각하신다. 충분히 주고도 늘 미안해하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바보다. 나는 그런 착한 바보가 되지 말아야지. 해준 건 해준 대로 생색낼 줄 알고, 시간도 내어달라 표현할 줄 아는 당당한 엄마가 되어야지. 그렇게 다짐해 보지만, 나도 나이가 들면 또 달라질까?
그날 나는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요즘 뭐 먹고 싶은 거 있으세요?” 어떤 거든 말만 하시면 다 사드리고 싶었다. 엄마는 행복한 목소리로 “뭐든 다 좋아~” 하셨다. 그 한마디에 마음이 또 울컥한다. 엄마한테 더 잘해야지..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잘해드려야지 생각했다. 나중에 못 해 드린 것 지나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잘하자 스스로 다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세상에서 이유 없이 나를 가장 사랑해 주는 사람,
내게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사람,
늘 내편인 사람,
그 사람은 바로 ‘엄마’.
오늘도 엄마에게 감사한다고, 사랑한다고 표현하면서
그렇게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