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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

내가 먼저 되어주자

by 북짱



며칠 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이 들어서 좋은 친구 만나기가 왜 이렇게 어렵니.”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미국이라는 낯선 땅 때문인지, 아니면 엄마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건지 물으셨다. 그 목소리엔 작은 외로움이 스며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LA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중에서도 소수의 한국인들이 서로 어울려 지내는데, 그래서인지 유독 개성 있고 독특한 사람들도 많다. 미국에 이민 와서 겪은 설움과 고생, 그리고 특별한 사연 하나쯤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디서든 그렇겠지만, 낯선 나라에서 같은 나이또래의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까지 잘 통하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문은 쉽게 닫힌다. 그래서 더 어렵다. 누군가를 이해하기보다, 먼저 벽을 세우고 본다. 고집도 세지고, 마음은 예전보다 더 좁아진다.

관계가 조금만 복잡해져도, 풀기보다 끊어내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친구라는 관계는 이익을 따지는 것도 아니고, 마음먹는다고 쉽게 잘라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나도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외롭다고 느껴본 적도 없다. 어릴 적부터 일란성쌍둥이로 태어난 덕분에 언제나 친구 같은 반쪽이 내 곁에 있었고,

한 살 위 언니도 있다. 우리 세 자매는 늘 함께 어울려 지냈다. 그래서일까, ‘친구를 잘 사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늘 곁에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친구들이 참 고맙다.




반면 우리 언니는 지금도 여전히 친구가 많다. 언니는 사람을 잘 챙긴다. 나누는 걸 좋아하고, 먼저 연락해서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일까, 늘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다. 나는 그런 언니를 보며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쉽게 닮아지지 않는다. 부족한 부분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지만

마음먹는다고 쉽게 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나도 친구들에게 조금 더 마음을 써야겠다고.

내가 ‘절친’이라고 부르는 그 친구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 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 한켠이 쓸쓸했다. 베프라면서, 정작 내가 그 친구들에게 얼마나 마음을 표현하고 시간을 썼는지 돌아보게 된다. 너무 부족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의 한마디 덕분에 내 친구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좋은 친구를 찾기에 앞서,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렇다면 좋은 친구란 어떤 사람일까.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비밀을 지켜줄 줄 아는 사람. 오랜만에 만나도 반갑고, 기쁜 일뿐만 아니라 슬픈 일도 함께할 수 있는 사람.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믿고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고, 걱정해 주고 챙겨주는 사람. 서운함보다는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그 부재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를 남기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좋은 친구 아닐까.




생각해 보면, 친구라는 이름은 꼭 ‘친구’에게만 붙는 건 아니다. 그 친구는 남편일 수도, 엄마나 딸일 수도 있다. 딸이 자라면 어느 순간 엄마와 친구가 되고, 부부 사이도 세월이 흐르면 친구 같아진다. 그래서 문득 드는 생각은 엄마에게 친구가 적은 건, 이미 친구 같은 딸이 셋이나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예수님도 우리를 친구라 부르셨다. 신과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라고.

목숨까지 내어주신, 세상 그 무엇보다 진실한 친구. 아무것도 숨길 필요 없고,

부끄러움조차 사랑으로 감싸주는 그런 친구. 그보다 더 좋은 친구가 또 있을까.




자기밖에 모르고,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은 진짜 친구라 할 수 없다. 그런 관계는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친구를 위해 시간을 내고, 진심을 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은 언젠가 꼭 닿게 되어 있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 그게 바로, 진짜 친구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문득 친구들에게 전화하고 싶어졌다. 약속을 잡고, 함께 밥을 먹고, 웃고 싶다. 고맙다, 친구야. 나랑 친구 해줘서, 내 곁에 있어줘서. 앞으로는 내가 더 잘할게.^^



친구에게 먼저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여유, 그 따뜻한 한 걸음으로 내딛으며


그렇게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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