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편지 19
안녕. 오늘도 별일 없었지?
나는 요즘 산책을 시작했어. 우리 동네는 차도 별로 없고, 높은 빌딩도 없고, 주위가 다 하우스라서 참 조용해. 산책하기 딱 좋은 동네지. 그런데 마음은 그렇게 먹어도 막상 집을 나서기가 쉽지 않은거있지. 늘 그런 것 같아. 별것 아닌 일인데도 시작이 제일 어려워.
그러다 얼마 전에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라는 책을 읽었어. 그 책에서 작가님이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는데, 맞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거기에 니체의 말을 빌려 이렇게 답하더라고.
“모든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
이 문장을 보고 ’그래, 산책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 하고 결심했지.
처음엔 우리 딸아이랑 반려견과 함께 나갔어. 예상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예쁜 꽃을 발견하면 딸아이 사진도 찍어주고, 아이와 강아지가 신나게 뛰노는 그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어. 오래 걷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행복했지. 다만 조금 아쉬웠던 건, 조용히 내 생각을 정리하면서 걷지는 못했다는 거야.
그래서 그 다음날엔 혼자 산책을 나가 봤어. 마침 점심 무렵이라 동네가 더 조용했어. 혼자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주변을 더 찬찬히 살피게 되더라. 바닥을 기어다니는 작은 벌레들, 이제 막 돋아난 연둣빛 새싹들, 그리고 봄이 왔다고 속삭이는 듯한 예쁜 꽃들까지. 그렇게 천천히 걷다 보니까 평소엔 그냥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괜히 숨도 크게 들이마셔 봤어. 코끝으로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고, 어깨와 가슴을 쫙 펴니까 발걸음도 더 힘차지더라고. 마치 몸이 깨어나는 기분이랄까?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 그냥 걸었을 뿐인데, 뭔가 건강해지는 것 같고 마음까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어. 참 신기하지?
집집마다 가꿔놓은 정원들도 참 예뻤어. 집마다 분위기가 다 달라서, 어떤 집은 알록달록 꽃이 활짝 피어 있고, 어떤 집은 큰 나무들을 멋지게 다듬어 놓았고 또 어떤집은 여러 종류의 선인장들로 꾸며놨더라고. 걸으면서 이런 소소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지.
걸으면서 생각했어. 별거 아닌것 같은 산책도 막상 해보니까 좋구나. 여유가 없을것 같은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도 이렇게 잠깐 조용히 걷기만 해도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게 신기했어. 정말 감사한 일이더라.
걸으면서 이런 감사한 마음들이 자꾸 떠올랐어.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예쁜 꽃들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따뜻한 햇살에 감사하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감사하고,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어서 감사하고,
시원한 물을 마실수 있어서 감사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감사했어.
그래서 나, 산책을 계속 하려고 해. 앞으로는 더 자주 걸을 생각이야. 너도 산책 자주 하니? 혹시 아직이라면 꼭 한 번 해봐. 그냥 걷기만 해도 좋고,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면 더 좋아. 하나님이 우리 곁에 아름답게 펼쳐 놓으신 자연과 그 색깔들을 찬찬히 바라보면, 아마 너도 금세 산책의 매력에 빠지게 될 거야.
오늘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줘서 고마워. 우리 다음에 또 이야기 나누자. 그때까지 잘 지내고, 안녕! 소중한 나의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