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편지 21
안녕~ 잘 지냈니? 오늘이 벌써 너에게 쓰는 21번째 편지야.
오늘은 ‘뻔뻔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 넌 어떤 사람을 보면 “아휴, 저 사람 진짜 뻔뻔하다~” 싶은 생각이 들어? 나는 말이야, 염치도 없고, 뭔가를 도와줬는데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계속 더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또 분명히 잘못한 게 있는데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면서 당연한 듯 요구하는 사람들. 그런 행동들을 보면, 마음속에서 자꾸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올라오고, 솔직히 얄밉기도 해. 그치?
근데 있잖아, 우리 집엔 그런 뻔뻔한 사람들이 세 명이나 산다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워할 수가 없어. 첫째는 우리 남편, 둘째는 우리 큰아들, 그리고 마지막은 제일 뻔뻔한 우리 막내딸이야. 정말 하나같이 뻔뻔한데, 또 다 너무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야.
우리 남편 이야기부터 해볼게. 이 사람, 정말 뻔뻔한 이유가 있는데 바로 삼시 세끼를 다 집에서 먹는다는 거야. 코로나 이후로 벌써 5년 넘게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거든.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 내가 차려주는 집밥을 먹고 있지. 요즘 ‘삼식이세끼’라는 말이 유행이라 한번 써봤는데 사실은 말이야 나 남편 밥 챙겨주는 거 꽤 좋아해. 물론 1년에 한두 번쯤은 정말 밥 하기 싫을 때도 있어. 하지만 대부분은 ‘건강하게 잘 챙겨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하고 있어. 그게 참 신기하지, 얄밉다고 느낄 틈도 없이 또 밥 차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돼.
그런데 밥 말고도 또 하나 있어. 이 사람은 내가 옆에만 있으면 꼭 손을 내밀어. 무슨 의미냐고? 손을 만져달라는 거지. 운전할 때도,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을 때도, 심지어는 자기 전 침대에서도… 어디서든 틈만 나면 슬쩍 손을 내밀어. 손 만져주는 걸 그렇게 좋아해. 어쩔 땐 진짜 얄미워서 “아이 진짜~” 하면서 그 손을 도로 밀어버릴 때도 있어. 근데 또 그러고 나면 마음이 쓰여. 정말 징글징글할 정도로 뻔뻔한데… 그래도 그 모습이 또 안쓰럽고 귀엽게 느껴진다니까.
그리고 우리 큰아들! 이제 열 살이 됐어. 이 아이는 귀 파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너무 자주 해달라고 해서, 내가 아예 일주일에 한 번, 매주 화요일로 정해버렸어. 매번 자기 전에 해주는데, 한 번은 내가 좀 늦게 올라갔거든? 그랬더니 잠들어버렸어. 그래서 못 해줬는데, 다음 날 아침에 “왜 어제 귀 안 파줬냐”며 툴툴대는 거 있지? 자기가 잠들어 놓고 말이야. 그 순간 정말 화가 나서 “엄마가 해주고 싶을 때 해줄 거야. 이제 귀 파주는 거 없어!” 하고 버럭 했지. 괘씸하고 너무 뻔뻔해서 속상했거든. 근데 또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풀리고, 어느새 다시 해주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돼. 부모 마음이 다 그런가 봐.
그리고 마지막! 우리 집의 뻔뻔함의 최강자, 여덟 살 막내딸! 이 아이는 어릴 때부터 “엄마, 미안해~”를 입에 달고 살았어. 뭐든 엄마한테 해달라고 하고, 안 해주면 막 짜증 내고, 그러다 또 미안하다고 하고, 다시 해달라고 하고… 이 패턴이 지금까지도 그대로야. 엄마한테는 뭐든 요구해도 된다는 걸 아는 듯이, 뻔뻔하게 말이지. 제일 엄마한테 뻔뻔한데 또 제일 당당해. 웃으면서 부탁하러 와. 내가 아니면 누가 또 이렇게 받아줄까 싶어 다시 마음을 넓혀.
오늘은 뻔뻔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결국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 이야기로 흘러가버렸네. 말은 그렇게 해도, 내겐 너무너무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야. 가끔은 얄밉고 속상하게 하고, 정말 배은망덕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결국 다시 품고, 웃게 되고, 안아주게 되는 건 결국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오늘도 다짐해. 마음을 더 넓게, 더 따뜻하게, 자주 뻔뻔해도 그걸 품어줄 수 있는 그런 엄마, 그런 아내가 되자고 말이야.
너도 혹시 그런 뻔뻔한 행동 겪어본 적 있어? 누가 제일 뻔뻔했어? 아니면 너는 그런 행동을 누구한테 했던 적 있어? 왠지 대부분은 엄마한테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 사랑받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더 기대고, 더 당당하게 요구하고, 때론 더 뻔뻔해질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보면 뻔뻔함 속에는 그 사람의 대한 믿음과 애정이 들어있는 것 같아. 그래서 얄미우면서도 사랑스럽고, 가끔은 웃기기도 하지. 근데 말이야, 내가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가 그런 뻔뻔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정말 견디기 힘들 것 같아. 뻔뻔함도 말이야, 부릴 사람에게 부려야지~ 그치?
나는 이 뻔뻔함을 누구한테 부리냐? 난 하나님한테 부려. 맨날 잘못해도 다시 회개하고 돌아가서 또 뭐 해달라고 부탁드리고 말이야. 내가 생각해도 진짜 뻔뻔한데 또 다 받아주셔..ㅠㅠ 내가 너무 사랑하고 또 감사하고 의지하는 분이야~!
오늘도 내 긴 수다를 들어줘서 고마워. 다음 편지에 또 이어서 이야기할게.
그때까지 잘 지내고, 마음 따뜻한 하루 보내길 바랄게. 바이바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