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편지 20
안녕~
요즘 날씨 정말 좋지? 따뜻한 봄 햇살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까지… 괜히 나른해지고 마음도 살짝 게을러지는 그런 날씨야. 뭔가 해야 할 게 잔뜩 있지만, 괜히 이 날씨 탓이라도 해보고 싶은 그런 기분. 사실 뭐든 핑계를 대면 끝도 없잖아? 책도 읽어야 하고, 글도 써야 하는데 자꾸만 미루게 돼. 막바지에 부랴부랴 하다 보면 마음은 급해지고,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말이야.
생각해 보면, 예전엔 이런 성격이 아니었거든. 학교 다닐 때는 숙제나 프로젝트 미루는 걸 정말 싫어했어. 준비물도 꼭 미리 챙겨두고, 그래야 마음이 편했거든. 지금도 여행을 간다 하면 가방부터 꺼내서 미리 필요한 걸 하나하나 챙겨 담아놔. 누군가와 만날 때도 약속 장소에 미리 먼저 가 있는 편이야. 공과금이나 카드값도 내야 하는 날짜보다 늘 미리 먼저 보내.
근데 우리 남편은 완전 반대야. 미룰 수 있는 건 끝까지 미루다가 마지막에 아슬아슬하게 처리하거나, 가끔은 기한도 놓쳐버려. 여행 가방도 출발하기 직전에야 겨우 챙기고, 약속 시간에도 자주 늦는 편이야. 그러다 보면 내가 못 참고 먼저 챙겨주게 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성향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맞춰가며 살고 있어. 때론 웃기기도 하고, 때론 답답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요즘 나도 조금씩 변하는 걸 느껴. 예전엔 책 읽고 글 쓰는 것도 미리미리 해두었는데, 요즘은 자꾸 밀려. 읽겠다고 마음먹은 책들도 아직 한가득 쌓여 있고, 리뷰는 미뤄지고, 글은 하얀 화면만 바라보다가 그대로 덮을 때도 많아. 자꾸 밀리다 보니까 마음이 급해지고 아직 다 못 끝낸 것에 대한 스트레스와 조급한 마음까지 생겨서 이런 좋은 날씨도 맘껏 누리지 못하고 있단 말이지! 그렇다고 다 엎어버릴 수도 없고 말이야.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건 결국 내가 나에게 만들어 놓은 틀 속에 나를 가둔 결과가 아닐까 싶어. 꼭 이렇게 해야만 한다, 지금 당장 끝내야 한다, 미루면 안 된다… 이런 나만의 기준들이 때로는 나를 지치게 만들고, 숨 막히게 하더라고.
그래서 요즘은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려고 해. 밀려도 괜찮아. 느려도 괜찮아. 중요한 건 ‘계속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 조금 늦게 가더라도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다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물론 아직 익숙하진 않아. 가끔은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게으른 건 아닐까 자책할 때도 있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정하게 말해주고 싶어.
"괜찮아. 누구나 그럴 수 있어. 천천히 해도 돼."라고.
좋은 날씨에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조금 더 여유롭게, 기분 좋게 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어.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지 않아도 괜찮아. 오히려 조금 부족하고 느려도 꾸준히 성실하게 가고 있다면 되는 것 같아. 그 순간을 기쁘게 누리면서 말이야.
너도 지금 그러고 있다면 오늘부터는 너를 가뒀던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해봐. 스스로에게 주었던 무거운 기대와 압박에서 벗어나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여유롭게, 그렇게 나답게 살아보는 건 어때?
할 수 있을까? 물론이지! 할 수 있어~!
나도, 너도, 우리 모두 충분히 잘 해내고 있어. 그러니 우리, 오늘은 그런 우리를 살짝 칭찬해 주자. 그리고 봄 햇살처럼 따뜻하게 스스로를 안아주자. 알겠지?
그럼 다음에 만나는 그날까지~ 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