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연애 정경》 박소정 저자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에디터 소희준입니다.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크리스마스 계획 이야기가 많이 들립니다. 함께 시간을 보낼 연인은 있는지, 어떤 특별한 일을 할 예정인지 묻곤 하는데요. 아마도 크리스마스 날 #럽스타그램 태그가 달린 예쁜 사진들이 넘쳐날 것 같습니다.
《연애 정경》의 박소정 저자는 ‘럽스타그램’ 사진들의 정형화된 포맷과 일상의 이벤트화에서 불안한 사회의 인정 욕구를 읽어 냅니다. 애매하고 유동적인 관계인 ‘썸’이 공식적인 연애의 전 단계로 자리 잡고, 연애를 공식화하고 나면 SNS를 통해 보여 주는 데 몰두하는 현상을 분석합니다.
자신을 관리하지 않으면 생존조차 어려운 불안한 사회에서, 연애는 ‘스펙’이자 리스크입니다. 연애로 인한 상처를 감당하기 어려운 청년들은 썸을 타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는 데 집중합니다. 연애에 성공했다면 럽스타그램으로 자신이 뒤처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토록 불안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애하고 있을까요? 박소정 저자와 이야기를 나눠 봤습니다. 〈남자친구〉, 〈하트시그널〉, 〈선다방〉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보여 주는 연애도 화두로 등장했는데요. 이번 주말에는 우리 연애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연애를 연구했다. 한국 청년들의 연애에서 발견한 특성이 무엇인가?
처음 눈에 띄었던 건 ‘썸’이었다. 한국 사회의 연애는 단계화되어 있지 않나. 소개팅 후 세 번째 만날 때 고백을 해야 한다거나, 100일을 챙기고, 사귄 기간에 따라 이벤트를 벌이는 등 도식이 존재한다. 썸이 그 단계 중 하나로 새롭게 생겨난 것은 사회의 변화가 관계에 반영된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또, SNS에도 독특한 미학이 있다. ‘럽스타그램’이 대표적이다. 일상을 이벤트화해 끊임없이 기록한다. 사진 구도와 데이트 양식도 정해져 있다. 롯데월드의 회전목마 앞에서 찍은 럽스타그램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그런 독특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걸까?
울리히 벡을 비롯한 사회학자들은 현대 사회를 ‘위험 사회’라고 진단한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정해진 삶의 경로가 없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이 되고, 정년까지 일하는 식의 경로가 보장되지 않는다. 썸 역시 유동하는 사회에서 나타난 유동적인 관계다.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규정된 관계보다 변화 가능성을 택한다. 럽스타그램 역시 위험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주변의 인정을 받으려 하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이다.
불안함 속에서 연애를 하는 데도 더 많은 계산이 필요해진 것 같다.
연애에 경제적인 요소가 개입되는 것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과거 결혼 시장에서도 집안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시장 가치로 판단되었다. 현대의 연애 시장에 다른 점이 있다면 상대의 모든 자질이 ‘연애 자본’으로 고려된다는 것이다. 연애 자본이 연애 시장을 작동시키는 원리다.
연애를 위해 외모를 가꾸는 것은 물론, 말하는 방식을 연습하거나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려 노력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것들이 연애 자본인가?
그렇다. 연애 상대를 고르는 데 개인의 다양한 자질이 고려된다는 건 개인의 고유성을 다각도로 평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획일화된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상형은 특정한 형태로 표준화된다. ‘뇌섹남’, ‘과즙상’, ‘베이글녀’ 같은 단어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애를 위한 노력이 자기 계발과도 비슷한 것 같다.
지금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연애에 대한 욕망이 만연한 분위기다. 연애를 많이 해보기를 권장한다. 연애를 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이 쉽게 구분된다. 연애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쉽게 묻는다. 연애는 ‘스펙’처럼 많거나 잘할수록 좋은 것이다.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해서 연애를 하면, 어떤 점이 좋은 건가?
이제 청년들에게는 판단의 준거가 없다. 부모님의 경험이나 지혜를 물려받아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 많은 경험을 할수록 좋다. 연애 경험을 쌓는 것은 연애를 잘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미디어에서 연애를 자주 다루고, 조언을 해 주면서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이전에는 〈마녀사냥〉같은 프로그램이 연애에 관한 조언을 해 줬다면, 최근에는 〈선다방〉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오면서 결혼까지 이어지기 위한 연애도 다루고 있다.
〈선다방〉이 등장한 데에는 어떤 맥락이 있는 것 같나?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 연애를 주된 주제로 다루고, 조언을 해주는 것에서 결혼에 대한 조언으로 발전했다. 과거에 방영됐던 결혼 매칭 프로그램들은 포맷이 단순했다. 서로에 대해 알아보고, 사랑의 작대기를 그리는 식이다. 하지만 〈선다방〉은 미묘한 기류까지 다룬다. 선 자리에서 빨대로 음료를 자꾸 젓는데, 그게 좋은 모습으로 보일 것인가까지 연예인들이 코멘트해 준다.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에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세세한 것까지 코칭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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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정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사람과 세상을 매개하는 미디어의 힘에 매료되어 동 대학교 대학원 언론정보학과에서 문화 연구와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동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에서 연애하기>와 <미디어 문화 속 먹방과 헤게모니 과정>이 있다. 그 외 다양한 미디어 문화 현상과 청년, 젠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보조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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