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력 키우는 우리만의 홈스쿨링

2. 책으로 자라는 아이들

by book diary jenny


인생 선배님들의 말씀이 틀린 게 하나 없구나.

한 배에서 태어나도, 같은 성별이어도, 심지어 쌍둥이어도 이토록 다르다는 말씀 말이다.

‘두 아이를 키우는데도 이토록 다르구나.’라는 걸 새삼 느낀다.

그나마 우리 집 두 아들은 밀리터리 덕후로 관심사가 비슷하다고 생각해 왔다.

거기다 년도의 차이는 있지만 태어난 날짜마저도 똑같은 두 아들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한 해 한 해 시간이 갈수록 확실히 다름을 느끼는데, 책에 대한 스타일이 그 한 예이다.


그동안 귀찮아서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던 아이들 책장 정리를 대대적으로 했다.

이토록 아담한 집 곳곳에 얼마나 많은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는지 살면서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전셋집에 살 때는 그나마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다 보니 ‘책이 많아도 너무 많아.’ 한숨을 쉬며 책을 쌓지만, 7년 전부터 이사를 하지 않게 되면서는 책이 넘치고 넘침을 느끼지 못했더랬다.

‘우리 집만 해도 이토록 책이 어마어마한데, 집집마다 다 모으면 얼마나 대단한 양일까?


하영이는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언제 어디서든 책을 끼고 지냈다.

잠깐 볼일 보러 나가는 외출에도 손에 책을 쥐어 줘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글을 쉽고 빠르게 익히게 되었고, 34개월이 되어서는 거의 완벽한 한글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첫째를 키우는 엄마들 대부분의 착각, “우리 아이가 혹시 천재는 아닐까?”.

나 역시 책을 엄청 좋아하는 큰아이를 보면서 보통 아이는 아닐 거라는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우스운 상상을 하며 그 기대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 책을 제공해 주었다.


깊은 밤이 되면 더 집중이 잘 되는 건지 하영이는 외치고 또 외쳤다.

“또 읽어주세요. 이것도 읽어주세요. 이 책 다시 읽고 싶어요.”

내 몸이 피곤하다보니 책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에 맞춰주는 게 너무나 힘든 시기가 있었다.

어느 날은 아침에 일어나니 목구멍이 너무나 따가웠고 심지어 피가 살짝 보이기도 했다.

많은 책들을 최대한 성심성의껏 읽어 준 것이 원인이었다.


이렇게 아이들은 시기의 차이를 두고 책의 중독에 빠지는 때가 적어도 한 두 번은 꼭 있다.

이번에 책장 정리를 하면서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에 의해 열심히 읽어주고 함께 즐기고 또 행복해 했던 그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활자중독이라 할 만큼 독서에 빠지는 큰 아이와는 다르게 둘째는 필요에 의해 읽는 선택적 독서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둘째도 볼 거니까, 다른 돈은 아끼더라도 책은 많이 사줘도 아깝지 않지.’라는 생각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책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다른 건 둘째 치고, 책 읽는 방법 자체도 다른 것이다.

하성이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책을 반복적으로 읽었다.

선호하는 몇 권의 책을 읽고 또 읽고, 보고 또 보고, 음미하고 또 음미하고, 정리하고 또 정리하는 것이다.

반면 하영이는 이 책 저 책 두루두루 관심을 가지며 엄청난 양의 책을 읽다보니 책을 사는 것이 일이었다.

보는 책만 줄기차게 보면서 너덜해질 때 까지 반복적으로 읽는 둘째와, 여러 권의 책을 방대하게 보는 첫째.

백과사전식 독서와 논문작성식 독서라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하성이의 독서법이 편식이 심한 아이같다는 생각에 걱정을 했다.

전쟁, 전투, 전략 등을 좋아하다보니 그에 관한 책들만 깊이 파는 모양새가 신경 쓰이기도 했다.

세계 어린이 명작동화, 특정 캐릭터 동화책, 자연관찰 책 등은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오로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들만 열심히 읽는데, 어렵고 두꺼운 전문서적을 사주니 그것도 자기가 좋아서인지 신나게 읽어나갔다.

독서에 왕도가 없듯, 독서에 정도도 없는 건 확실하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경험하고 또 다른 아이들을 컨설팅을 해보니, 다른 것처럼 독서 역시 정답 없음이 정답이 아닐까 싶다.


항상 주장해 온 “아이들은 각자 다 다른 방식으로 자란다.”는 당연한 사실이 한 번 더 증명이 된 셈이다.

책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고, 책을 읽는 모습도 차이가 난다.

가령 하영이는 책을 아주 깨끗하게 다루고 정갈한 모습으로 읽어 나간다.

하성이는 자유로운 영혼인양 책을 편하게 대하며 필요한 것은 책에 적기도 하는 등 편하게 대하며 읽어나간다.

심지어 필요한 부분은 스크랩을 하면서 찢겨져 훼손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영이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혹시나 언젠가 읽으려나 싶은 마음에 책들을 집에 모셔두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마음을 바꾸게 되었고, 손도 대지 않는 책을 집에 두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어 과감히 정리를 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어 한 트럭은 집에서 빠져나간 기분이다.

집안이 헐렁해진 기분, 허전하면서도 섭섭하고 그러면서도 시원하고 속이 편한 그런 기분.

‘그래, 필요한 곳으로 가서 빛을 발할 너희들에게 자유를 주겠어.’라는 비장한 마음도 들었다.

정든 책을 보내는 하영이는 섭섭한 마음이 한 가득이고, 관심도 없는 책을 보내는 하성이는 그저 그런 덤덤한 모습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것, “아이들은 다 다르고, 정답은 없다는 것!”


책을 읽는 것부터 무슨 책을 읽을 건지,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지 등을 강요하는 엄마들이 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렇게 직설을 날린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세요. 내버려 두는 만큼 아이들은 더 잘 성장합니다.”

“무엇보다 엄마부터 책을 읽으세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마음껏 즐겁고 신나게 읽으세요. 그게 정답입니다!”라고 말이다.

책을 평생의 친구로 삼을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아지길 바랄 뿐이다.

더불어 우리 어른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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