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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diary jenny Aug 10. 2021

[육아]from입짧러깨작러 to냠냠러쩝쩝러

'입짧러 깨작러'에서 '냠냠러 쩝쩝러'로의 변신


 


솔직히 말하면, 그건 바로 나다. 우리 집 대표 ‘입짧러’이며, 일등 가는 ‘깨작러’다. 이런 내게서 태어난 아이들도 당연히 그럴 수 있으리라는 건 애들을 낳기 전 이미 예상했다. 다행히 김치만 있어도 밥을 몇 그릇 먹을 수 있는 남편을 둔 터라 어느 정도 융화되어 평균이 되길 기대했다. 하늘이 도우사, 다행히 아이들은 나만큼은 아님에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커피 홀짝이면서 자판 두드리며 편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지 나에게도 마음 아팠던 고난의 길은 있었다. “왜, 왜, 왜 말을 못하니, 왜....”라며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마지막 장면에 빙의되어 “왜, 왜, 왜 먹질 못하니, 왜...”라고 답답해하던 지난날의 내가 떠오른다.

 


큰애는 입이 짧기로 유명했다. 안 먹는 건 아닌데 먹는 양이 극도로 적었다. 아, 그러고 보니 새로운 음식을 입을 대지 않은 까다로움도 있었다. 심지어 과자나 빵도 먹질 않았으니 말이다. 거기다 3일이 멀다하고 토하기 일쑤였다. 음, 그때의 그 더럽더럽한 순간들이 모두 기억나다니.


 

식탁 위 유리판을 치웠다. 유리와 식탁 틈 사이로 끼어드는 아이 토사물을 치우는 게 일이었다. 이해되는 엄마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쉽게 상상되진 않을 것이다. 유리 위에 번진 토사물을 닦은 후 다시 닦는 행주는 버려야하나 삶아서 다시 써야하나 고민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평균 3일에 한 번 이었으니. 병원 검사를 받으면 이상없음이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미안한 마음에 머금은 토사물을 다시 넘기는 큰애의 모습을 보며 ‘마음 아픔’보다는 ‘비위 좋음’을 발견했다. 신기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토록 고민이었다면 이곳저곳 알아봐야 일반적인 모습일텐데 ‘시간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니. 나는 간이 큰건가 믿음이 강한건가 아니면 무모한건가.  


 

두 어머니의 마음고생이 심하셨다. 어디 말할 데가 없으니 그분들과 통화할 때마다 넋두리 했다. “어쩌나. 괜찮아지려나?” 시어머님 반응이다. “속상해. 어쩌면 좋지?” 친정엄마 반응이다. 거기다 남편은 “좀 더 지켜보자.” 나 역시 “괜찮아 지겠지.”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둘째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잘 누는 등 순둥이의 모든 특징을 가진 아이였다. 나를 지치게 했던 큰애의 까다로운 식습관을 모두 날려버렸다. 그런데 신기하다. 둘째의 탄생과 더불어 큰애의 예민했던 식습관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리다니, 이 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동생 앞이어서 노력을 한 건지, 나이를 먹음에 따라 괜찮아진 건지 이유는 모르겠다. 큰애의 까다로운 입맛과 힘겨운 구토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어진 아이의 커다란 인생 이벤트 초등학교 입학. 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큰애는 초등 입학이 사회생활의 첫 출발이었다. “엄마, 오늘 밥 진짜 맛있었어요. 반찬도 다 먹었어요.” 


 




‘뭐지, 나의 음식 솜씨가 문제였나? 그렇다면 같은 음식을 먹는 둘째도 힘겨워 해야 하잖아? 남편도 괴로워야 할텐데? 다들 문제가 없었잖아?’ 이리저리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당시 큰애가 쏟아낸 구토와 음식 앞에서 코를 틀어막는 예민함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아하, 너와 나는 입짧러! 그리고 깨작러! 그게 결론이구나.’ 부인할 수 없는 너무나도 말끔한 상황 종결. 우리는 ‘입짧러’이자 ‘깨작러’인 것이다. 특징이 있다면 나는 아직까지도 ‘입짧러’이자 ‘깨작러’의 타이틀을 벗어던지지 못했다. 반면 큰애는 그걸 휙 벗어던지고 새로운 타이틀까지 얻었는데 그건 바로 ‘맛있어 냠냠러 쩝쩝러다. 뭐든 맛있다는 큰애는 편식과 소식은 커녕 몸이 탄탄한 아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때 입학생 중 가장 작은 아이가 하영이었다. 그러고도 한동안 그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 사실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기에 고민이라 생각지도 않았다. 왜 나라고 답답하지 않았을까. 걱정되고 애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내 안의 ‘기다려보자 마인드’는 나를 항상 단단하게 잡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토하는 자기 모습을 보며 ‘나는 왜 이럴까’싶었을 큰애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그렇지만 잘 이겨낸 스스로를 보며 자존감이 높은 큰애는 이렇게 생각하겠지, ‘역시 난 멋져’라고 말이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날씬해진 둘째가 요즘 슬슬 ‘입짧러’와 ‘깨작러’의 뒤를 잇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리라 믿는다.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다고 너무 걱정하진 말자. 당시에는 속상하고 걱정되고 마음 아프다. 엄마여서 그렇다. 난 안 먹더라도 내 아이는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어야 마음 편하고 발 뻗고 잘 수 있는 우리는 엄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나 역시 엄마이기에 이해한다. 그러나 위급하거나 특수한 상황이 아닌 한,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의 인생 선배들은 이렇게 말했다. “기다려봐, 괜찮아져.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괜찮아 진다니까.” 그런 말을 들은 날도 또 한 판의 구토가 식탁 위에 펼쳐졌는데, 그들은 괜찮다고만 하니 답답했다. 그렇게 아이의 뼈대는 굵어져가고, 살은 탄탄해져가며, 마음은 커져가는데...

 


다들 괜찮다. 좀 깨작거려도 괜찮다. 입 좀 짧아도 문제없다.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다 괜찮아진다. 정말 괜찮아진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괜찮아진다. 이 믿음을 가져야 한다. 주문처럼 외워야 한다. 무모한 믿음이 아니라 신빙성 있는 믿음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외쳐도 상관없다. “이 구역의 일등 ‘입짧러’이자 ‘깨작러’는 나야!”  

 




*그럼에도 상황이 좋지 않다면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하영이도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의사선생님 말씀처럼 대부분은 이상이 없습니다. 음식에 대한 거부반응은 자라면서 대부분 고쳐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간혹 정신적인 원인은 있을 수 있으니 상담을 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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