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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Aug 01. 2017

말과 글에도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북런치 #8] 언어의 온도

뜨뜻한 언어는 온기로 상대를 감싸고, 냉랭한 언어는 마음을 시리게 만든다. 언어에 온도가 있다는 말에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지만, 정작 그 온도를 감각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에게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이나 글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감각한다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이 지닌 진짜 의미는 무엇인지, 천천히 그리고 온전히 곱씹어 볼 때만이 그 온도를 느낄 수 있다. 마치 매일 먹는 쌀밥을 천천히 그리고 오래 씹을 때 비로소 본연의 단맛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김영하 작가가 알쓸신잡에서 말했듯, 글을 쓰는 작가는 '말을 수집하는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다. 다른 누군가가 그냥 흘려보낸 말들을 수집하고, 가치를 발견하고, 생각을 담아 글로 엮어내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이 책의 저자 이기주 작가는 어머니를 모시고 간 병원에서, 2호선 홍대입구역 지하철에서, 강변북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그리고 그 모든 일상 속에서 발견한 말과 글, 단어의 어원과 유래, 그리고 그 언어들이 지닌 온도를 책에 담아냈다. 추측하건대, 파랗게 차가운 언어와 빨갛게 뜨거운 언어를 한데 모으다 보니 책 표지가 보라색이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한 권의 책은 수십만 개의 활자로 이루어진 숲인지도 모릅니다.

'언어의 온도'라는 숲을 단숨에 내달리기보다,

이른 아침에 고즈넉한 공원을 산책하듯이 찬찬히 거닐었으면 합니다. 


여유가 생긴 요즘, 마음만 먹으면 단박에 '읽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다 '읽어버린' 후엔 후련함보단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저자의 당부대로, 나는 매일 점심을 먹은 후 불이 꺼진 사무실에서 찬찬히 산책을 즐겼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문장과 문장에 호흡을 불어넣으며,

적당히 뜨거운 음식을 먹듯 찬찬히 곱씹어 읽어주세요.

그러면서 각자의 언어 온도를 스스로 되짚어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책이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책을 읽고 나니 괜스레 나의 말과 글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퇴근 후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헬스장 탈의실에서, 회의하러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매일같이 주고받는 메일과 카톡에서 다른 누군가가 그냥 흘려보낸 말들을 수집하고, 그 온도를 느껴보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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