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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Feb 13. 2018

우리는 결국
보통의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

[북런치 #10] 보통의 존재

'독자는 책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견한다'는 말이 있다. 이미 체계화된 생각이든, 그저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이든, 타인의 글에서 자신의 생각을 닮은 구절을 발견할 때 우리는 모종의 위로와 지지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단순히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발견의 기쁨을 주기 위해서는 글에 솔직함이 요구된다. 누군가는 여러 가지 이유들로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 간직해온 생각이었기에. 그래서 작가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직업인 것 같다. 아니면, 엄청 뻔뻔해야 하거나.


“오늘날,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장식하는 수많은 책들이 하나같이 당신은 특별하며 소중한 존재라고 말할 때, 누군가 한 명쯤은 ‘당신 평범해요. 하나도 안 특별하다구요. 근데 그게 뭐 어때요?’ 이렇게 말해주는 작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다른 이가 아닌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 이석원


밴드 '언니네 이발관' 리더 이석원씨는 책 '보통의 존재'를 통해 마치 일기장을 공개하는 듯,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덤덤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그 진솔함은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끌어 낸다.


그 특유의 솔직함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꾸며낼 필요가 없다는 자각에서 기인한 듯하다. 모두가 특별한 존재가 될 수도 없거니와, 사실 꼭 그렇게 될 필요도 없는데, 우린 '특별함'을 지나치게 강요받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이때, 우리 자신이 사실은 그저 '보통의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자각은 부담과 자기기만으로 잔뜩 움츠린 어깨에 힘을 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각의 분명한 유익을 고려하더라도, 자리에 주저앉을 정도의 무력감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모두가 '모든 영역'에서 '보통의 존재'인 것은 아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어떤 영역에서 힘을 빼야 하는지, 어떤 영역에서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지 가려내는 것이야 말로 정말 지혜가 필요한 영역이 아닌가 싶다.


<보통의 존재> P 186 어느 보통의 존재 中


그리고, 아래는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나의 생각들.




나뿐만 아니라 누구든 창작자라면 창조는 천재성이 아닌 고통에서 더 많은 것이 비롯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평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좋은 작품을 내기가 힘들다. 인생의 굴곡이 험준할수록 작품에도 그만큼 진한 드라마가 담기기 마련이니까. - P 88


현실은 고통스럽고 꿈속의 사막은 달콤하다. 그렇기에 나는 사막을 꿈꾸는 노래를 짓고 부른다. 고통이 아니었던들 내게 음악이나 평화로운 삶 같은 것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까. 생의 중요한 것들이 이처럼 고통 속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이 내겐 아직도 낯설게 느껴진다. - P 89


다만 분명한 건 인생이란 사랑할 대상을 골라서 사랑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뿐. - P 96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자신의 입장과 시각으로 타인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존재의 본질이란 어쩌면 타인에 의해 인식되는 것 외에 다른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 P 108


선언의 허망함은 결심을 토하는 것에서만 비롯되지는 않는다. 감정을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왜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면 그 순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허망함이 밀려오는 걸까. 왜 그것을 입에 담는 순간, 그토록 복잡한 생각이 들며 나의 말의 진위가 스스로도 의심스러워지는 걸까. - P 140


그리고 바로 그때 알게 된 거다. 슬픔을 위로하는 것보다 기쁨을 나누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난 반성했다. - P 166


누구나 자신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실제로 오르기 어려운 산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 깨달음을 스물다섯에 얻는다면 그건 바보 같은 일일 것이고, 서른이라 한들 속단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흔 언저리쯤 되면 반드시 포기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다. 그때가 되면 마지막 몸부림도 쳐보고 온몸으로 거부도 해보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확인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 그 잔인할 일 말이다. - P 182


잠 못 이루며 끝없이 의문을 던지는 그에게 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해주었다. "나는 네가 뿌리내릴 수 있는 땅이 되어줄 거야." 그 말을 들은 그는 비로소 안심하며 잠이 들 수 있었고 그렇게 조금씩 나에게 뿌리를 내려갔다. - P 280


진정으로 굳은 결속은 대화가 끊기지 않는 사이가 아니라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사이를 말한다. - P 295


연애는 학습이다. 할 때마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니까. 문제는 배운 것을 써먹게 되는 건 언제나 지금 '이 사람'이 아닌 미래의 '다음 사람'이라는 것이다. 연애는 그래서 이어달리기이다. 이어달리기의 규칙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 사람에게 받은 것을 그 사람에게 다시 돌려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P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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