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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Mar 11. 2019

건축가의 눈으로
공간 읽기

[북런치 #14] 어디서 살 것인가

한 가지 분야에 오랜 시간 종사하며 고민을 거듭해온 사람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이 생긴다. 디자이너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디자인으로 보이고, 마케터는 마케팅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하는데, 바로 그 '다름'에서 우리는 지적인 자극과 흥미를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유현준 교수의 '어디서 살 것인가'는 흥미롭다. 이 책에서 그는 건축가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도시와 공간,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읽어냈다.



우리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 공간이 만들어 내는 환경의 본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주변의 공간을 읽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우리에게 인간의 복잡한 욕망이 만들어낸 도시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무척 '자연'스럽다. 따라서, 공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을 조금은 낯설게 바라보기 위한 도움이 필요하다. 바로, 건축가의 눈.


건축가의 눈으로 공간을 바라볼 때, 공간과 삶 사이에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공간이 좋은 공간이고, 어떤 공간이 우리에게 필요한지, 그래서 '어디서 살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고민하고,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책에 있는 몇 가지 예들을 소개한다.


건축가의 눈으로 바라본 '학교 공간'

왜 한국의 학교 건물들은 다 똑같이 생겼을까? 정문에 들어서면 보이는 커다란 운동장, 그리고 대개 'ㄱ(기역)' 자로 만들어진 4~5층 높이의 건물, 네모난 창문들이 균일하게 배열되어 있다. 씁쓸하게도, 각 요소들은 교도소와 매우 유사하다.


저자는 학교 건물이 저층 구조일 때 마당과의 접근성이 더 높아져 자연환경 속에서 다채로운 교우관계를 맺기에 유리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이런 변화를 누가 만들 수 있을까? 변화를 거부하는 교육행정 부서와 담당자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교육과 교육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한국에도 조금 더 실험적이고 재밌는 학교 공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고층 VS 저층 마당과의 접근성 차이



건축가의 눈으로 바라본 '도시의 공원'

최근 1인 가구가 꾸준히 늘어남에 따라 주거 공간의 크기는 작아지고, 공간 부족을 메우기 위한 대안으로 카페를 찾고 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이용하기 위해서는 비싼 커피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저자는 시민들이 무료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심 속 공간, '공원'이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에는 큰 규모의 공원들이 많이 있지만, 공원 간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이렇게 크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것보다, 작은 규모의 공원들을 주거지역 주변에 많이 조성할 필요가 있다. 다만, 서울의 땅값을 고려하면, 정부든 서울시든 몰라서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맨해튼 VS 서울 공원 간 거리 비교



건축가의 눈으로 바라본 공간은 도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힙합 가수들이 후드티를 입는 이유는 시선을 차단해서라도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기 위함이라는 것 / 로마는 천 년 이상 지속됐는데 몽골제국은 150년 만에 망한 이유는 건축문화의 차이에 있었다는 것 / 배달 앱이 도시의 식당 상권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는 것 등등. 동-서양과 과거-현재-미래, 온갖 영역들을 넘나들며 공간에 대한 새롭고 다양한 생각들을 담았다.


분명 '아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재미있는 관점들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하나의 관점으로 해석하려다 보니 여러 오류가 뒤따르기도 한다. 한국의 근대화가 일본에 비해 늦은 이유를 분석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아궁이 문화로 인한 단층 주거형태가 도시의 고밀화를 막았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난로 문화로 인한 복층 주거형태로 도시가 고밀화되고 신흥 계층이 발생하여 근대화를 앞당길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그럴듯하지만 일반화 & 불분명한 인과관계로 인한 논리적 비약이 책의 곳곳에 있으니, 감안해서 읽을 필요가 있겠다.


책을 덮고 나서 생각해보니, 유현준 교수의 '어디서 살 것인가'는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와 매우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 자체도 유사하거니와, 공간과 삶의 상호작용에 대해 고민하는 '어디서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삶을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축물을 만들 때 우리는 건축물 자체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그 건축물이 담아내는 '삶'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건축과 도시를 만들 때 건축물 자체보다는 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질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해야 한다.



건축가의 눈으로 공간을 읽어보자.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어디에 살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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