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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Feb 10. 2020

'어바웃 타임'
by 무라카미 하루키

[북런치 #16]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인간은 시간에 종속되어 살아가고,
시간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이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본인이 가진 소설가로서의 기교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뽐냈더라면. 아니, 그런 '뉘앙스'를 '아주 살짝'이라도 풍겼더라면. 나는 그가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 탓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전반에 걸쳐 그가 가진 '시간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었고, 나로서는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하루키의 하루도, 나의 하루도 똑같이 24시간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히트작을 써온 그가 소설가라는 직업을 소개하면서 할 수 있는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데도 '시간'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등장한다는 점이 아주 흥미로웠다. 물론, 이는 소설가에게만 국한되는 내용은 아니었다. 먼저는 어떤 형태든 콘텐츠를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조금 더 확장하자면 모든 직업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지혜들이 담겨있었다.






1. 

시간이라는 

요소를 고려할 것


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 P.16

요컨대 한 사람의 표현자가 됐든 그 작품이 됐든 그것이 오리지널인가 아닌가는 '시간의 검증을 받지 않고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 P.99

'시간에 의해 쟁취해낸 것은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 P.167


순간적으로 반짝하고 등장했다가 지금은 사라진 콘텐츠, 콘텐츠 창작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적고, 그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해내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타임 프레임을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겠다. 그것이 잠깐의 인기에도 들뜨지 않고, 오랜 무관심에도 지속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2.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동기를 찾을 것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먹고사는 게 힘들어도, 책을 읽는 일은 음악을 듣는 것과 함께 나에게는 언제나 변함없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 P.43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소중히 여겨온 것은(그리고 지금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나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는 솔직한 인식입니다. - P.58


수많은 변수를 물리치고, 무언가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선 변하지 않는 강력한 동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주로 외부보다 내부에서 발견된다.

재능이란 결국 '무언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하루키가 가진 재능은 '책 읽기를 즐거워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일종의 '소명 의식'이 더해졌고, 이 두 가지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좋아하는 것(재능)'과 '해야 할 것 같은 것(소명)'의 교차점을 찾아야 하겠다.



3.

시간을 버티는 힘,

루틴을 만들 것


장편소설을 쓸 경우,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게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 P.150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 P.151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하루 꾸준히 끌어당겨 자꾸자꾸 뒤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 P.180


아무리 강력한 동기와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언젠가는 지치고 꺾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규칙이고 루틴이다. 좋든 싫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정량을 꾸준하게 해내는 것.

개인적으로 올해 목표로 하는 '좋은 습관 만들기'와 맥락이 닿아있는 대목이었다.



4. 

시간에 걸쳐 

무엇을 축적할지 고민할 것


소설가에게는 스토리에 필요한 소재를 꼼꼼히 수집하고 축적하는 작업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마 어떤 시대에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 P.140

작업 하나하나에 들인 시간의 퀄리티는 틀림없이 작품의 '납득성'이 되어서 드러납니다. - P.166

그런 견실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거기서 창출되는 작품의 퀄리티 또한 자연히 높아질 것, 이라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 P.201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하지만 그런 종류의 지식에는 그다지 즉효성은 없습니다. 그런 지식이 진가를 발휘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립니다. - P.209


그렇다고 단순히 뭔가를 오래 하는 게 전부는 아니다. 시간에 걸쳐 무엇을 축적하고 있는지, 그 시간을 어떤 노력으로 채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5. 

그리고,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 것


시간을 소중하게, 신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곧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 P.168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자면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로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입니다. - P.169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겠다'는 건 굉장히 적극적인 자세다. 사실 이 부분에서 꽤 많이 놀랐다. 이 소설가는 영감이 떠오르기를 마냥 기다리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잘 활용할 생각을, 심지어 시간을 컨트롤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아직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는 부분이긴 하다. 시간을 두고 더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정리하다 보니, 꽤 길어졌지만, 언제고 다시 꺼내서 곱씹어 볼 만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시간을 들여 정리한 만큼 그 과정에서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도 많았다. 내재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최근 들어 영상이든 글이든 뭐가 되었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누군가는 수익을 바라고, 누군가는 인기를, 또 누군가는 남들이 하니까 덩달아서 뛰어들기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반짝하고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중고나라에 넘쳐나는 [유튜버 장비 세트 팝니다] 게시물이 대변하듯 그것을 '시간에 걸쳐 증명'해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인간은 시간에 종속되어 살아가고, 시간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하루키의 하루도 나의 하루도 똑같이 24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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