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관악산 시지프 Sep 01. 2022

"왜 이렇게 늦게 나와?" "옆에는 박*스 오백원인데"

약국과 진상손님

어느 서비스 직종이든 피할 수 없는 고민이겠지만 약국에도 종종 진상손님이 찾아온다. 흔히 보이는 가격 흥정부터 한 달에 서너 번쯤 들리는 반말과 욕설, 그리고 때때로 약이 늦게 나온다며 들고 있던 지팡이로 어깨를 툭툭 찌르는 손님까지, 몸이 아파서 찾아왔다지만 사실은 정신이 아픈 것이 아닌지 모르겠을 손님들이 간혹 약국을 찾는다. 이렇듯 약국은 아픈 사람들이 오는 공간이므로 다른 환경보다 인간 본성이 쉽게 드러나는 데다 인접한 병의원에서 긴 대기시간을 보내며 짜증 게이지가 축적될 대로 축적된 환자들이 약국에 와서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가운데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플라톤이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제스처는 이상(하늘)을 좇는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플라톤은 정의로운 '철인'이 국가를 이끄는 '철인정치'를 주장한 사상가로 유명한데 기원전에 살았던 사람이지만 2,4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위대한 철학자로 받아들여진다. 다음은 그가 철인정치를 주장한 저서 '국가'에 나오는 대목의 일부로 소크라테스와 제자가 대화하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면 자네는 우리의 나라를 위해 이런 종류의 사법제도와 더불어 우리가 앞서 말한 의료 제도를 입법화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그런 제도는 시민 가운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보살피되, 건강하지 못한 사람 가운데 육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은 죽게 내버려 두고,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어 고칠 수 없는 사람은 손수 죽일 것이네."
"환자 개개인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그러는 것이 최선책인 것 같아요."하고 그가 말했네.


이 글을 보면 플라톤도 약국이나 의원에서 일하면서 진상손님에게 데인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륜은 시대를 막론한 보편적 가치이므로 플라톤의 이러한 사상을 접하면 그의 위대한 명성에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약사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므로 행동과 말이 험한 환자가 지나가면 상처가 남는다. 잔뜩 독이 오른 환자가 찾아와 팔짱을 끼고 도끼눈을 하면 식은땀이 이마를 적시고 심장은 벌렁거리지만,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를 유지하고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노력해본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손님의 욕설을 녹취한 다음 죄다 고소해 버릴까도 생각했다. 물론 법률적인 해결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겠지만 약사 자신의 피로도도 고려해야 하므로 조금 더 근본적인 해결법을 고민하게 된다.



병원에서 일하는 약사님이 들려준 이야기인데 하루는 정기적으로 병원의 외래 약국 코너에서 약을 받아 가는 할아버지가 카운터에서 한껏 붉어진 얼굴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고 한다. 사연을 듣자 하니 약사가 조제된 약을 자기에게 던졌다는 것이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으므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고 약사가 정말 약을 던졌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정황상 손님이 많이 밀린 상황에서 바쁘게 손이 오가며 카운터에 약을 놓은 것을 환자가 자신에게 던졌다고 받아들인 것으로 보였다. 해당 환자는 전에도 여러 차례 민원실을 오간 경력이 있어 특별환자로 병원 시스템에 올라가 있는 상황이었다.



카운터에서 성을 낸 것으로 분이 풀리지 않은 환자가 민원실에 제기한 문제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나는 아파서 병원에 온 사람인데 약국에서 흰 가운을 입고 일억대의 연봉을 받는 약사들이 이렇게 자신을 무시해도 되나?”. 약국에서 일하던 약사들은 환자가 오해성이 짙은 민원을 제기한 것보다 그분의 상상 속에서만 받을 수 있었던 일억에 달하는 자신들의 연봉이 억울했지만,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약국 매뉴얼을 따라 체계적 대응을 시작했다. 결국 특별 상담실에서 꽤 직위가 높은 약사와의 면담 후 분이 풀린 환자는 다음에 또 약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첫 장면에 나오는 주인공 알렉스. 그렇게 안 보이지만 작중에서 10대 청소년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앤서니 버지스가 저술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다. 장면들이 꽤나 적나라해서 구설수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주인공 '알렉스'  작가와  아내를 무자비하게 폭행한다. 이후 알렉스는 연이은 범죄 행위로 국가에서 주도하는 화학치료의 실험 대상이 되는데  비인간적인 치료(?)  우연히 작가의 집을 다시 찾게 되었을  작가와 주인공이 하는 대사이다.


작가 : “Aren't you a victim of this horrible new technique?"
[자네가 바로  끔찍한  치료 기술의 희생자지?]

알렉스 : “Yes sir. That's exactly who I was I am sir. A victim sir."
[, 제가 바로  사람이었고,  사람이에요. 희생자죠.]


알렉스가 다소 뻔뻔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작중 피해자였던 작가가 가해자인 알렉스에게  또한 사회의 '피해자'라고 언급하는 장면은 알렉스가 과연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헷갈리게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개념일  주체로서 정의될  없다. 영원한 가해자도, 영원한 피해자도 없으며 가해자가 피해자가  수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지금은 약사로서 글을 쓰는 나도 어딘가에서는 진상손님이지는 않았을지 되짚어 보게 된다.



위 환자와 약사의 사례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방점을 두고 싶은 곳은 결과적으로 할아버지 환자가 자신이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해 화내기를 멈추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도 약국을 찾은 환자들을 특별히 대해보기로 했다. 같은 상처 연고를 주더라도 "연고만 잘 발라도 덧나지 않고 금방 아물어요."라는 말을 덧붙이거나 간단히 소화제를 찾는 환자에게도 속이 쓰린지, 꼬이는지, 부풀어 오르는지, 아니면 소화만 안되는지 한 번 더 물어보고 증상에 가장 적합할 것 같은 약을 쥐여줬다. 놀랍게도 진상손님이 줄었다.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손님에게야 손쓸 방법이 없지만, 처음에 껄렁대던 환자들도 자신의 건강에 유익한, 전에는 몰랐던 이야기를 듣자 단단히 옥죄던 팔짱을 풀고 전보다 나의 말에 귀 기울였다.



뭇 환자들에게 약사는 흰 가운을 입고 1억 연봉을 받는(안타깝게도 난 아니지만) 사람이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거만해지거나 겉치레식 위용을 부리려 하지 않고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보인다면 환자는 약사를 따르고 신뢰할 수 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손님에게 적용 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그리고 일단 환자에게 제공할 정보가 필요하므로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약사들 중 약을 엄청 잘 아는 편에는 속하지 못해 환자에게 줄 이야기 꾸러미가 동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현직에 있는 약사님들 중에는, 혹은 미래에 약사가 될 분들 중에는, 나보다 박학다식하고 똑똑한 분들이 많으므로 본인의 꾸러미에 미운 진상 환자를 달랠 떡이 충분하지 않을지 생각해 본다.



(다음글에서 계속)

이전 08화 '의'와 '약'의 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