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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악산 시지프 Sep 19. 2022

약사로 이야기하는 자살

사람들의 건강을 헤아려야  약사가 자살을 이렇게나 직접적으로 언급하다니, 이제 보니 이건 약팔이보다 더한 돌팔이가 아닌지 심스러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자살을 부추긴다는 풍조가 일반적이고, ‘자살자체가 금기시되는 단어이다 보니  단어를  밖에 꺼내는 것만으로 벌써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볼드모트 무찌른  그의 이름을 당당하게 부른 사람들이었듯이 세상의 끝에서 돌아서고자 한다면  끝이 어디쯤인지 분명하게 이야기할  있어야 한다.



오히려 삶의 테두리에 잔뜩 구부린 발가락들을 고정한 체 간신히 버티는 중인 사람들의 등을 떠미는 것은 자살에 대한 언급 자체를 부정하는 문화다. 자살을 고민 중인 사람이 부모님에게, 연인에게, 혹은 친한 친구에게 본인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으려다가도 혹시 상대방이 자신을 이상하게 보거나 불편한 관계가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으로 기회를 놓쳐버린다면 고민을 안은 사람들은 더 고립되고 외로워진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에서 SNS에 게시한 이미지


"It is OKAY to talk about #suicide"
"#자살에 대해 말해도 괜찮아"



그럼 다른 사람들은 자살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카뮈는 자살이야말로 "유일하게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라고 말했다. 이 프랑스인 작가가 자살을 순수한 철학적 결정체로 받아들이게 된 경위가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이 명제가 무작정 자살을 선택하는 행위를 철학적 카타르시스로 미화하진 않는다. 적어도 카뮈는 위 문장을 이야기 한 '시지프 신화'에서 살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몇백 페이지에 걸쳐 진지하게 서술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자살을 고민하던 내 친구 하나는 걱정 어린 연락을 하는 나에게 자살을 만류하는 건 네 미련에서 비롯된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일침을 놓은 적이 있다. 나는 고민 끝에 친구의 말을 수긍했다. 나는 친구에게 “난 아직 너를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떠난 후의 상실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네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친구의 건강에 도움이 될만한 약과 보조식품을 건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에 등장하는 우주선의 상상도


한국에서 인기가 좋은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출판하는 소설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다음은 그가 저술한 소설 '파피용'에 나오는 내용이다.


몇몇 사람들은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기로 마음먹고 우주선을 타고 장기간 여행하는 <마지막 희망>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다음은 우주선의 발사 준비를 거의 마쳤을 무렵 프로젝트가 위기를 마주하는 장면이다.


"··· 대통령은 직접 나서서 이 기사를 거론하며 관련 사안을 집중 부각시켰다. 그리고 <이기주의자들이 우리를 빼놓고 도망가는 모습을 좌시하지 말자>라는 내용을 주제로 캠페인을 시작했다.

(중략)

··· 1주일 후, 국회에서 <위급 상황 방치죄>라는 죄목을 붙여 <마지막 희망> 프로젝트에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일 목적으로 관련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쳤다."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과 만류하는 사람 양쪽 모두 서로를 이기적이라며 비판한다. 떠나려는 사람은 떠날 용기가 없는 것은 당신들인데 왜 고통스러운 세상에 자신을 묶어두냐며 상대를 이기적이라고 말하고, 말리는 사람은 자신을 두고 도망가려는 태도를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라며 비난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정부는 결국 탱크와 군대를 이끌고 우주선의 출발을 저지하기 위해 나선다. 만약 누군가를 이 세계에 붙잡아 두고 싶다면 그를 비난하거나 강제로 무력을 사용하는 건 효과가 없다. 그것보단 그들에게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거나, 여기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도와주겠다는 식의 설득을 하는 편이 낫다. 그런 면에서 파피용에 나오는 대통령과 국회의 대응은 어리석었다.



윤리적 규범이나 생명의 가치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잠시 미루어두고 숫자로만 자살을 평가한다면 어떨까. 보건 기관에서는 자살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보통 자살 '예방' 사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기서 예방의 경제적인 효과는 미래에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소요되는 병원비, 약품비를 미리 줄이는 것으로 평가하는데 자살은 발생 시 사람이 바로 죽으므로 이후에 소요되는 의료 비용이 '0'에 가깝다. 그렇다면 경제적 관점에서 자살은 병보단 치료에 가까운 것 아닐까? 그러나 의료 비용이 아닌 사회적 비용을 고려한다면 자살은 경제 활동이 가능한 인구가 사라지는 걸 뜻한다. 더군다나 청장년층의 높은 자살률은 국가 노동력의 손실을 야기하므로 사회적으로 큰 손해다. 하지만 이러한 발상은 애초에 '생명'의 가치를 배제하고 '돈'의 가치만을 고려하는 역겨운 오류를 범하고 있으므로 사회적 손실을 막기 위해 자살을 멈추라는 논리는 그것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마음의 병은 병이다. 질병 부위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신체에 생기는 다른 물리적인 질환보다 더 질이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위염 같은 내장기관에 생기는 질환과 비슷하고, 여느 병처럼 질병의 정도에 따른 통증을 보이는 데다, 약물 복용을 통해서 증상을 조절하거나 치료할 수도 있다. 다만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미친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종종 마음의 병을 숨겨야 할 것으로 잘못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정신질환은 발병 사실을 숨기다 치료 시기를 놓쳐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조기에 치료하면 질병의 진행을 완화할 수 있음에도 병을 숨기다 증상이 급속도로 악화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세상에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고 고민도 없으며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정신이 나간 사람 아닐까?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이제 막 진리를 깨우쳐 해탈의 경지에 이른 부처일 수도 있겠다. 말 못 할 마음의 병은 우리 주변에 정말 흔하게 존재한다. 동네 약국에 찾아오는 환자들 중에도 쉽게 말하지 못할 아픔과 고민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다음은 내가 아는 약사님 한 분이 겪은 일이다.



가끔 약국에 찾아오는 손님 하나가 두통과 속쓰림, 소화불량을 호소하면서 약사에게 일반약 추천을 요구했다. 그냥 증상에 맞는 약을 권하고 환자를 돌려보내는 쉬운 방법도 있었지만 약사님은 조심스럽게 환자에게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마음이 힘들지는 않은지 물어봤다. 약사의 관심에 환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고민과 우울감을 털어놓았고 약사님은 이에 따라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환자에게 정신과 진료를 권유했다. 약사님은 환자가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근처 의원을 몇 군데 추천했고 다행히 환자가 약사를 신뢰해 이 환자는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요즘은 주변에서 '생명지킴이 약국'을 찾아볼 수 있다. 약국에 찾아오는 사람 중에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조심스레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위 약국처럼 환자를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인계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와 햄릿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도 한 때 21세기 햄릿이 되어 살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꽤 깊게 한 경험이 있다. 인간의 평균수명만 놓고 볼 때 아직 20대 후반인 나는 삶의 끝보다 시작에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어떻게 끝까지 다 버텨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섣불리 죽음을 다짐하기엔 내게 예수 같은 부활 티켓이 없어서 나는 이 비가역적인 결정을 하기 전에 혼자 충분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첫 장에서 언급한 바 있는 디즈니 영화 '소울'에서 태어나기 전의 영혼들은 자신의 '불꽃'을 찾아야 지구행 티켓을 얻을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이 불꽃이 삶의 목적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영화는 반복해서 이 불꽃이 목적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불꽃은 살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는 불꽃을 피워 지구에 왔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의 풍파에 이 불꽃이 종종 꺼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만약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불꽃이 관찰되지 않는다면 당신이 해야 할 건 삶이나 목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불꽃이 다시 피어나도록 도움을 주는 일이다. 물론 내 미련과 연민을 거름으로 한 이 노력이 잘 먹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물어보는데, 당신의 불꽃은 안녕한가?



(다음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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