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동안 내가 주로 활동한 곳은 대학 캠퍼스였다. ‘대학’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단어들을 연상하는가? 자유, 낭만 이런 단어들이라면 아마 조금은 나이가 든 세대가 아닐지 모르겠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본다면 어떤 단어들이 나올지 궁금해진다.
나는 내 대학생활을 포함해서 대학 관련 기관에 25년 이상 머물며 대학생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그들의 변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는 ‘입시’라는 빡빡한 교육 환경이 있었지만, 대학 입학과 함께 주어지는 자유롭고 한가한 여유로움을 상상하며 청소년의 시기를 참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가 지나가고 2010년도가 지나가면서 대학 입학과 동시에 취업의 관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그들은 사회가 원하는 트랙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서 다시 달려야 했다. 학과 공부뿐 아니라 공모전, 봉사, 자격증, 어학, 인턴 등 수많은 스펙을 만들어야 했다. 미친 스케줄과 과제량으로 자신과 세계를 탐구하며 깊은 사고할 여유가 부족할 뿐더러 제 몸 챙기기도 어려웠다. 학생들은 조금씩 지쳐갔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동아리 활동보다 공부와 관련된 소규모의 모임들에 참여해가야 했고, 여러 공모전, 틈틈이 알바도 감당해가야 했다. 동아리실이 즐비해 활기찼던 공간도 어느 순간부터 새 학기임에도 한적해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나는 ‘왜 나보다도 젊은 친구들이 더 몸이 약하지? 요즘 젊은이들 체력은 좀 약한가봐’라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끄러운 생각이었다. 내가 보냈던 캠퍼스 시절과 지금 청춘들이 지내고 있는 캠퍼스 환경은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입시를 막 끝내고 입학했지만 불안정한 취업환경,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몸도 마음도 쉴 수 있는 시간이 그들에겐 없었다. 그러니 어찌 에너지가 남아나겠는가. 졸업하고 취업을 설상 한다 해도 바로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적은 급여를 받고, 인턴이라는 과정을 보내야 했다.
지금 나는 몸담았던 기관을 나온 상태이지만, 코로나 이후 지금 대학 청춘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최근 신간인 『요즘 애들』이라는 책을 만났다. 앞뒷면이 밝은 빨간 톤으로 무언가 강렬한 메시지를 줄 것만 같았다. 밀레니얼에 속한 저자는 이 세대의 특징을 ‘번아웃’으로 정의한다. 그들은 평생 트랙 위를 쉼 없이 달렸지만 늘 이기적이고 게으르고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고 그는 말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나이대도 이제 폭넓다. 저자는 자신은 나이 든 밀레이얼 세대에 속한다면서 자신의 세대가 왜 번아웃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그들이 속한 사회 구조와 환경을 낱낱이 분석한다. 이번 생은 망했다면서도 번아웃 직전까지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체제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언급한다. 그 외에도 온라인 세상 속에서의 디지털 피로와 대학에 꼭 가야 했는지, 일터는 왜 시궁창이 되었는지, 밀레니얼 엄마들의 번아웃 등의 이슈를 다룬다. 그들을 다시 한번 이해할 수 있었고, 가슴 아프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시간이었다.
특히 눈에 띈 부분은 이 책 초반부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아닌 그들의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모의 특징과 그들의 자녀 양육방식을 언급한다. 그들은 경제 안정기에 성장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베이비 세대도 지금의 세대가 겪는 문제와는 다르지만 여러 압박들로 얼룩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당시에 불안하고 과로했으며 번아웃에 빠졌다. 그들도 그 당시에는 ‘요즘 애들’이었던 것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사회적 불안에 일일이 대처할 수 없었지만 그나마 자신이 통제를 시도할 수 있는 ‘자녀’라는 존재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그 자녀들이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이다.
아마 집에 한두 명씩은 장성한 밀레니얼 세대 자녀들이 함께 기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다면, 더 이상 그들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게으르다고, 온통 자기밖에 모른다고,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X세대에 속하지만 우리 모두 한때 ‘요즘 애들’이었다. 자신의 세대 프레임으로 젊은 세대들을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것이다. 더 큰 눈과 넓은 마음으로 사회 전체를 바라보며 소통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원주신문>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