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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마음 Sep 29. 2023

게걸스럽게 단어를 모으자

나만의 정의가 가득한 사전 하나씩 가슴에 품고



수년 전에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번역에 따라 글이 전하는 뉘앙스나 메시지가 어떻게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어떻게 또 다른 창작이 될 수 있는지 알았다. 얼마나 많은 단어를 알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문맥에 맞게 최적의 단어를 제 위치에 놓을 수 있는지는 번역자에게 중요하다. 단어를 많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자, 문맥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이가 번역도 잘할 것이다. 




     

게걸스럽게 단어를 모으자  

   

나는 강박적으로 단어를 모으고 모은다. 단어가 모자라서 할 말을 다 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아무튼 사전> 


    

우리 모두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적절한 어휘가 생각나지 않아서 표현하지 못했던 경험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이는 글 쓰는 이에 게뿐 아니라 번역가에게도 해당한다. 번역가는 여러 개의 사전을 끼고 사는 사람이다. 그는 하나의 단어를 옮기기 위해서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아 온,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여러 사전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갖은 노력 끝에 가장 알맞은 단어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번역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일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라고. 글 쓰는 이에게나 번역자에게나 아니, 무엇인가 말로 표현하고 하는 이들에게도 쓸 수 있는 단어는 많을수록 좋다. <아무튼 사전>의 저자는 단어를 ‘강박적으로’, ‘게걸스럽게’ 모아야 한다고 표현한다. ‘게걸스럽게’라는 단어를 가지고 오려고도 그는 얼마나 고민했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든다. ‘게걸스럽게’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 ‘몹시 먹고 싶거나 하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힌 듯하다’가 나온다. ‘염치없이 마구 먹는 모양’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이는 단어는 아니다. 체면 따위는 집어치울 만큼 단어에 대한 애정을 넘어선 집착, 욕망을 보여준다.      


글을 조금이라도 꾸준히 써 보려는 나는 사실 단어를 강박적으로도 게걸스럽게도 모으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계속 글을 쓰려면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책 한 권을 출간했다. 한 권의 책을 출간하고 나면 기쁘기도 하고 속 시원하기도 하지만, 더 풍성하게 표현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늘 남는다. 그러나 출간한 책은 딱 그때만큼의 내 어휘의 수준, 생각의 수준을 말해줄 뿐이다. 더하거나 더할 수가 없다. 아쉬움에 미련을 두기보다 또 다음의 책을 위해서 나는 열심히 읽으며 새로운 단어를 모아갈 뿐이다. 단어를 모은다는 것은 결국 생각을 모으고 세계를 확장해 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단어를 모으는 방법은 책을 '강박적으로', '게걸스럽게' 읽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계다. 그렇게 탐험하듯 한 권의 책을 정복하며 새로운 세계를 탐험한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어야 한다. 늘 익숙한 책만 읽는다면 같은 세계에서 맴돌게 된다. 불편하더라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새로운 장르의 책을 읽어가야 한다.      










단어의 힘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려는 욕구는 재화를 축적하려는 부르주아적 욕구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동전을 모으듯 단어를 모은다. 힘을 갖기 위해서. 동전과 단어의 차이점은 단어는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사전>     


동전과 단어의 공통점이 있다. '만들다'라는 의미가 있는 영어 동사 'mint'가 목적어로 취할 수 있는 대표적인 단어 두 개가 바로 ‘동전’과 ‘단어’이다. 'mint a word'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또 'coin'은 동전을 뜻하지만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다'라는 뜻으로도 자주 쓰인다.      


동전 안에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다’라는 뜻이 있다는 것"이 신선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을 가진 자가 힘이 있다고 하는데, 단어를 가진 자의 힘도 만만치 않음을 시사하는 것일까? 《아메리칸 노트》의 너새니얼 호손은 "사전에 있는 단어는 그저 무구하고 무력하지만, 단어를 조합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의 손에 그것이 들어갔을 때는 얼마나 강력한 선과 악의 도구가 되는지"에 대해 주의를 준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는 신어를 담당하는 사전 편찬자가 등장한다. 그는 '진리성'이라는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주인공 위스틴 스미스의 직장동료이다. 그가 하는 일은 하나의 단어만 남기고 비슷한 단어들은 모두 없애는 것. 최대한 의미가 겹치는 구어들을 날마다 수십, 수백 개씩 삭제한다. 2050년이 되면 구어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단어의 수를 대폭 줄이는 까닭은 사고의 폭을 제한하여 전체주의적 통제를 더욱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렸을 때부터 오로지 신어만 사용한 사람은 평등이나 자유, 정의, 민주주의 등 사라진 단어를 알 수 없기에 국가에 대한 적대적인 생각이 들더라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모호한 형태로만 남게 된다. 결국 반항적인 생각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도 없게 된다.       


이렇게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무심결에 사용하고 있는 단어에는 이런 힘이 있다. 단어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있던 세상을 죽이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이 힘을 알고 있다면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지도 더 쉽게 분별할 수 있다. 분별할 수 있다면 그것을 용기 있게 거절하고 새로운 단어로 바꾸는 일 또한 할 수 있게 된다. 세상은 그 힘을 알고 있는 자에 의해서 움직일 것이라는 것은 소설은 보여준다.     


《기분의 디자인》의 저자 아키타미치오는 70세 디자이너 할아버지다. 그의 트위터 팔로워 수는 10만이 넘는다. 그저 자신만의 감각으로 길어 올린 작은 문장들을 꾸준히 기록했다. 처음에는 몇백 명 되지 않았는데 그의 문장을 발견한 사람 한두 명이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10만 팔로워가 넘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팔로잉은 0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sns를 하면서 팔로워를 늘리기 위해 맞팔이나 서로 이웃을 품앗이하는 행태를 그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글은 화려하지도 분량이 많지도 않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다양한 것을 자주 보세요. 

그리고 끊임없이 잊어버리세요. 

그 후에도 남는 것이 당신의 지식입니다.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면 주위에 기대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단순하지만 본질을 담은 짧은 글귀가 많은 이들을 팔로워하게 만든 것이다. 글의 힘은 이처럼 대단하다.       






사라지고 태어나고     



어떤 단어를 사랑한다면 사용하라, 그러면 진짜가 된다. 사전에 있고 없고는 임의적인 구분일 뿐이다. 사전에 있다고 해서 더 진짜가 되는 건 아니다. 어떤 단어를 사랑하면 그 단어는 진짜가 된다. _옥스퍼드 사전 편찬자 에린 매킨.      


결국 단어의 생존 여부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단어를 사용하는 데에 있다. 유행어의 유통기한이 있듯이 단어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같은 단어이지만 그 뜻이 변하기도 하다. 그렇게 단어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단어 또한 그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어 많은 이들에 삶에 거주하게 된다.     


이 말은 오용되고 변질된 단어 또한 역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억울하고 분하거나 또는 의로운 사람들에 의해서 새롭게 불려지고 ‘사라지지 않도록"’ 사용된다면 이 단어는 새로운 힘을 얻어 그 의미를 회복할 것이다. 그렇다. 사랑하면 자주 불러주고 자주 사용하게 된다. 어떤 단어를 사랑할 때에만 그 단어가 진짜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단어, 언어를 완벽하게 사전 안에 가두려고 했던 사람들, 그것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상상의 공간에서나마 시도했던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전은 또한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편견의 산물일 수밖에 없고, 단어는 사전 안에 통제되어 있지 않다. 태어나고 잊히고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인간은 늘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결핍을 갖고 아무도 가닿지 않는 땅을 탐험하려고 했다. 독서도 결핍을 느끼는 자만이 한다. 더 많은 땅에 가닿으려고 읽는 사람은 더 읽는다. 결핍을 느끼지 못하고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은 읽지 않는다. 이 맛을 모르기 때문에 읽기를 아예 포기한다. 독서의 빈부격차가 큰 이유이다.   

  

읽는 자들은 계속 읽으며 단어를 모으고, 새로운 세상을 탐험해 간다. 단어 때문에 울고, 아파하다가도 가슴 뛰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리고 단어 사이사이에서 현재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그 자그마한 단어 안에 큰 세상이 담겨 있기에.      


혹 새롭게 찾은 단어가 있는가? 나의 상태를 우리의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단어를 발견했는가? 마땅히 불러주어야 함에도 부끄러워하는 단어가 있지는 않은가? 사람들의 입에서 오용되어 새롭게 의미를 회복해야 할 단어가 있지는 않은가?      


두려움 없이 목소리를 발하고, 나와 세상을 이끌어가기 위해 게걸스럽게 단어를 모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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