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토론이라는 '폭약'이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사유의 '방조제'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다른 사유 방식이 유입되어
변화의 물꼬를 트게 되리라는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가파를수록 우리네 삶도 더욱 숨가프고 빠르고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슬로우 라이프를 추구하지만, 새롭게 쏟아지는 기술들을 습득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쳐질 것 같은 불안감이 갑자기 솟아 오르기도 합니다. 변화의 압박은 우리에게 생각할 틈 조차 주지 못한 채 주어지는 것을 그저 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이런 변화의 대열에 합류할 것인지? 좀 뒤쳐지더라도 시대적 분위기와는 다른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 것인지? 그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은 각자의 몫이 될 것입니다. 이런 선택은 둘째치고라도 인간의 진보는 변화에 적응해 온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거부하는 이유가 '삶의 방식'이 아닌 혹은 다른 데에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의 저자 이권우는 변화를 거부하고 그것에 뒤쳐지는 이유 중 하나를 '과거에 안주하는 경향을 보이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라고 꼬집습니다. 우리는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놓은 정답과 같은 것을 학교라는 곳에서 '이해와 암기'라는 형식으로 답습해 온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날마다 새로운 지식들이 생성되고,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는 지금 시대에 절대 적응할 수 없습니다.
저자는 변화를 위한 중요한 방법 한가지로 '대화와 토론'을 강조합니다. 그는 "대화와 토론이라는 폭약이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사유의 방조제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다른 사유 방식이 유입"되어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 폭약은 우리 안에 안주하려는 사고방식에 조금이나마 틈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대화와 토론이 무엇이길래 '폭약'이라는 표현까지 썼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대화와 토론이라는 경험을 떠올려보고자 하지만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정답을 찾기 위해서 헤맸고, 답이 틀리면 어쩌지라는 눈치 문화 속에서 섣부르게 질문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조금씩 학교 현장에서 대화와 토론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로운 대화와 토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풍경은 아직은 미흡해 보입니다.
오랜시간 책을 중심에 두고 질문과 토론, 그리고 삶을 나누면서 많은 이들의 변화를 지켜보았습니다. 저 또한 단순히 개인적으로 책을 읽어오기만 했다면 저의 편협한 시각에 갇혀서 매우 건조하고 딱딱한 사람이 되었을 거예요. 혼자 읽으면 더 많이 읽고 더 많은 지식은 얻을 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다양한 생각의 확장을 경험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100명이 토론하면 100권의 책을 읽은 효과가 난다는 말 처럼요.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통해서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고, 다른 생각의 지점을 발견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숨겨진 고집스런 성향과 편협한 사고, 안주했던 마음 등을 발견하고 새로운 나로 빚어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도 생겨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의 북클럽이 주는 힘은 사회로 퍼져나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작은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
25여년의 책모임 경험과 지식을 담은 <북클럽 사용설명서>가 곧 출간됩니다. (202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