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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마음 Dec 23. 2022

나만의 숨을 쉬어봅니다.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가쁘게 살아 왔다. 남자들도 할 말이 많겠지만, 여자의 삶이 이렇게 버겁고 무겁다는 것을 왜 내 어머니는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던가. 60대 중반을 살고 계신 한 지인은 60이 진짜 좋다고 말씀하신다. 20대는 나만의 열정을 찾고 그 열정에 맞는 준비를 하느라, 30대는 결혼 이후 양육이라는 생애 첫 경험을 하느라, 40대는 직책이 주는 무거운 책임감을 지고 가느라 고되고 힘들었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쫓기듯이 살았는지 모르겠다.


마흔 후반을 지나고 있는 지금에야 비로소 나만의 숨을 조금이나마 내 쉬고 있다.


"휴우~~!!" '호흡 하나에 숨 한 번'


이것이 왜 이리 어려웠을까. 어른들은 말한다. 불안할 때는 복식호흡을 하라고. 배 속 깊은 곳으로부터 끌어올린 긴 숨은 경직되어 있던 혈관 구석구석을 마사지하면서 막혀 있던 공기를 순환시키고 온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숨이 붙어 있지만,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했던 시간들. 육아든 일이든 잘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적인 신념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감옥의 문을 안에서 내가 걸어잠근 것이다.


아이는 나에게 자유하라고, 놀아도 된다고, 그저 그런 엄마도 괜찮다고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법을 매시간 알려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오히려 아이에게 기준과 원칙을 세워 그에 맞는 사람이 되도록 닥달했던 것 같다. 나의 불안과 두려움은 기준과 원칙으로 아이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을 숨막히게 했을 것이다. 일터에서도 돌아보니 최선과 노력을 빙자한 나를 향한 압박감이 후배들을 여유롭게 품어주지 못하는 상사가 아니었나 싶다. 스스로가 자유하지 못하고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니 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도 그 긴장과 불안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숨'은 호흡에 의해서 발생하는 공기의 운동이라고 한다. 동시에 인간의 존재를 지지하는 생명력으로 보기도 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채소 따위의 생생하고 빳빳한 기운을 뜻하기도 한다. 이 말을 뒤집어 본다면, 숨이 막히거나 제대로 쉬지 못하면 존재의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다. 숨을 쉬지 못하면 생생하고 빳빳했던 기운이 채소가 흐물거리듯 맥가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정신 없이 살았다면, 멈추는 법을 잃어버렸다면, 공기 빠진 풍선처럼 고무껍질만 남은 듯 하다면, 지금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숨 한번 쉬고 가자! 뱃속 아래 깊은 곳으로부터 숨을 모아 끌어올려서 깊은 숨을 천천히 내쉬어보는 거다. "휴우~~!!"






쉼표에서 설레임을 되찾다 


많은 광고는 많이 가진 자만이 성공하고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주입한다. 저 차를 소유하지 않으면, 저 신상 신발을 신지 않으면, 저 새 아파트를 소유하지 않으면 나는 불행한 것이다. 중간 중간 끼어드는 광고는 월천을 버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며, 내가 그 비법을 단숨에 알려주겠다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콘텐츠 사이사이에서 전해오는 수많은 목소리는 우리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하고, 불안감만 가득 안겨다 준다.


퇴직 후 나는 조직이라는 곳을 떠나 자유한 몸이 되었다. 묵직하게 주어졌던 여러 책임감을 내려 놓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아쉬움이라는 것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젋을 때 내가 사랑했던 곳이고, 내 애정을 바쳤던 곳이었다. 지친 것도 아니고 상처라는 것도 이제는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람이 오가는 곳이니 어찌 상처 하나 없으랴.


22년 함께 했던 곳은 내 시간과 젊음의 열정을 바치는 것이 아깝지 않은 곳이었다. 누군가의 말대로 그곳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일과 삶이 하나였다. 한 선배가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일하는 것이 나에게 놀이이자 휴식이예요"라고 창창한 20대에 선배에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열정은 변하더라. 일과 삶이 하나였던 내게 어느 순간부터 그 일이 나에게 무거움을 다가오기 시작했다. 퇴직 몇 년 전부터는 "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회의감이 불쑥 불쑥 나를 들쑤시곤 했다. 그럴 때면 정신을 때리며 다시 현실에 집중하곤 했다. 그러나 22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도 상황도 바뀌어가니 나의 열정이 바뀌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리라.


퇴직 후 나는 나에게 1년의 안식년을 선포했다. 자그만한 퇴직금으로만 살아도 좋으니 난 나에게 시간을 선물하기로 했다.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모든 시간은 전적으로 내 소관 아래 있었다. 그동안 나를 위해 한 번도 투자하지 않았던 자기 계발비에 몇 백을 쓰기도 했다. 미치도록 책을 읽었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매일 블로그에 기록을 남겼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새 지나갔다. 20대에 '일이 놀이'라고 했던 그 삶이 퇴직 후 내겐 독서와 글쓰기로 옮겨진 것이다. 이건 퇴직 전부터 꿈꿨던 삶이다. 22년을 그마나 버틸 수 있었던 것이 이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책을 읽으면 잠이 온다고 하고, 글쓰기는 어렵다고 했지만, 체력만 바쳐 준다면 나에겐 온 종일 할 수 있는 놀이감이었다. 속도를 늦추고 삶의 쉼표를 찍으니 내 안에 숨 죽여있던 열정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가? 잘하는 일을 해야 하는가?"는 아이나 어른 모두에게 주어지는 단골 질문이다. 돈 버는 법에 대한 강의를 하는 유명한 억대 사업가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돈 되는 일을 해야죠." 그리고 나서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아, 그렇구나.'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나는 도무지 동의가 되지 않는다. 돈이 전부인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이 없으면 절대 살아갈 수 없다. 돈은 나와 가족, 세상을 섬기기 위한 좋은 도구다. 우리 삶에 어떤 것도 나쁜 것은 없다. 그러나 이 땅에 태어난 자신의 사명을 무시한 채 수단이 되어야 할 돈이 목적이라면 그게 정말 인간의 삶이란 말인가? 


결과 못지 않게 과정도 중요하다. 나도 퇴직 후 돈 버는 일을 해 볼까 잠깐 생각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는 그렇게 돈이 될 거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이것은 나만의 취미로 두고, 나의 생계 수단은 다른 것으로 대체해 볼까도 잠시 고민했다. 요즘 트렌디한 디지털, IT, 투자 등의 공부 말이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이런 것들을 마음만 먹으면 나는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공부를 또 다른 역량을 쌓기 위해서는 할 수 있겠지만, 열정이 없는데 그것을 하자니 '어떻게 하면 되도록 그 시간을 피할까?' 궁리하는 나를 발견했다. 시작하는 것조차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되도록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만 머릿 속에 맴돌고 있었다. 그러기를 몇 개월. 


그리고 깨달았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 그것은 나에게 일이 아니었다. 그냥 내 존재였다. 내가 태어난 이유가 거기에 담겨 있었다. 존재와 일이 하나가 되니 몰입은 저절로 되었다. 똑같은 시간이라도 더욱 압축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하루가 금방 흘렀다. 오늘도 새벽 5시! 독서방에서 사람들과 1~2시간 독서를 했다. 독서를 한 후, 블로그와 인스타를 열어 오전에 인풋한 것들을 기록해 둔다. 그러다 보면,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난다. 몇몇 처리해야 할 은행 업무가 급하게 생겨, 외출을 했다. 갔다 오니 점심이다. 독감으로 집에 있는 아들 점심을 챙겨 주고, 내년에 해야 할 몇 가지 일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상상하며 기획해 보는 시간을 보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들이다. 그저 내가 좋아하고 가슴 뛰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해 왔던 일들도 있고 새롭게 시작하고픈 일도 있다. 몇 시간을 이런 저런 생각과 일처리로 집중하다 보니, 몸이 피곤한데도 피곤한 줄 모른다. 중간 중간 생각한다. '나 이렇게 즐거워도 되는건가?', '나 이렇게 매 순간 설레여도 되는건가?' 하고 말이다. 내가 만약 돈이 되는 일만을 선택했던 이렇게 몰입할 수 있었을까? 그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돈을 안 벌어봐서 그렇다라고.' 


지금 이 글을 순간도, 내가 모집한 공저클래스에 신청한 이들과 함께 글을 쓰고 있다. 한 분이 막상 글을 쓰려고 공저 클래스에 지원을 했지만, 자신을 노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워하셨다. 그래서 글방을 열기 20여분 정도 일찍 들어오시라고 해 놓고, 경청하며 격려를 해 드렸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알고, 힘껏 격려해 드릴 수 있었다. 이렇게 글로 인해 고민하고 함께 대화나눌 수 있는 것 또한 나에게 설레이는 순간이다. 


사실 어제 쓴 글이 저장 버튼을 제대로 안 눌러서 다 날아가 버렸다. 근데 어제 무엇을 썼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보통 어렴풋이라도 기억이 나는데 어쩐 일인지 감감 무소식이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정신을 부여잡고, 손이 가는대로 한 단어씩 끄적거려 본다. 한단어가 또 다른 단어를 불러온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 문장 속에 담긴 생각이 이어져 또 다른 문장으로 이어진다. 어제 글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어제와 다른 이야기를 적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모든 육체와 정신 노동을 멈추고 곰곰히 내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본다. 지친 존재를 보듬고 문장을 만들어가는 이 순간이 나에게 다시 깊은 숨을 쉬는 시간이며 깊은 곳 설렘임을 회복하는 시간이다. 





책을 읽고 쓰고 만드는 사람 

독서와 글쓰기에 진심인 독서운동가 


말과 글로 나를 치유하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책마음 변은혜 작가 


책마음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lcbKWmv74-/?igshid=YmMyMTA2M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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