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내 삶은 나다움을 찾기 위한 투쟁이었다. 스무 살 청춘은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던 어린 시절의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이었다. 결혼 후 엄마와 여자 사이에서의 정체성 혼란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의문과 물음뿐이었다. 일터에서 연차가 올라가면서 함께 했던 여성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숫자적으로 열세였던 여성 리더십이 설자리가 뚜렷하지 않은 문화 속에서 여성과 인간 사이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온실과 같은 가정에서 벗어난 앳된 청춘의 시기부터 나를 찾는 긴 탐험이 시작된 것이다. 쓰리고 지난한 시간들이 흘러 마흔을 넘어선 어느 날, 난 드디어 묘한 해방감 같은 것을 경험했다. 우울과 외로움, 냉소로 가득했던 마음은 행복과 긍정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동안의 치열한 존재의 씨름이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부분들이 이런 요소들을 만들었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김무영 작가는 자기다움은 만드는 것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 나는 부모가 정해주거나 친구가 정해준, 심지어 동생이 정해 준 대로 살았다. 연년생이었던 둘째 동생은 늘 같이 다니면 친구 같았다. 상점에서 물건 하나를 고를 때도 나는 동생에게 넘겼다. 무언가를 선택하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저 다른 이들 속에 섞여서 내가 전혀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기를, 내 존재가 들키지 않기를 바랬다. 무엇을 말하든 "다 좋아."가 내 답변이었다. 그렇게 나는 무리 가운데서도 전혀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임을 스스로 선택했다. 아! 이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도 있겠다. 존재가 너무 강하기에 주체적으로 그런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낮은 자존감에서 나오는 선택은 단순히 방어기제일 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세상과 연결되기를 나에게 있는 그 무엇이든 나누며 살기를 원한다.
갑자기 주어진 청춘에게 주어진 '자유'는 내 존재의 빈약함을 과감 없이 드러냈다. 아닌 척, 괜찮은 척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우정, 연애, 진로, 관계, 일, 결혼, 양육 등 누구나 겪는 흐르는 인생의 시간 속에서 내 미약한 존재는 너무 쉽게 상처받고 쓰러졌다. 그저 누군가의 선택을 순응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더 이상 내 존재가 허락하지 않았다.
타인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일상 속에 나만의 작은 반란들이 일어나기 시작되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 중반, 모두가 졸업과 취업 준비로 바쁠 때 나는 부모님께 허락도 받지 않고 휴학을 해 버렸다. 학교를 다니는 중간이라 대학 등록비 삼분의 일을 손해 보았다. 부모님은 밥을 먹다가 밥그릇을 던질 뻔했지만 (기억에 던졌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분위기만 조성되었던 것인지 이제는 헷갈린다.) 나는 그 시간을 내가 하고 싶었던 것으로 마음껏 채워갔다. 졸업 후 진로 또한 부모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결정했고,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둘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한 선택을 해 갈 때, 나에 대한 기대와 간섭이 줄어들었다. 타인에서 벗어난 진짜 나만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선택이라는 것은 책임 또한 내가 지겠다는 행위이기에 매우 두려운 일일 수 있지만, 이 또한 한번 맛을 보면 크고 작은 희열을 맛보게 된다. 때론 잘못된 선택으로 후회가 될 때도 있지만 그 과정 또한 나의 스토리가 되리라.
작고 약하지만 그렇게 쌓아 올린 나의 선택은 이제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나를 만들어주었다. 오늘은 2022년 12월 31일이다. 20여 년 이상 머물던 일터를 떠난 지 이제 2년이 되었다. 조직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떠나니 하나하나 모두가 내 선택의 몫이었다. 이 선택이 버거울 때도 있었다. 너무 많은 선택지 속에서 헤매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고, 나를 잃어버릴 뻔도 했다. 그렇지만 꿋꿋하게 선택해 간 나의 길들을 돌아보니, 조금씩 그 속에서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 실천 학자로도 유명한 에리히 프롬은 우리에게 '살아있음의 철학'을 설파한다. 보기 좋은 수많은 음식이 펼쳐져 있는 SNS의 바다에서도 욕심과 조급함을 내려놓고 나의 일을 찾아 꿋꿋하게 선택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트렌드를 쫓지 못할 것은 불안감, 나만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 등은 여전히 매일이 고민이다. 그러나 2022년도를 마무리하는 지금을 돌아본다. 어떤 결과나 성취물이 아니라 하루를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있다면, 20대 청춘 못지않은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다면 나 좀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내년에도 나다운 선택을 이어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