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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마음 Sep 04. 2023

상처가 있어도 괜찮아

당신의 마음을 다려드립니다




상처도 빛나게 하는


요즘 '무빙'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다. 초능력이 존재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그들의 자녀들도 초능력을 가진 채로 태어나 세상을 활보한다. 초능력, 그리고 주인공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설정은 요즘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많이 사용하는 소재다. 처음에는 이런 종류의 드라마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너무 현실적이지 못하고 허황되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도 빠져들고 있었다.      


왜 그럴까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본다. 현실의 삶이 팍팍하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존재한다.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이 생에서는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이야기는 이 모든 것에 답을 준다. 현실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삶을 그리고, 내가 꿈꾸는 삶에 대한 상상을 무궁무진하게 할 수 있다.      







고통은 예고 없이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라는 소설에는 아름다운 능력이 존재하는 마을에 사는 두 부부가 나온다. 그러나 부부는 소설 초반에 잠깐 등장하고 빠르게 분위기가 바뀐다. 그들의 딸에 대한 비밀이 있는데, 아직 비밀을 모르는 딸은 우연히 부모의 대화를 엿듣고, 그날 밤 그 비밀로 인해 다음 날 아침, 부모를 포함한 함께 했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가진 능력은 치유하는 능력과 꿈꾸는 것을 실현하는 능력 두 가지였다. 그러나 그 능력이 있는 것만 알게 되었을 뿐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알기도 전에 부모를 잃게 된다. 사랑하는 이들을 자신의 비밀 능력으로 잃게 된 소녀에게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맞닥트린 황당함, 다가오는 상실감, 무기력, 절망, 회피, 고통....      


호기심 많고 생기발랄했던 그녀는 모든 빛을 잃고 만다.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백만 번 태어남을 반복하지만 웃음을 잃은 채 무기력하게 그저 생존할 뿐이다. 수없는 삶을 살아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모든 것을 한순간에 앗아간 기억은 소녀를 울지도 웃지도 않은 무표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빨갛게 생기 가득한 양 볼에 늘 사랑스러운 미소를 띠던 소녀는 수도 없이 다시 태어나고 세기와 세계를 넘나들며 웃음을 잃어갔다. 그래도 괜찮았다. 가족을 찾을 수만 있다면. 소녀는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 셀 수도 없이 많은 일을 하며 세상을 헤맸다."     




당신의 마음을 다려 드립니다     


그러다가 메리골드라는 동네가 마음에 들어 그곳에 자리를 잡는다. 메리골드는 엄마가 좋아하는 꽃의 이름. 아마 그래서 더 친근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동네의 가장 높은 집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마음 세탁소>를 오픈한다.     


소녀가 가지고 있던 두 능력을 발휘하려면 슬픔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을 온전히 행하고 나서 두 번째 능력인 꿈을 실현시키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은 곳이 메리골드이다.       

   

[마음 세탁소]

"모든 얼룩 지워 드립니다. 명품 드라이클리닝"          


“그런데 두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먼저 슬픔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능력을 제대로 익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일을 하고 나서 꿈을 실현시키는 능력을 사용해야 해요. 아마 어려움을 돕는 보조 능력이 아닐까요? 마을에서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몇 명 없는데, 특별하고 소중한 능력이네요. 선택받았어요.”   


       





마음도 닿아 얼룩질 수 있다          


“그거 알아? 마음도 물건처럼 많이 쓰면 닳아 없어지는 거 같아. 요즘은 닳다 못해 형체가 사라진 기분이야.”     

그렇다. 마음도 닳아 없어질 수 있다. 왜 아무도 마음도 닳아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젊을 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일까. 그저 사회와 조직의 눈치를 보며 싸구려 물건 대하듯 내 마음을 너무 하찮게 여기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이리저리 시달린 마음은 결국 힘을 잃고 나에 대한 감각 또한 희미하게 한다.     


“만약에 말이야, 마음이 아프면 꺼내서 얼룩을 지우고 햇볕에 널어 잘 말리면 돼. 다음 날이면 깨끗하게 마른 마음으로 편안해질 거야.”     


그러나 그 마음도 잠시 꺼내어 얼룩의 존재를 알아주고 괜찮은지 물어봐 주고 따뜻한 공간에서 이해와 공감의 빛을 비추어주면 조금은 괜찮아지지 않을까. 소설 속 지은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스스로 내가 나에게 먼저 그런 존재가 되어 주면 어떨까.      


늘 내 마음의 상태를 물어봐 주는 존재가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갓난아이처럼 24시간 붙어 내 마음을 살펴 주는 부모는 이제 없다. 그런데 글쓰기가 그런 일이 아닐까 한다. 잠시 멈춰 빈 노트를 대면하고 있자면 나에게 그런 질문을 건넨다. “오늘 하루 잘 살았니?”, “이제 괜찮아진 거니?”, “네 마음은 괜찮니?”, “이제 보이지 않는 네 마음에 집중할 시간이야.”, “네 마음을 적어봐.”라고 말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마음이라는 게 보이지도 않고 형태도 없는 것이 참 힘이 세다. 마음으로부터 시작되고, 마음으로부터 해결되고, 마음으로부터 끝이 난다. 마음으로부터 꽃이 피기도 하고, 마음으로부터 불행이 지속되기도 한다. 마음은 어쩌면 모든 끝과 시작의 열쇠인 것일까."     


세탁소를 오픈하고 소녀는 자신의 이름을 지은이라고 짓는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어준다는 뜻에서. 그동안은 소녀는 이름도 없이 살았던 것일까. 이름은 자신의 정체성이 담겨 있기도 한데 말이다.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소녀는 이름 또한 크게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세탁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에 묻은 얼룩을 지워주는 일을 한다. 얼룩을 없애기를 원하는 이도 있었지만, 조금만 다려 달라는 이도 있었다. 왜냐하면 얼룩 안에 담긴 상처와 아픔, 고통도 나름 삶의 의미가 있고, 내가 내가 되는 일에 기여를 했음을 희로애락을 충분히 겪은 한 중년의 여인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도 않고 형태도 없는데 힘은 참 세다. 그래서 저자는 등장인물의 고백 속에 "마음은 어쩌면 모든 끝과 시작의 열쇠인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져 독자로 하여금 마음에 주목하게 한다. 상처든 기쁨이든 우리는 모든 시선을 외적인 것에 둔다. 내 마음을 살필 겨를이 별로 없다. 가장 쉬운 방법은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환경을 탓하는 일이다.      


마음 세탁소를 찾아와 흰 옷을 입고, 지우고 싶은 기억을 생각하면 입고 있는 흰 옷에 얼룩이  생긴다. 그리고 세탁소에 넣으면 그 기억은 말끔히 사라진다. 소설은 이렇게 이야기를 설정하지만, 사실은 이 또한 허상일 뿐이며, 모든 얼룩은 더 깊은 상처로 이어질 수도, 흉터는 조금 남지만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오히려 고통을 아는 더 성숙한 인격으로 바꾸는 것은 어쩌면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상처가 독이 되기도 하고 꽃이 되기도 하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을 말이다.      


누군가가 마음의 중요성을 더 일찍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든다. 너무나 오랜 시간을 보이지 않는 마음이 아닌 보이는 타인의 시선과 욕망에 따라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있음을 다시 인지해 본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이끌고 가는 것이다.     


지은이는 다른 이는 치유해 주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한다. 다른 이들에게는 웃음을 찾아주지만,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은이는 웃음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서서히 치유와 관심, 서로가 주고받는 온기 속에서 지은이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더 이상 과거의 상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진정한 행복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상처가 있어도 괜찮아     


“그 상처들도 다 내 삶이었어요. 상처 없으면 나도 없더라고요.”     


“지금 입은 얼룩덜룩한 옷을 입어도 이미 존재만으로도 별처럼 빛나고 있음을”     


삶에 대한 깊은 혜안이 돋보이는 문장이다. 우리는 슬픔, 고통, 절망, 외로움 등의 감정은 나쁜 것이며 지워야 할 부정적인 감정임을 배우며 살아왔다. 그래서 이런 감정은 함부로 내 감정을 내 보일 수 없다. 지우고 지우다 보니 그 감정이 존재했는지 조차 모를 순간이 온다. 감정을 지우며 결국 나도 지우게 된다.     


상처가 없는 이는 없다. 그 종류와 내용, 깊이와 넓이가 다를 뿐이다. 어느 정도 나아질 수는 있다. 그러나 상처에 대한 완벽한 해결도 지워짐도 없다. 상처와 동행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조금은 성숙을 향해 나아갈 뿐이며, 그것은 나에게 또 누군가에게 꽃이 되어 위로와 희망을 안겨다 줄지도 모른다.      


소설은 "상처가 있어도 괜찮아." "그것이 있기에 네가 더 빛나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상처도 내 삶이다. 상처가 없으면 나도 없다. “     


"얼룩덜룩한 옷을 입고 있어도 우리 모두는 존재만으로도 별처럼 빛나고 있음을."       

   

이를 믿는 자에게만 상처도 얼룩도 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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