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차를 사랑합니다
나의 첫 차는 '티코'였다. (티코를 아는 세대라면 나와 비슷한 세대일 것이다^^) 운전을 배웠지만, 바로 운전하지 않았다. 난 늘 “기사를 두고 살 거야!”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다. 그런데 내가 20대 다녔던 일터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버스에 내려서도 한참을 등산하듯 올라가야 했다. 그러기를 2~3년, 어느 순간 "그래, 운전을 해야겠어!"라는 생각이 빠르게 들었고, 그렇게 내 안에 처음 들어온 차가 '티코'였다. 당시 나는 아는 지인을 통해서 중고로 100만 원인가 주고 샀다.
지금 생각하면 되게 웃긴데, 당시에 헐값에 산 빨간 티코를 좀 더 있어 보이게 하고 싶었는지, 나는 온갖 장식품으로 차를 꾸몄다. 운전대, 소품함 등등 귀여운 캐릭터 인형이 달린 것들로 잔뜩 치장했다. 원래 뭔가 부족하다 싶은 이들이 외적으로도 과하게 치장한다. 심플하고 단순한 것이 더 고급지고 오래 감을 그때는 몰랐다.
차가 없는 삶과 있는 삶은 확연히 달랐다. 내 삶의 반경을 확실히 넓혀 주었다. 어디든 원하면 밤이든 새벽이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떠날 수 있었다. 무엇을 가지고 갈지 큰 고민 없이 차에 모두 실을 수 있었다. 모르면 무식하다고 당시에는 그 차를 타고 고속도로도 신나게 달렸다. 한 친한 지인은 내 차를 얻어 타는 후배들에게 참 믿음이 좋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평상시 차분한 모습과는 달리, 고백하건대 난 운전할 때만은 베스트 드라이버가 아니었던 거 같다. 나의 조급한 성격이 운전할 때도 그대로 드러났다. 은근히 속도감을 즐겼다. 내 차를 한 번이라도 탄 분들에게 이 글을 빌어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 한 후배는 사고 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내 앞에 들이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티코를 타고 그렇게 달렸으니 정말 무모했었다. 사고 없이 그 차를 무사히 보내줄 때까지 탄 것이 하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경차 종만 바꿨을 뿐이지, 지금도 계속 경차를 타고 있다.
우리 집에는 SUV 차 한 대와 경차 한 대가 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환경 관련 책들을 여러 권 읽으면서 차 한 대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코로나 기간에는 차를 쓸 일도 거의 없기도 했고 말이다. 보통 경차를 정리할 만도 할 텐데 나는 작고 귀엽고 가성비 좋은 경차를 내어놓기 싫었다. 그래서 “미래에는 경유차는 좋지 않아!”라며 남편을 설득했고, 결국 그 차를 판 돈으로 100만 원 조금 넘는 전기 자전거를 남편에게 사주었다. 지방이라 출퇴근 거리도 멀지 않고, 나 또한 코로나 이후 재택으로 대부분의 일들을 소화하고 있어서 우리 상황에서는 이것으로도 충분했다. 가끔 장거리를 가야 할 때는 남편이 걱정했지만, 여전히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
직장이 있을 때는 회의와 이런저런 모임으로 타지로 갈 일이 많았다. 그래서 운전은 일상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온라인에서 주로 활동하다 보니, 특별한 만남이나 여행 일정이 있지 않고서야 타지로 갈 일이 많지 않다. 그래서 있는 경차도 주차장에 세워져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다 최근 조금은 장거리를 운전해야 할 일이 몇 번 있었다. 어떤 날은 단 몇 시간의 모임을 위해서 하루 8시간을 운전해야 했다. 오랜만에 장시간 잡아보는 운전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피곤하지 않고 길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해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나 타고 다닐걸》의 저자 손화신은 8년 동안 매일 2시간 도로 위해서 보낸 출퇴근 운전 경험을 담은 에세이를 출간했다. 다음은 그중 한 부분이다.
“여기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는 이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바로 자동차란 것. 나로 하여금 내 문제에 관해 주도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은 운전의 큰 매력이다...(중략) 휴대폰을 볼 수도, 책을 뒤적일 수도 없으니 혼자 고민하는 힘이 커질 수밖에 없다. 외부의 말들을 듣기 전에 먼저 제 힘만으로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건 나다운 내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차 안에서 나는 그동안 잘 듣지 않은 라디오도 듣고, 음악도 듣고, 기도도 하고,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그저 멍 때리는 시간으로 흘려보내기도 하고, 이런저런 사유를 넘나들기도 한다. 집과 사무실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현재의 생활에서 집에서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고 쓰며 생산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은근히 내 안에 있었나 보다.
차 안은 읽지도 쓸 수도 없다. 물론 요즘에는 오디오북을 들을 수도 있고, 음성으로 녹음하며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차 안은 다른 것들과 조금은 단절된 채, 조금은 무용하게 보내도 된다는 것을 나에게 허용해 주는 공간이라고 할까. 여기저기 경계를 넘나들며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고 나를 누리는 시간이었다. 그런 무용함의 시간 속에서 오히려 나는 충만히 채워졌다.
오랜 시간 제품 디자이너로 활동해 온 아키타 미치오씨는 물건을 사는 기준을 말한다.
“전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 사랑받기 위한 것은 고르지 않습니다.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밋밋하지도 않게 적절한 균형을 이루면서 저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있어요.”
멋지고 더 안전하고 튼튼한 차로 타고픈 심리는 나에게도 없지 않다. 장거리를 자주 운전해야 하거나,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많이 타지도 않을 차에 많은 돈을 지불하기 싫었다. 단, 장거리를 종종 운전해야 하는 분들은 꼭 튼튼한 차를 이용하길 바란다. 경차 타고 다니다가 사고를 난 분들은 그 이후로는 차를 다 바꾸시더라. 암튼 차로 자신의 가치를 내세우려는 심가 나는 솔직히 이해되지도 않았다. 내가 너무 실용적인가. 조금은 미안하지만 결혼 전에는 좋은 차는 다 타 본 남편이 결혼 이후에는 나 때문에 화려하고 멋진 차를 못 타고 있다. 아마 영원히 그럴 수도. 진짜 부유한 이들은 이미 풍족하기에 차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며 설득하면서.
오랜 시간 나의 발이 되어준 작은 차. 언젠가 한 번 남편은 "평생 좋은 차 한 번 타 보지 못해서 어떡해?"라고 지나가면서 가볍게 말했지만. ‘좋은 차의 기준이 뭐지? 내가 좋고 편안하면 좋은 차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다. 누가 뭐라 하든 나는 죽을 때까지 경차를 탈 수도 있겠다. 본질은 외형이 아니라 내면임을 알기 때문에. 그래도 언젠가 새로운 차를 구입해야 한다면 장거리도 편안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고급진 전기차는 운전해 보고 싶다. 그 안에서 마음껏 무용해지며 충만함을 누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