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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마음 Oct 01. 2023

독자의 몫

독서는 작가와 독자가 함께 만드는 이야기



        

독서법 강의를 하다 보면, 꼭 묻는 질문 하나가 있다. “읽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요.” 나는 이 질문에 늘 이렇게 대답한다. “꼭 다 기억해야 하나요?”,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까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 기억하려고만 읽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몇 시간 공들여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는데, 무엇을 읽었는지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은 참 난감할 것이다. 들였던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다시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할 것이다. 아직은 독서력이나 문해력이 약해 글자는 읽었지만, 전체 이야기에서 핵심만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고, 읽고 정리하는 독서의 기술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런 부분들은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기술을 습득하면 충분히 나아지리라고 본다.      


그러나 정말 독서에서 그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본다. 모든 내용을 꼼꼼히 기억해 내는 일일까? 물론 기본 용어를 인지하여 익숙해지고, 배경지식을 어느 정도 암기해 놓을 필요가 있는 내용도 있다. 나 또한 세 시간 동안 읽었으면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밑줄치고 강조한 내용들을 언젠가는 활용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대로 필사했던 시기도 있었다. 손을 움직여 필사하면 아무래도 뇌도 다시 활성화되고, 재독의 효과도 있고, 언젠가 이 내용을 활용할 확률도 높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너무 많은 분량을 적어놓는다고 해서, 그렇게 오랜 시간 공들여 필사한다고 해서 더 많이 기억하거나, 다시 들쳐 보는 일은 많지 않았다.     


책은 그저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내 안에 모든 답이 있다고들 하지만 속도의 시대에 나 자신을 깊이 성찰해서 내 안에서 답을 끌어낼 여유가 많지 않다. 그래서 갈수록 생각의 깊이는 얕아지고 있다. 이때 독서는 잠시 멈추고, 내 삶을 들여다보며 생각의 우물을 길어낼 마중물이 되어 준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질문이 되어 책을 읽다가 잠시 멈추게 한다. 느리게 읽든, 빠르게 읽든지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을 꼼꼼히 살펴 자세히 읽는 것보다, 빠르게 한 권을 해치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하나라도 내 삶과 공명하는 부분을 가로채어 그것을 가지고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느냐이다.      






기욤 뮈소는 《종이 여자》라는 소설 안에서 이와 관련된 독서 철학을 주인공의 입을 통해 나눈다. 스토리를 잠깐 공유하자면, 흑인 빈민가에서 자라나 같은 고통을 공유하고 있는 세 친구, 톰, 밀로, 캐럴이 나온다. 이들을 서로를 통해서 삶을 그래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설계할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톰. 그러나 실연으로 인해 성공을 보장한 시리즈 세 번째 책, 3권을 쓰기를 포기한 채 약물에 의존하며 스스로 삶을 망가트리고 있다. 톰을 다시 글 쓰게 하려는 친구 밀로와 캐럴의 눈물겨운 노력은 정말 진한 우정을 보게 한다. 


톰이 여전히 방황하고 있을 때 톰이 만든 소설 속 인물 '빌리'라는 여성이 갑자기 톰 앞에 나타난다.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을 톰은 어느새 믿게 되고, 자신이 만든 소설 속 인물 ‘빌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빌리를 통해 다시 글을 쓰게 되지만, 빌리를 소설 안으로 다시 보내주어야만 한다. 소설 속 빌리, 현실의 톰... 소설과 현실이 공존하는 듯한 이야기 속에서 톰은 소설을 읽는 독자의 역할에 관해 이야기한다.     

 

"책이 서점에 깔리는 순간부터 책은 내 소유가 아니라고."     


"바로 그거야 그때부터 책은 독자들의 소유가 되는 거야. 나한테서 배턴을 넘겨받은 독자들이 주인공들을 자기화하지. 그러고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새롭게 주인공들의 세계를 만들지. 독자가 자기 방식으로 책을 해석해 내가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하지만 그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어." 


"책이란 건 독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실질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어 왔다. 나 역시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그 책에 흠뻑 빠져 혼자만의 상상의 세계에서 수만 가지 가정을 하고, 줄거리를 예측하고, 작가를 앞질러 가고,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주인공들의 후일담을 쓰곤 했다. 독자들의 상상력이야말로 인쇄된 활자들을 뛰어넘어, 텍스트를 초월해 이야기에 온전한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    

 

픽션과 허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허물며 넘나드는 소설이다. 현실로 도피하기 위해 손을 뻗은 픽션이 일순간 우리의 현실이 되어 버릴 수 있음을 소설을 통해 작가는 말한다. 《종이 여자》는 작가가 썼지만, 그 책을 기반으로 독자가 또 다른 상상을 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갈 때 소설은 생명력을 얻고,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만이 그럴까? 모든 책이 그러하다. 시도 에세이도 실용서도.    

  

책을 읽고 그저 그 내용을 달달 외우거나 꼼꼼히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 한 부분이라도 그것을 통해 독자 자신만의 이야기로 건너갈 때 진짜 독서는 시작된다. 이처럼 진정한 독서는 작가가 독자가 손잡고 함께 창조해 가는 것이다. 작가가 이야기의 반을 썼다면, 나머지 이야기의 반은 독자의 몫이다.      


이야기의 반을 써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느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글쓰기를 추천한다. 독서도 삶의 속도를 늦추는 일이지만, 글쓰기는 더욱더 그 속도를 멈춘다. 독서는 잠시 멈칫멈칫할 수 있지만 글쓰기는 좀 더 오랜 시간 멈춰야 할 수도 있다. 생각만으로는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끊기거나, 그 이야기가 더 진전되지 못하고, 눈앞의 급한 일에 사로잡혀 곧 휘발되어 버린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글쓰기라는 시각화는 약간의 끈기만 있다면 책 속 저자가 건네는 이야기에서 머물지 않고, 나의 이야기로 건너와서 좀 더 그 이야기에 파고들 수 있고, 이어갈 수도, 새로 만들어갈 수도 있다. 여기서 작가와 못지않게 또 다른 창작의 기쁨을 소소하게 누릴 수도 있다.      


혹시 저자의 생각을 흡수하는 데만 급급한 반쪽 독서만 하고 있다면, 좀 더 독자로서의 주체적인 권리의 몫도 챙기길 바란다. 수동적인 독자에서 더욱 능동적인 독자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이어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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