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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마음 Oct 18. 2023

물 흐르듯 자유롭게

관계의 적절한 거리





아들이 초등학교 때 ‘절교’라는 단어를 종종 듣곤 했다. “엄마, 누가 누가 절교했대.”, “걔랑 절교할 거야.” 등등. 초등 아이들은 그 단어의 무게와 파장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놀이처럼 가볍게 절교하면서도 또다시 친해지기도 하니까 그때는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넘겨 버렸다. 한편 아무렇지 않게 ‘절교’라는 입에 올리는 아들을 보며,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하며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관계는 꽃과 같다. 햇빛에 놔두고 물을 줘야 한다. 햇빛이든 물이든 그 강도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아야 한다. 세심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어느새 시들어져 있다. 아무리 가까웠던 관계라도 시간과 정성을 쏟지 않으면 멀어져 버린다. 졸업하고 직장을 옮기고 결혼하며 물리적으로 멀어져 버린 관계들이 생각난다. 그래도 젊은 시절 만났던 친구들은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도 그때 그 정서적 느낌으로 서로를 대하며 추억을 나누기에 즐겁기만 하다. 그러나 그런 관계도 정기적인 만남이나 소통이 없다면 더 이상 꽃을 피우지 못하고 멈춰 버리다가 영원히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시들어버릴 수 있다. 멈춰 버리거나 시들어버릴 관계도 나쁘지 않다.     


되지도 않을 관계에 너무 깊게 매여 있거나 아등바등하기보다 초등 아이들의 빠른 ‘절교 선언’ 그리고 가능하다면 ‘빠른 화해 선언’도 쿨하고 좋아 보인다. 배우자를 바꾸려는 끝없는 시도, 모든 이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마음, 질투 어린 시선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모함과 피드백, SNS상에서 ‘좋아요’와 ‘공감’에 휘둘리는 마음 등은 참 사람을 피곤케 한다. 이 모든 노력이 사실은 비합리적임을 깨닫고, 불필요한 관계에 대해서는 빠르게 마음으로 잠시 절교를 선언하고, 상황에 따라 빠르게 화해한다면 조금은 삶이 편안해지지 않을까.      






2024 트렌드 중 하나의 키워드로 ‘각집살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예전에는 별거라고 하면 이혼의 전 단계로 생각할 정도로 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각방살이를 넘어 각집살이가 뜨고 있다. 이는 부유하고 여유가 있는 부부만이 누릴 수 있는 결혼 라이프 스타일이다. 여러 채의 집을 가지고 있고, 집을 옮겨 다니며 살 수 있는 것만으로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며,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이 시대의 가치관이 결혼생활에도 나타나는 것이다.     


과거 배우자 가족들과의 관계, 부부와 자녀 간의 관계에서는 개인의 선호보다 전통을 더 중시했다. 이는 서로의 경계를 허락 없이 마음껏 침범하는 밀착된 거리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 해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문화에서 드러나는 관계의 거리는 물리적인 공간에도 나타나고 있다.      


물리적으로 멀어졌다고 해서 부부간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조금 떨어져 자신에게 집중한 시간은 상대에게 줄 에너지를 얻게 한다. 서로를 착취하는 관계가 아닌 채우고 비우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 엄마와 아빠로서의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서 남자와 여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 서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면 이는 나뿐 아니라 서로를 좀 더 여유 있게 대하게 될 것이다.      


물 흐르듯이 자유롭게 관계를 유영하면 좋겠다. 다양한 이유로 멀어져 버린 친구와 선후배들과의 관계를 애써 유지하거나 그 관계만이 전부인 듯 살지 않아도 된다. 각자의 삶에 집중하다가 인생의 희로애락의 어느 시점에 늘어난 뱃살과 주름진 얼굴에도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환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언제든 함께 추억할 거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에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었다. SNS상의 불특정 다수와 나에게 애정 없는 이들에게 휘둘리는 불필요한 소진을 덜어내고 나와 결이 맞는 이들에게 좀 더 나의 에너지를 집중하여 나누며 살면 좋겠다. 나의 에너지를 빠르게 앗아가 버리는 관계에 대해 절절매기보다 빠르게 내려놓고, 흘려보내려 한다. 그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관계에 마음을 활짝 열고 내어주기에 인색하지 않으려 한다. 모든 꽃을 가꾸려 하는 것은 욕심이다. 인생은 짧고 관계의 기회는 언제든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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